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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짓는사람 Jun 08. 2023

나의 그리움엔 늘 이름이 없었다.

어릴 적부터 그리움이라는 작은 씨앗을 마음속에 품고 살았던 것 같다. 부모님은 늘 바쁘셔서 나는 네다섯 살 무렵부터 열쇠 목걸이를 차고 다니며 혼자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면 나는 가장 먼저 식탁으로 갔다. 엄마가 챙겨준 간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엔 때때로 나의 이름을 부르며 시작되는 메모가 있었는데 식은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먹으라는 등 대체로 끼니를 잘 챙기라는 내용의 짧은 글이었다. 그 바쁜 와중에도 꼭 챙겨주신 메모와 음식들은 분명 엄마의 다정한 사랑이었지만, 차갑게 식은 음식들은 어쩐지 데워도 따뜻하지 않고 먹어도 허기가 진 것 같았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 마음이 뭔지. 이름을 붙일 수도 없었다.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다.  


초등학생이던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늘 그렇듯 아무도 없는 집이었다. 우리 집은 빌라 5층이었다. 한층, 한층 올라가서 집 앞에 거의 왔는데 이상하게 음식 하는 냄새가 났다. ‘옆집에서 나는 냄샌가? 우리 집일리가 없는데’ 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그런데 세상에, 정말 우리 집에서 나는 냄새였다. 어린 동생을 잠깐 봐주시러 이모가 오셨는데 마침 나의 하교 시간에 맞춰 부침개를 부치고 계신 것이었다. 부추와 깻잎, 방아잎까지 넣은 반죽을 프라이팬에 올리자 지글지글 맛있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 소리와 함께 ‘따뜻한 음식’의 냄새가 온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는 어쩐지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어떤 그리움 같은 것이었다. 이때의 그리움에 어떤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부침개 냄새를 맡으면 그날이 떠오른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나는 무엇이 그리운 줄도 모르고 그리워했었다. 그리움에 이름이 없으니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저 그리움이라는 작은 씨앗에 싹이 나고 잎이 자라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이름 모를 그리움은 때때로 공허함이 되었고, 때때로 외로움이 되기도 했다. 어른이 되면 어렴풋하게라도 알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모른 채로 그리 살았다.


작년에 집을 짓기 시작해서 서른일곱이 된 올해에 나는, 작은 집을 작은 마을에 옮겨 와 시골 살이를 시작했다. 아직 서울 생활을 완전히 정리한 것이 아니어서 5도 2촌이 아닌 5촌 2도쯤 되는 생활을 하고 있다. 시골 살이에 완벽 적응해서 이제는 서울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지만, 그래도 가끔 가야 할 때가 있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저녁 늦게 출발해서 차를 타고 달렸다. 작년부터 많이 왔다 갔다 해서 익숙한 길이지만 가로등 하나 없는 산길을 운전할 땐 늘 긴장한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30분도 넘게 운전해서 큰 차들이 쌩쌩 지나다니는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그렇게 집을 떠난 지 한 시간이나 됐을까. 야간 산길 운전에 대한 긴장이 살짝 풀리자 문득 그리움이 몰려왔다. 그건 집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나는 집이 벌써 그리웠다. 그것도 아주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스스로가 우스웠다. 집을 이렇게 그리워하다니. 하지만 이내 이 강렬하고 커다란 그리움에 대해 꼭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마음속에 품고 살았던 그리움이라는 씨앗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나는 가만히 소리 내어 불러보았다.

그립고도 그리운 나의 집.

나는  문장에서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마음껏 그리워할 대상을 찾았기 때문일까. 무엇이 그리운 줄도 몰랐기에 채울 수도 없었던  마음에 마침내 이름을 붙여줄  있게 되었다. 나는 이제 그리워할 대상이 명확하게 생겼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집이 그리우면 그리움을 채우러 집으로 돌아가면  일이다. 그리운 나의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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