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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레센도 Jun 23. 2023

자매의 초상

미술사에는 수많은 초상화나 인물화들이 있다. 한 개인을 그린 것에서부터 가족이나, 단체 같이 여러 사람을 그린 초상화까지 다양하다. 오늘은 그 중에서 자매들의 모습을 담은작품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어떤 때는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가 됬다가,  또 어떤 때는 남보다도 못한 어색한 사이가 되기도 하는 형제와 자매들, 그 중에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흥미로운 자매들의 그림을 찾아보았다.





여신의 가르침


페르디난드 볼, 마르가리타 트립과 안나 마리아 트립 자매, 208 x 179 cm, Royal Netherlands Academy of Arts and Sciences, 암스테르담


고대풍의 거대한 기둥을 배경으로, 두 여성이 앉아 있다. 먼저 눈에 띄는 인물은 갑옷을 입고 있는 쪽이다. 풍성한 깃털과 정교한 세공이 돋보이는 황금빛 투구를 쓰고, 몸에도 흉갑을 두르고 있다. 언뜻 여성인지 아닌지 아리송 하다. 하지만 귀걸이, 목걸이, 팔찌 등의 화려한 진주 장식과 의상은 그녀가 여성임을 말해준다. 기둥에 기대어 둔 방패에는 뱀의 머릭카락을 지닌 메두사의 머리 문양이 새겨져 있다. 입고 있는 흉갑의 중앙에도 작은 메두사의 머리가 박혀 있다. 아테나 여신이다. 지혜와 전쟁, 기술과 예술의 여신 아테나가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대어 앉아 있는 한 소녀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주고 있는 모습이다.

 화면 밖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은 여신과 비슷한 진주 장신구들을 하고 있다. 연한 붉은색과 황금빛 의상또한 여신의 푸른색, 은색 의상과 조화롭게 연결된다. 

여신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소녀는 손에 두꺼운 책을 펼쳐 들고 여신에게 배움을 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신은 왼손으로 그런 그녀의 허리를 감싸면서, 둘은 마치 한 몸처럼 연결된다. 아테나 여신에게 딱 붙어서 앉아서 개인 교습을 받고 있는 여인이라니.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 부러운 인물은 당시 암스테르담 최고의 거부였던 트립 가문의 딸 안나 마리아로, 당시 11살이었다. 또한 안나 마리아를 가르치고 있는 아테나 여신은 다름아닌 그녀의 언니 마르가리타이다. 


아기천사 둘이 두꺼운 책을 옮겨주고 있다. 뒤에는 가정과 결혼을 상징하는 공작새와 돌고래를 올라탄 채 뿔고둥을 불고 있는 어린 트리톤 혹은 푸토의 석고상이 보인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언니 마르가리타를 지혜의 여신 아테나에 비유하고, 동생인 안나 마리아를 여신에게 배움을 구하는 제자로 비유한 것이다. 자매는 이 작품 속에서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스승과 제자가 된 셈이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활동한 페르디난드 볼(Ferdinand Bol, 1616 - 1680)은 웅장한 건축적 배경과 고대 신화의 알레고리 가져와 가장 이상적인 자매의 모습을 연출했다. 그는 렘브란트의 제자이기도 했는데, 실제 인물을 역사적, 신화적, 종교적인 인물로 탈바꿈시켜 그리는 방식은 그의 스승이었던 렘브란트가 즐겨 사용했던 방식이기도 하다. 





히멘의 정원을 노닐다

조슈아 레이놀즈, 히멘 상을 장식하는 몽고메리 자매들, 1773, 캔버스에 유채, 233.7x290.8cm, 테이트갤러리, 런던

신화 속 여신들일까, 아니면 님프들일까. 젊고 아름다운 세 여인이 정원에 핀 꽃를 엮어 긴 띠를 만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맨 왼쪽에 여인이 앉아서 꽃를 꺾어 만들고, 가운데 있는 여인은 중간에서 오른쪽 여인에게 만든 띠를 전달해 주고 있다. 맨 오른쪽에 흰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 여인은 두 팔을 들어 풍성한 꽃 덩쿨을 자신의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있다. 화면을 사선으로 가로지는 구도로 세 여인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흰색 드레스의 여인이 덩쿨을 들어올려 장식 하려는 것은 바로 뒤에 서 있는 석상이다. 석상은 얼굴이 잘 드러나진 않지만, 손에 기다란 횃불을 들고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결혼을 상징하는 신인 히멘( Hymen/ 히메나이오스Hymenaios)이다. 세 여인은 지금 결혼의 신, 히멘의 석상을 꽃으로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

횃불을 든 결혼의 신 히멘 ,  로만 모자이크 , Room 3 of the Baths of Neptune, Ostia Antica, Latium, Italy
(좌) 조르주 레니, 큐피드와 히멘, 1800/ (우) 화살통을 매고 서 있는 큐피드와 뒤에 횃불을 놓고 앉아있는 히멘, 1807, 제롬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결혼기념 메달

이들은 몽고메리 가문의 자매로, 자매 중 둘째 엘리자베스 몽고메리의 약혼자 루크 가드너가 이 작품의 주문자이다. 엘리자베스와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약혼녀의 초상화를 주문한 것인데, 그리는 김에 처형과 처제를 같이 넣어 자매 초상화로 완성시켰다. 맨 오른쪽 흰 드레스를 입은 첫째 딸은 이미 결혼을 했기 때문에, 히멘을 지나쳐서 서 있고, 이제 막 결혼을 하는 둘째는 중간에서 히멘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맨 왼쪽에 석상과 가장 떨어져 있는 위치에 아직은 결혼이 먼 막내가 앉아 있는 구도로 되어 있다.

자매 중 둘째인 엘리자베스, 그녀의 약혼자가 이 그림을 주문하였다.  

조슈아 레이놀즈(Sir Joshua Reynolds, 1723 –1792)는 18세기 영국 미술을 대표하는 초상화가이다. 당시 영국의 미술은 이탈리아나 북유럽에 비해 보잘것 없었다. 영국의 미술은 초상화를 중심으로 발달해 있었는데, 레이놀즈는 이 초상화를 역사화나 종교화, 신화화 못지 않는 장르로 발전시키고자 했던 인물이다. 그는 초상화에 신화적, 알레고리적 요소를 가미해, 장엄하고 격조 있는 초상화를 완성한 걸로 유명하다.

이 작품 역시 단순한 자매 초상화임에도 신화적 요스를 살짝 얹어서, 그림의 우아함과 품위를 더했다.  고대 결혼의 신인 히멘의 정원, 그 곳을 노니는 아름다운 님프가 된 세 자매들, 그녀들의 웃음소리와 꽃향기가 오랜 여운을 남긴다.



벨릴리가의 작은 아씨들

에드가 드가, 벨레리 가족, 1858–1867, 캔버스에 유채, 200 cm × 253 cm, 오르세 미술관, 파리

자매가 있는 가족의 이미지하면 맨 먼저 소설 <작은 아씨들>이 떠오른다. 소녀였던 네 자매가 숙녀로 정상해가는 과정을 따뜻하게 그린 가족의 이야기말이다. 제각각인 성격 탓에 싸웠다가도 금방 다시 친해지는 귀엽고 발랄한 소녀들이 있는 가족. 하지만, 드가의 작품 <벨릴리 가족>은 그런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어린 자매를 둔 이 가족의 분위기는 한눈에 보아도 어딘지 모르게 냉랭하고 어색하다. 

액자의 초상화는 이 부인의 아버지, 즉 드가의 할아버지이다.  부인은 임신 중인데, 지금 상중이라 검정색 옷을 입고 있다. 차갑고 냉랭해 보인다. 

드가는 파리에서 본격적으로 화가 활동하기 전인 1856년부터 약 3년 정도 이탈리아에 머문적이 있었다. 이 그림은 당시에 이탈리아 피렌체에 거주하고 있던 드가의 고모네 가족들을 그린 그의 초기 작품이다. 화면 왼쪽에 검정색 드레스를 입고 서 있는 여인이 드가의 고모인 벨릴리 부인이다. 아버지(드가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얼마 안되어 검정색 드레스를 입고 있다. 얼굴에서는 차갑고 냉랭한 기운이 느껴지는데,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라기 보다는 가정 생활에서 쌓인 오랜 불만과 냉소에 가까워 보인다. 

고모부인 벨렐리 남작은 나폴리에서 언론인으로 활동했는데, 정치적 활동 때문에 추방당해 피렌체에서 망명 중이었다.

고모와 가장 멀리 떨어진 위치에 고모부인 벨릴리 남작이 있다. 남작은 화면에 등을 돌린 채 커다란 검정색 의자에 몸을 묻고 앉아 있다. 벽난로, 거울, 탁자, 의자에 마치 갖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벽난로 위의 시계와 촛대, 거울에 반사되는 요소들의 복잡한 배치와 구성이 그가 있는 위치에 집중되어 있는 것 역시 그의 고립감을 더욱 부각시킨다. 그는 아내와 딸들 쪽으로 몸을 돌리고 있지만, 그들 중 누구도 보고 있지 않다.

심리적 거리감은 두 부부 사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린 딸들에게서도 느껴진다. 엄마인 벨릴리 부인의 앞에는 첫째 지오반나가 서 있이다. 화면 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앞으로 얌전히 모든 두 손이 경직되어 있는 느낌을 더한다. 서 있는 위치로 보건데, 아빠보다는 엄마와 가까운 관계일 것이다. 하지만, 차갑고 권위적인 엄마에게 심리적으로 억눌려 있을 수 있다.

줄리아의 자유로운 자세는  마치 가족이 모인 한 순간을 포착한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요소로, 그림에 자연스러운 생동감을 준다.

부부의 중간에 앉아 있는 소녀가 막내 줄리아이다. 표정이나 자세가 첫째보다는 좀더 편하고 자유로워보이는데, 한쪽 다리를 접고 의자의 한쪽에 걸터앉은 모습이 불안정해 보이기도 한다. 가족들의 가운데에 위치한 걸로 봐서, 소녀는 그나마 이 가족안에서 중간자 역할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소녀 또한 가족 중 누구와도 소통하고 있지 않다. 

드가, 벨릴리 자매(지오반나와 줄리아 벨릴리), 1865-66, 캔버스에 유채, 92.1 × 72.4 cm, 로스엔젤레스 주립미술관

수년 후에 그린 지오반나와 줄리아의 초상화에서도, 자매의 관계는 가까워 보이지 않는다. 소통은 커녕 오히려 서로를 의식적으로 외면하는 듯한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특히 뒤쪽에 갈색 드레스를 입은 줄리아의 모습은 미완성 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것이 절묘하게 두 사람간의 심리적인 단절을 순간적으로 포착한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드가는 가족이, 그리고  형제, 자매가 가장 가까울 수도 있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정반대인 존재일 수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벨릴리 가족>은 한 상류층 가족 초상이라는 평범한 테마를 드가만의 냉철하고 객관적인 '눈'으로 포착해 낸 작품이다.

(좌) 르누아르,  자매, 1889 / (우) 드가, 벨릴리 자매, 1865-1

드가는 '인상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다른 인상주의자들이 주로 풍경에 관심을 가졌던 것과는 달리 그의 관심은 언제나 '인간'이었다. 그는 19세기 중반 근대화된 대도시 파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그안에 존재하는 고독과 소외, 무관심 같은 심리에 주목했댜. 이러한 드가와 가장 대조적인 성격의 인상주의자는 르누아르일 것이다. 르누아르의 작품에는 언제나 '행복'과 '사랑' 만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은(특히 여성들) 부유하고, 예쁘고, 밝고, 다정하며, 부드럽다. 그래서 르누아르의 작품은 보기 편하다. 하지만 그래서 뻔하고 지루하기도 하다. 반면 드가의 작품에서는 늘 미묘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언제나 질리지 않는 매력을 발산하는 쪽은 드가이다. 




화가의 자매

베르트 모리조, 자매, 1869, 캔버스에 유채, 52.1 x 81.3 cm, 내셔널 갤러리, 워싱턴 DC

19세기 어느 프랑스 상류층 가정 실내,  한 눈에도 꼭 닮은 자매 둘이 소파에 앉아 있다. 같은 드레스, 같은 헤어스타일과 같은 목걸이를 하고 있는데,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두 자매의 표정이다. 둘 다 활기가 부족하고 무기력해보인다. 특히 오른쪽에 부채를 들고 있느 여성은 우울해 보이기까지 한다. 새장 속의 새처럼 느껴지는 삶. 부유하지만, 마냥 행복하지는 않은 여성들.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 1841 - 1895)의 작품에서 종종 볼 수있는 여성들의 특징이다. 베르트는 아마도 자신의 언니였던 에드마의 얼굴에서 저런 표정을 보았을 것이다.

(좌) 어머니와 언니 에드마, 1869-70, 캔버스에 유채, 101x81.8 cm, 내셔널갤러리, 워싱턴 DC / (우) 에드마의 초상, 1863,

고위 관료의 딸로 태어난 베르트 모리조는 두 언니와 함께 어릴적 부터 가정교사로부터 미술을 배웠다. 그녀는 둘째 언니인 에드마와 특히 가까웠는데, 둘은 같이 화가의 꿈을 키웠다. 후에 베르트는 마네, 드가 같은 남성 인상주의 화가들의 도움으로화가로서의 활동을 펼쳐 나갈 수 있었다. 상류층 여성이 직업을 가지고 사회적 활동을 한 아주 드문 예였다. 그러나 언니 에드마는 결혼 후, 붓을 놓게 된다. 후에 에드마는 동생 베르트의 작품에서 아내와 어머니로서 살아가는 모습으로 자주 등장한다.

베르트 모리조, 요람, 1872, 캔버스에 유채, 56 × 46 cm, 오르세 미술관, 파리
(좌) 베르트 모리조, 숨바꼭질, 1873/ (우) 베르트 모리조, 발코니의 엄마와 아이, 1872


인상주의 회화에서는 거리, 공원, 휴양지, 레스토랑, 카페, 바(bar)등 대도시 파리의 다양한 공간들이 배경이 된다. 하지만, 베르트 모리조나 메리 카사트(Mary Stevenson Cassatt, 1844- 1926) 같은 여성 인상주의자들의 작품에서 그렇게 다양한 장소가 등장하지 않는다. 집과 정원을 배경으로, 자녀들을 돌보거나 차를 마시거나 책을 읽는 여성들의 모습이 대부분이다. 이는 당시 상류층 여성의 삶을 살았던, 두 여성 화가가 보거나 경험한 할 수 있는 것들이 그만큼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대중적인 공간에서 직업 활동을 하는 여성들은 오히려 사회적으로 낮은 계층의 여성들이었다. 상대적으로 계층이 높은 여성일 수록, 사회적 활동 반경에 제약은 더욱 컸다. 

(좌) 메리 카사트, 엄마와 아이, 1890, Wichita Art Museum/ (우) 메리 카사트, 바느질하는 엄마와 아이. 1900,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모리조와 카사트는 결혼과 가정에만 머물러야 했던 당시 상류층 여성들의 삶을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각으로 표현해냈다. 두 화가는 그러한 여성들의 삶이 불행하다고 동정하지도 않고, 행복하다도 동경하지도 않는다. 그림 속 여성들은 자신들의 삶에 한계를 느끼면서도, 주어진 삶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매순간 여자로 태어난 것에 대한 낙관과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여성 예술가만이 표현해 낼 수 있는 여자들의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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