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스럽게도,
어쩌다 보니,
카페를 정리하고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취업을 하게 되었고
세상 밝은 얼굴을 하고 직장인 모드로 변환을 했다.
어쩜 이리 항상 생글거리며 웃고 다니냐는 내 첫인상이
무너지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조바심이 티 나지 않기를 바라며 말이다.
가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엄마에게
"엄마, 나 사실 너무 힘들어." 하며 눈물을 뚝뚝 흘렸는데..... 때마침 알람이 울렸다.
비록 꿈이었지만 엄마 품에서 조금 더 울고 싶었는데...
그렇게라도 내 안에 가둬뒀던 울음을 터트리고 싶었는데 말이다.
괜찮음을, 다행임을 이야기하는 것이 나에겐 강요처럼 느껴졌다.
난 전혀 괜찮지 않았고, 나에겐 전혀 다행이지 않은데
그만하길 천만다행이라고, 왜 그런지 알았으니 됐다고 하는 이야기들이 나에겐 편하지 않았다.
그들의 이야기에 끄덕여줘야만 강요를 멈출 것 같아 마음에 없는 동조를 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은 위로라고 던진 말이었지만 나에겐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괜찮은 척하지 말고 그냥 울고 싶으면 울어버리라는 말이 차라리 더 위로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마주 앉은 사람과 거리만 더해지는 만남들이 이어졌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괜찮은 척을 스스로에게 강요했던 탓일까?
TV를 보다가도 곧 잘 눈물을 흘리고
지나가는 앰뷸런스 소리에 주저앉을 것 마냥 다리에 힘이 풀리고
슬픈 노래가 듣다가도 눈물이 글썽거려졌다.
누군가는 이 얘기를 들으면 우울증이라 할 것이고, 상담을 받아 보라 할 터이지만
정혜신 선생님이 쓴 "당신이 옳다"에서 말하는 것처럼
단순한 병이 아닌, 내 시간을 받아들이기 위해 거쳐야 할 시간들이라 생각하며 시간 시간을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