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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토부장 Jul 30. 2020

20. 니가 왜 거기서 나와?

one-way ticket project #20 돔바스

| 숙소 찾아 삼만리


 ‘으잉?? 이건 뭐지??’


 「돔바스(Dombås)」 기차역에 내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당황스러움이었다. 이곳이 그리 큰 동네는 아닐 거라 짐작했지만, 돔바스 기차역의 모습은 내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그것과는 많이 달랐다. 보통 역사(驛舍)가 크던 작든 간에 기차역 앞을 나오면 넓은 - 혹은 작지 않은 광장과 대중교통 승강장 같은 것이 있기 마련인데, 이 기차역 앞은... 그냥 낭떠러지에, 그 아래로는 농가들만 가득했다. 사실 돔바스역은 산 중턱에 위치한 작은 간이역일 뿐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내가 생각했던 버스나 택시가 없을 수밖에. 사실 노르웨이 여행에서 돔바스라는 이름은 등장할 일이 별로 없다. 관광할 거리가 있는 곳이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게이랑에르를 출발해 노르웨이 북단에 위치한 로포텐 제도로 올라가는 멀고 먼 여정의 중간 베이스캠프로 돔바스를 택한 것이다. 물론 열차 스케줄상으론 다이렉트로 갈 수 도 있지만, 그렇다 해도 이 곳에서 기차를 갈아타야 하는 것은 필수였다. 그럴 경우 너무 타이트한 환승 시간이 마음에 걸렸던 나는 - 이미 오슬로~플롬 구간에서 한번 당했으므로 - 이 곳에서 1박을 하고 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오늘 아침 일찍 게이랑에르를 출발해 다음 날 저녁이 되어야 로포텐에 도착하는 꼬박 이틀간의 비효율적인 이동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물론 라이트 형제가 만든 비행기라는 문명의 이기를 선택하시겠다면 얘기는 좀 달라진다)

 

 구글맵으로 단순히 어림잡아봐도 기차역에서 숙소까지의 거리는 꽤 되어 보였다. 하지만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무언가를 멀뚱히 기다릴 수만은 없으니 일단 내리막을 내려가 본다. 가다 보면 뭐라도 하나 잡아탈 수 있겠지. 그러나 그것은 역시 오산이었다. 이미 내리막을 다 내려와 마을의 중심가에 다다른 것 같음에도 버스 승강장 따위는 보이지도 않는다. 심지어 오가는 택시 하나 보기 힘들다. 아쒸!! 대체 뭐지 이 동네. 너무 정보 없이 온건가. 하긴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봐도 딱히 뭐가 없긴 했다. 여행자들이 찾아오는 지역은 아닌 듯했으니까.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한숨을 돌리며 생각을 해본다. 


‘음... 어디 보자... 일단 어영부영 절반 정도는 걸어온 것 같으니... 

그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냥 숙소까지 걸어가 보자. 돈도 아끼고 좋지 뭐.’


 어깨를 짓누르는 30kg의 무게와 비 오듯 흘러내리는 땀을 아이고! 소리로 견뎌내며 숙소가 있을 그곳으로 무작정 걷는다. 제대한 지 20년 만에 악으로 깡으로란 문구까지 절로 생각나는 행군 아닌 행군이다 (여행은 정말 조금이라도 젊을 때 하자). 하지만 예약한 숙소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건물은 아무리 봐도 호스텔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주변도 시골마을에서 흔히 보이는 농가들뿐이다. 뭐지... 이번 숙소는 시골 가정집 컨셉인건가? 그래, 사진으로 봤던 숙소가 조금 전원주택스러워 보이긴 했어. 그런데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좀 이상하다. 마침 작은 밭에서 일하고 있던 동네 주민에게 물어보니... 이런 젠장!! 여기가 아니란다. 내가 찾는 숙소는 여기가 아니고 큰길 넘어 반대편이란다. 말이 길 건너 반대편이지 지도상으론 지금까지 걸어온 것보다 훨씬 더 가야 하는 거리다. 게다가 그냥 그쪽 편이란 것만 알뿐 정확한 위치도 알 수가 없다. 

 

 결국 하는 수 없이 전화를 해보기로 마음먹는다. 마음을 먹었다는 건 큰 결심이 필요했다는 얘기다. 여행 시작 후 새로운 나라에 갈 때마다 그 나라 유심을 장착하고 새로운 번호를 부여받기는 했지만 전화를 사용해보는 건 처음이니까 (보통은 인터넷만 사용하게 된다). 문법과 독해 중심의 대한민국 영어교육만 받아온 평범한 기성세대로써 글로 쓰는 건 그럭저럭 한다고 해도 이렇게 직접 전화기 너머로 라이브한 대화를 할 생각을 하니 긴장이 될 수밖에 없다. 외국어 회화에서 가장 어려운 건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나누는 대화다. 그래도 예약사이트에서 봤던 ‘친절한 사장님이 차로 직접 마중도 나와주었어요.’라는 후기를 떠올리며 좋은 기대도 가져본다. 하지만 기대는 역시 기대일 뿐. 어렵게 통화된 주인장은 지금 바빠서 자리를 비울 수 없으니 메일로 정확한 위치를 보내주겠단다. 이런!! 망했다!! 재 넘어 머나먼 길을 또 언제 걸어가나. 땀을 식히고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한 후 무거운 배낭을 다시 둘러메고 숙소를 찾아 나선다. 물론 숙소로 가는 길이 어마어마한 길이의 오르막이란 사실은 나중에 알았지만 말이다. 




|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돔바스의 도로는 넓다. 작은 동네를 지나는 작은 2차선 도로가 아니라, 큰 덤프트럭들이 쌩쌩 내달리는 사통팔달의 시원시원한 도로 느낌이다. 아마도 이 곳은 교통의 요지쯤 되나 보다. 넓은 도로를 따라 걷고 있다는 긴장감과 어딘지도 모를 곳을 찾아간다는 막연함이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하는 와중에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뻗어있는 오르막까지 마주하니 완주할 자신이 없었다. 무자비하게 가파른 오르막은 아니었지만 도저히 더 나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살고자 하는 본능은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지나가는 차를 세워보게 만든다. 하지만 넓은 그 길을 앞만 보고 내달리는 운전자들이 나한테까지 시선을 줄리 만무하다. 큰 맘먹고 도전해 본 나의 첫 히치하이킹은 그렇게 수포로 돌아갔다. 이 도전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은 결국 그 상태 그대로 숙소까지 나아갔단 얘기다.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숨을 헐떡거리면서.


 생사의 갈림길(?)을 뚫고 겨우겨우 도착한 숙소는 왜인지 학창 시절 하계수련회를 떠오르게 한다. 조립식 가건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그곳은 숙소 앞 넓은 공터에서 캠프파이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도 높은 곳에 위치 한덕에 그 앞으로 펼쳐진 풍광이 멋지니까 봐준다. 리셉션이 어디인지 두리번거리며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데... 앗!! 왜 당신이 여기서 나오세요?!! 세상에 숙소 주인이 중국사람이다. 그도 날 보더니 흠칫 놀라는 표정이다. 마치 ‘아니 웬 동양인이 이곳까지 찾아온 거야?!!’라는 표정으로. 아무 특별할 것 없는 노르웨이 어느 호젓한 시골 마을에서 숙박업을 하고 있는 중국인과 구경할 것 하나 없는 북유럽 촌구석에 나타난 한국인 여행자와의 뜬금없는 조우. 서로가 서로에게 놀라워하는 재미있는 광경이 연출되어 버렸다. 심지어 이 주인장, 숙소 바로 옆 차이나 레스토랑까지 운영하고 있다. 저녁시간이라 밀려있는 주문 때문에 나를 데리러 나올 상황이 안되었던 것이다 (주인장은 요리를, 와이프는 서빙을 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중국집은 장사가 잘 되는구나.


 때마침 한숨을 돌리게 된 타이밍이라 서로에게 궁금한 것들에 대해 잠시 얘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되었다. 크나큰 중국에서도 저 남쪽 하이난에 살던 그는 어찌어찌해서 오슬로에 공부를 하러 오게 되었고, 다시 또 어쩌어찌해서 오슬로에서도 한참 멀리 떨어진 이곳에 자리를 잡고 살게 되었다고 한다. 참 인생이란 게 한 치 앞을 모른다더니 이 머나먼 타지 그중에서도 이토록 작은 시골 마을에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초여름 어느 날 자신들의 숙소에 웬 한국인 여행자가 땀을 범벅으로 흘리며 나타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겠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주친 같은 동양인이 한없이 반가운 마음에 오리지널 중국집 주인장이 만들어주는 맛난 요리를 대접받는 희망을 잠시 품어본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다. 반가운 건 반가운 거고, 비즈니스는 비즈니스. 그가 내게 건네어준 배려는 단지 이 한마디뿐이었다.


 “걸어 올라오느라 힘들었지? 목마를 텐데 시원한 물 한잔 줄까?”


 아차차.. 情이란 단어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임을 내가 잠시 잊고 있었다...






[D+42~43] 2018.07.07~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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