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의 풍경
화가 롤란트 사베리(Roelant Savery , 1576 – 1639)와 앙리 루소(Henri Julien Félix Rousseau 1844 -1910)는 활동했던 시대도, 지역도 다르지만, 이국적인 동식물들이 가득한 낙원의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 두 화가의 그림에서 주인공은 인간이 아닌 동물이다. 미술의 역사에서 동물이 부수적인 요소가 아닌,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두 화가는 미지의 자연에 대한 호기심에 상상력을 더해 독특한 풍경화와 동물화를 완성했다.
17세기 플랑드르 화가 샤베리는 작품 <오르페우스>에서, 뛰어난 연주자 오르페우스의 음악을 듣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인 동물들이 있는 풍경을 그렸다. 오르페우스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청년으로, 아폴론 혹은 오이아그로스의 아들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의 악기 연주 실력은 너무나 뛰어나, 그의 음악을 들으면 인간뿐만 아니라 온갖 짐승들도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리고, 심지어는 무생물인 바위와 나무도 움직였다고 한다.
오르페우스가 음악으로 감동을 준 가장 중요한 인물은 지하 세계의 왕 하데스와 그의 아내 페르세포네이다. 오르페우스는 아내 에우리디케가 갑자기 독사에 물려 죽자 깊은 슬픔에 빠졌다. 그는 지하 세계로 가 하데스 신을 설득해 아내를 다시 지상으로 데려올 것을 결심한다. 천신만고 끝에 지하 세계에 도착한 그는, 하데스와 페르세포네를 만나, 자신이 아내를 잃은 사연과 음악 연주를 들려 준다. 이에 감동 받은 하데스는 오르페우스가 아내를 지상으로 데려 갈 수 있는 단 한번의 기회를 준다. 하지만, 죽음의 영토를 완전히 벗어나기 전에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는 조건을 어기는 바람에 그 모든 것은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지상으로 돌아온 오르페우스는 수년간 절망으로 방황하다가, 자신을 흠모하던 여인들의 손에 찢겨 죽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 한다.
이 슬픈 사랑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은 많은 화가들은 대부분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가 함께 하는 장면을 그렸다. 하지만 사베리는 오르페우스가 연주를 하고, 그것을 듣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인 동물들이 가득한 풍경을 그렸다. 화면 왼쪽에는 붉은 옷을 입고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오르페우스가 보이고, 그 옆에는 긴 부리를 가진 푸른새와 맹수 인 사자 커플, 수탉 한마리도 보인다. 언덕 위에는 숫사슴과 암사슴, 소, 개의 모습도 보인다. 주변에 있는 식물들도 자세히 보면 각양각색이다. 튤립과 해바라기, 그 이외에도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꽃과 식물들이 가득하다.
오른쪽 암벽 위에도, 소, 흰 말, 사슴 등 여러 동물들이 등장한다. 낙타, 코끼리 같은 이국적인 동물들도 있어서 장면에 신비로운 매력을 더한다. 새들도 눈에 띄는데 낙타의 머리 위 쪽에는 앵무새 한 쌍이, 언덕 사이의 계곡과 호수 곳곳에도 백조와 오리들이 날개짓을 하고 있다. 잔혹한 맹수와 온순한 가축, 머나먼 이국의 동물들과 각양각색의 새들이 한 자리에 모인 이 작품은 오르페우스의 음악으로 하나가 된 평화로운 낙원의 풍경 그 자체이다.
화가 사베리의 주특기는 풍경화와 정물화였다. 그의 작품은 가로로 넓은 화면 위에 치밀하고 정교한 화법으로, 다양한 동식물들을 그려넣어, 마치 그림으로 그린 식물도감, 동물도감처럼 보이는 작품들을 제작했다. 그림 속 동식물들을 하나하나 살피다 보면, 관람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화면 속 풍경으로 빠져든다. 오르페우스의 연주를 감상하는 동물들과 하나가 된다.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화가의 관심사가 오르페우스 비극적 사랑이라는 신화적 줄거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사베리가 이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당시 유럽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이국적이고 신기한 동식물들이었을 것이다. 화가는 어떻게 이토록 많은 동식물들을 이렇게 상세하고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었을까.
사베리는 1604년부터 프라하의 루돌프 2세 궁정에 머물면서 그곳에 있던 황제의 식물원과 동물원을 방문하곤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황제가 세계 곳곳에서 공수해 온 이국적이고 희귀한 동식물들을 관찰하고 기록할 수 있었다. 사베리가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여러 점의 동물화들은 모두 이 시기의 작업이다. 신기한 동식물들을 접한 화가는 그것들을 면밀히 관찰하고 정교하게 기록해서, 이색적인 풍경화 겸 동물화를 제작한 것이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유력한 가문이었던 합스부르크 왕가에서는 전세계에서 수집해 온 온갖 신기한 동식물, 곤충, 광물 등을 바탕으로, 동물원이나 식물원, 수집실 등을 조성하여 유럽 전역의 자연 과학 연구자들을 불러 모았다. 이렇게 수집된 대상들을 분류, 체계화하고 그 생태와 습성 등을 연구가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소위 조류학, 어류학, 곤충학, 광물학 같은 자연 과학이 발달 하기 시작했다. 사베리의 작품은 그러한 당대의 예술적이고 학문적인 분위기를 반영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베리의 낙원풍경은 낭만적이고 신비롭게 보이지만, 사실은 화가가 철저하게 자연과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자연의 모습을 담고 있다. 화가의 상상력으로 예술과 자연과학이 만난 셈이다. 미지의 세계, 미지의 대상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과 탐구의 노력이 '그림으로 그린 동식물 도감'의 형태로 완성된 것이다.
초록의 수풀이 우거진 숲속, 굶주린 사자가 영양의 목덜미를 물었다. 옆에 있는 커다란 나무 위에는 표범한 마리가 숨어서 사냥에서 성공한 사자를 훔쳐보고 있다. 수풀을 자세히 들여나 보니, 무성한 나뭇잎들 사이로 알록달록한 무늬의 새들도 숨어 있다. 하늘에는 붉은 태양이 빼꼼하다. 숨은 그림 찾기 같기도 하고, 아동용 일러스트 같기도 하다. 잔혹한 장면 이지만, 귀여운 그림이다. 루소의 그림은 어린 아이가 그린 그림 처럼 보인다. 마치 색종이를 오려서 붙인듯, 색감은 선명하지만 공간감도 입체감도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등장하는 요소들의 크기나 비례도 제각각이다. 거기다 아프리카 평원 같은 곳에 있어야 할 사자와 영양이 열대림 있는 것도 생뚱맞다. 하지만, 특유의 색채감각과 화면 구성력 때문에, 장식적이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루소는 거의 50이 다되서, 전업 화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한 늦깍이 화가였다. 어려운 가정 환경 때문에, 일찍부터 생업에 뛰어들어야만 했고, 22년간 파리 세관 사무소에서 세관 징수원으로 일했다. 하지만, 화가가 되는 게 꿈이었던 루소는 취미로 그림을 시작했고, 정식 미술 교육을 받을 수는 없었기에, 미술관과 전시회의 작품을 보고 따라 그리며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했다. 그리고 49세가 되던 1893년에는 세관원일을 그만두고, 전업화가로 활동을 시작한다. 정식으로 미술 교육을 받은 적 없는, 세관원 출신의 늦깍이 화가에 대한 미술계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아마추어 화가 출신이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미숙하고, 그림이 우스꽝스럽다는 평가였다.
그런 그가 본격적으로 미술계와 대중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게 된 작품이 이 바로 이 이국적인 정글을 그린 그림들이다. 당시 프랑스를 비롯한 당시 유럽인들 사이에서는 식민지로 개척한 아프리카나 아시아 지역의 원시 문화권에 대한 관심이 대중적으로도 널리 퍼져 있었다. 이러한 이국의 자연과 문화에 대한 관심은 미술계에도 영향을 주었고, 이에 영감을 받은 고갱 같은 화가는 직접 타히티로 가서 작업을 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루소의 정글 작품을 보며, 루소가 고갱처럼, 아프리카나 아시아에서 살다가 오거나, 여행을 갔다온 화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루소는 가난뱅이 촌놈으로, 한 번도 해외를 나가 본 적이 없었다. 대신 파리에 있었던 식물원 자르댕 데 프랑트를 자주 들러, 이국적인 식물들을 스케치했다. 또 당시 파리 만국 박람회 때 문을 연 동물학 갤러리, 동물원, 또 책이 나 잡지 에 나온 사진을 보고, 동물들을 그렸다. 그렇게 간접적으로 경험한 이국의 자연과 동물들의 모습에다가, 자신만의 상상력을 덧붙여 완성한 그림이 바로 루소의 정글 그림이었다.
루소의 그림에서는 어린 아이의 마음이 느껴진다. 천진하고 순수하며, 때묻지 않은 활기와 생명력이 느껴진다. 밀림 속에 나체로 누워 있는 여인도, 유럽풍 드레스를 입고 홀로 산책하는 여인도,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자연의 일부가 된다. 보름달이 뜬 밤, 어둠 속에서 피리를 불어 뱀을 불러 내는 여인은 신비로운 원시적 에너지 그 자체이다. 루소의 작품은 정해진 틀과 규칙 속에서 살아가는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감수성을 자극한다.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세상을 좀더 행복하게 느기고 싶을 때, 루소의 작품을 찾게 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