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때면 항상 경북에 계시는 부모님 댁으로 내려갔었다. 아픈 딸자식 출혈이 계속되자 먼길 다녀가는 것도 불안하셨던지 2010년 설 연휴에는 부모님께서 올라오시겠노라 하셨다.
"너 핑계 삼아 서울 구경하는 거지..."
라고 하시지만, 부모님이 내 마음을 아시듯 나 역시 부모님 마음이 읽히긴 마찬가지다.
내가 좋아하는 반찬들과 밤새 고아 소분해서 얼려둔 곰국에.... 바리바리 챙겨 올라오셨다.
엄마 아빠가 올라오셨던 설 연휴 동안
더 심해지는 출혈과 창백해지는 안색과
나빠지는 컨디션을 느끼며
또 입원 준비를 해야겠구나...
맘의 준비를 하며 달력을 넘겨봤었다.
회사, 병원... 그리고 약간의 절망과 공포.
내 머릿속에 뒤엉켜 색채를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지루하되, 끝이 있는 여정이었으면....
제발, 새해엔 복 좀 받아봤음 좋겠다.
10.02.16
그렇게 불안하기만 했던 명절을 보내고 결국 병원을 찾았고, 심각한 빈혈 수치와 멈추지 않는 출혈로 의사 선생님은 내시경 시술로 궤양 부위를 약물로 덮고, 열흘간 금식을 해서라도 새살을 돋게 해 보자 제안하셨다. 당신께서도 처음 해보는 도전이라 위험할 수도, 결과를 장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음식이 들어가지 않으면 출혈이 멈추길 반복했으니, 힘들겠지만 시술과 금식으로 새살이 돋을 시간을 주자는 의견이었는데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몸상태를 스스로 체크하게 되고 입원 일정도 알아서 조절하게 되고 보니 '내가 이런 생각들을 해서 이리 흘러가나?' 하는 이상한 생각마저 들었다.
살은 3kg이나 빠졌고
팔, 다리는 링거 바늘 자국에 온통 시퍼렇고...
열흘간의 금식을 끝내고 오늘 퇴원했다.
내 연차 쓰고 입원실에 앉아서
하루 종일 노트북으로 업무 했는데,
내일 출근하자니, 거참... 눈치 보인다.
위출혈로... 6번째 입원이다.
정말. 정말. 정말.
이젠 끝이었으면 좋겠다....
또 다른 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도록,
정말 끝이었으면 좋겠다.
10.03.01
그즈음엔 치열한 내 인생에 많이 지쳤었다.
크지 않지만 소소하게나마 월급 받아 밥 걱정 않고, 온종일을 내 몸상태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되고,
사람들이 말하는 지루한 일상들을 보내고 싶었다.
일상의 지루함을 얘기했던 게 언제였던가...
대안,
차선책,
최악의 시나리오...
무엇하나 확실하게 그려지는 것이 없는 안갯속이었다.
상처에 새살을 돋게 하겠다고 열흘이나 금식을 했는데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 출혈이 또 시작되었다. 출혈인지 알면서도 내심 아니길 바랬던 마음을, 병원에서 출혈임을 확인받고 나서는 몸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아프기를 반복했다. 출혈이 덜하다 싶으면 몸이 아프고, 몸이 낫다 싶으면 출혈이 심해지고 그렇게 지겹게 아픈 날들이 반복되자 회사 생활에 대한 자신감도 사라져 갔다.
"한번 더 해볼까?"
"아니요. 좀 더 견뎌 볼래요.. 못 버티면 알아서 들어올게요."
그 무모했던 시도를 한번 더 해보자는 의사의 권유를 만류하고 왔다.
현실이 되지 않으려면...
넌,
이겨내야 한다.
10.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