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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레센도 Jun 18. 2023

봄의 연인들


마음이 왠지 모를 설렘과 에너지로 가득해지는 시기가 바로 계절의 여왕 5월이다.  사랑과 연애, 결혼의 계절이기도 하다.  오늘은 이 5월의 화사함과 어울리는 연인 또는 커플들이 등장하는 그림들을 소개하보고자 한다.



비너스의 정원을 거닐다

피터르 파울 루벤스, 사랑의 정원, 1630 – 1635, 캔버스에 유채, 199 x 286 cm,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고대 풍 대저택의 정원에  여유롭고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는 남녀들이 있다. 세련된 옷차림을 한 이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편안한 자세로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은밀한 시선을 교환하기도 한다. 여성을 정중하게 에스코트하는 남자도 보인다. 사랑스러운 아기 천사들이 곳곳에서 설레고 달달한 분위기를 북돋우고 있다. 이곳은 '봄의 정원' 그리고 '사랑의 정원'이다.

화면의 가장 왼쪽에서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을 한 남자가 정원으로 인도하고 있다. 여자의 뒤에는 활을 든 아기 천사, 즉 사랑의 신 '아모르(큐피드)'가 그들을 힘껏 밀고 있다. 이들은 곧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들 바로 앞에는 한 남자가 어떤 여인의 귀에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고 있는데, 여자는 화면 밖 관람자를 바라보고 있다. 남자의 다리에 손을 얹은 채, 남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여자의 시선과 표정이 알쏭달쏭하다. 

화면 중앙 부분에는 4명의 여자는  담소를 나누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각자 별개의 생각과 행동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고 보니 좀 전 화면 오른쪽에서 뒷모습을 보이고 들어오는 여자부터 여기에 모여 있는 여인들까지, 모두 닮은 듯 보인다. 마치 한 사람이 분신술을 써서,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옆에 있는 아기 천사들 역시 마치 여인들의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듯 다양한 표정과 제스처를 보여준다.

화면의 맨 오른쪽에서는 가장 격식 있고 화려한 의상을 입은 한 커플이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데,  커플이 내려오는 계단은 뒤쪽 분수대로 연결된다. 분수대에는 돌고래에 올라탄 채, 가슴에서 젖을 뿜어내는 여인상이 보이는데, 옆에 활을 가진 아기천사 아모르와 멀리 횃불 밑에 보이는 삼미신으로 보아, 비너스 여신상일 것이다. 이 정원은 사랑의 여신, 비너스의 정원이다. 또 비너스 여신상 옆에는 행복한 결혼과 가정을 상징하는  공작새가 보인다. 따라서 이 계단을 내려오는 커플은 그냥 연인 사이가 아니라, 결혼한 부부로 볼 수 있다.

그림을 전체적으로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읽으면, 연인들의 사랑이 시작되고, 서서히 가까워지다가 여러 가지 사랑의 부침 속 감정 변화를 지나, 가장 오른쪽에 계단에서 내려오는 '부부'의 모습으로 완성되는 흐름이다. 이들은 모두 다른 남녀 일 수도 있지만, 같은 커플의 다양한 변화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커플은 다름 아닌, 이 그림을 그린 화가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 –  1640)와 그의 아내 헬렌 푸르망이다.

 루벤스, 작은 모피를 걸친 헬렌 푸르망, 1638년 경, 캔버스에 유채, 176x83cm, 미술사 박물관, 빈
루벤스, 아들 프란스와 루벤스, 그리고 헬렌 푸르망,  1630년대 후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헬렌 푸르망은 루벤스의 두 번째 아내로, 첫 부인 이사벨라가 죽은 후, 루벤스는  53세가 되던 1630년에 당시 16세였던  헬렌과 재혼했다. 


쉰이 훌쩍 넘어 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결혼이었지만, 헬렌과의 사이에 5명의 아이를 낳았을 만큼, 부부 사이 금슬이 좋았고, 루벤스의 어린 아내에 사랑은 남달랐다. 재혼 후, 아내와 가족의 행복한 모습을 담은 그림들도 자주 제작되었고, 그의 작품 속 수많은 여신들의 모습으로 아내 헬렌을 담아내기도 했다. 헬렌은 그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는 뮤즈이자, 삶의 활력을 되찾고 노년의 행복을  느끼게 해 준 존재였던 것이다.


내 삶에 다시 그윽한 평화가 찾아왔네. 청춘의 기쁨을 되찾았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나.

루벤스가 이 작품 <사랑의 정원>을 그리면서, 지인에게 쓴 편지에는  그가  헬렌 푸르망과의 결혼 생활이 자신의 삶에 얼마나 큰 행복을 가져다주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당대 유럽에서 가장 잘 나가는 화가이자 외교관으로서 누구보다 화려한 인생을 살았지만, 인생 황혼기에 그에게 가장 큰 기쁨을 준 것은 다름 아닌  젊은 아내와의 행복한 결혼 생활이었던 것이다. 


이 그림에서 루벤스는 자신을 어린 아내와 비슷한 나이의 젊은 남자로 표현했다. 말 그대로 회춘한 모습니다. 젊음을 되찾은 화가는  아내 헬렌과 따뜻한 봄바람과 꽃향기가 무르익은 정원을 산책한다. 비너스의 정원,  '사랑의 정원'에서 영원히 함께 한다.




몰래 한 사랑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사랑의 과정 : 밀회, 1773, 캔버스에 유채, 318 x 244 cm, 프릭 컬렉션, 뉴욕


푸른 나무와 흐드러지게 핀 장미가 가득한 정원에서,  한 쌍의 남녀가 비밀스러운 만남을 가지려 하고 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온 남자는 막 담벼락을 넘으려는 참이다. 여자는 누군가에게 자신들의  만남을 들킬까 봐 남자를 주의시키면서, 자신의 뒤를 돌아보고 있다. 


백옥 같은 피부와 홍조를 띈 얼굴, 탐스러운 금발을 지닌 이들은 아직 풋풋한 소년 소녀이다. 특유의 섬세하고 빛나는 색채와 빠르고 가벼운 붓터치로 주인공들의'사랑스러움'을 표현했다

여자의 오른손에는 남자와 사전에 밀회를 약속한 내용이 담겨 있을 편지가 보인다. 다른 한 손으로는, 남자에게 좀 더 기다리라는 손짓을 하고 있다. 이들의 만남은 아슬아슬해 보인다.  아직은 누군가에 눈에 띄기에 때 이른 것이기에 비밀스럽다. 

큐피드로부터 화살통을 빼앗고 있는 비너스는 아직은 사랑의 때가 아님을 알려준다.


원래 몰래 하는 게 뭐든 더 긴장되고 재미있는 법. 두 사람 사이에 있는 비너스 조각 뒤로 하늘로 솟구치고 있는 나무의 형태가 긴장되는 이 만남 속에서 폭발하는 두 사람의 사랑의 감정을 대변하는 듯하다.  18세기 귀족 남녀의 아슬아슬 장난기 넘치는 사랑과 연애, 바로 그 자체가 이 것이 그 작품의 주제이다.

사랑의 과정 : 구애 (좌) / 사랑의 과정 : 밀회(우)

화가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é Fragonard, 1732 – 1806)는 로코코 미술의 마지막 대가이면서, 가장 로코코적인 화가로 불린다. 이 작품은 그의 대표작 <사당의 과정>이다. 원래 총 4 점으로 구성된 연작 시리즈 중 한 점인데,  그 스케일이나 완성도 면에서, 18세기 로코코 회화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랑의 과정 : 러브레터 (좌) / 사랑의 과정 : 애인즉위(우)

이 연작의 주문자는 당시 프랑스 국왕이었던 루이 15세의 애첩이었던 뒤바리 부인이었다. 뒤바리 부인은 원래 이 작품은 새로 지을 예정이었던 궁전의 벽면 장식을 위해 주문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 인지 예정된 장소에 걸지 않고, 화가에게 돌려보냈다(완성된 건물이 신고전주의 풍이라 사치스럽고 장식적인 로코코 회화와 어울리지 않았고, 이때 이미 로코코가 신고전주의에 의해 구식으로 보여 부인을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설이 일반적이다). 

1769년에 루이 15세의 후궁이 되어 루브시엔 성을 하사 받은 뒤바리 부인이 성의 정원에 연회를 위한 건물인 파빌리온을 신축하여 그중 한 방을 장식하기 위해 주문했다.

로코코 미술은 서양미술사에서 ‘남녀의 사랑과 연애’라는 통속적인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미술사의 흐름이라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전의 미술의 역사 속에서, 미술은 종교와 신화, 도덕과 교훈적인 주제,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주제들을 주로 다루어 왔다. 남녀 간의 사랑이라 하더라도  보통 '신화'같은 맥락을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771-2년 제작된  <사랑의 과정>  연작은 프라고나르의 대표작이면서, 18세기 후반 프랑스 귀족문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모두 현재 뉴욕 프릭컬렉션에 소장 중이다.

그러나 로코코 미술에 와서 특히 프라고나르 같은 작가는 신화라는 포장을 걷어내고 ‘우아하고 즐거운 놀이로서의 사랑’이라는 주제를 대담하면서도, 직접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를  흔히 ‘장르 갈랑트(Genre  Galante)’라 불리는 특유의 연애 풍속화로 부르는데, 그의 이러한 장르 갈랑트 회화에는  대혁명으로 몰락하기 직전 프랑스 귀족 사회의 문화와 취향, 감성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프라고나르의 방, 프릭 컬렉션, 뉴욕





'사랑의 시(詩)'


마르크 샤갈, 라일락 속의 연인들, 1930, 캔버스에 유채, 128x87cm, 리처드 자이슬러 컬렉션, 뉴욕


화면에 가득한 라일락 꽃에서 황홀한 꽃 향기가 느껴진다. 꽃다발 안에는 연인이 누워 있다. 남자는 한 팔로 여자에게 팔베개를 해주면서 그녀를 바라고 있으며, 여자는 그러한 남자의 품속에서 행복해고 편안해 보인다. 연인은 거대한 꽃다발 속에서, 영원한 사랑 안에 깊게 빠져든다. 화면 아래 저 멀리 강과 다리, 그리고 둥근 보름달이 자그마하게 보인다. 보름달이 뜬 밤,  라일락 꽃 속 연인, 이 보다 더 낭만적일 수 있을까. 

샤갈, 백합 아래의 연인들, 1922-25, 캔버스에 유채, 117x89cm, 개인 소장


샤갈 (Marc Chagall, 1887-1985)의 작품은 보는 이를 설레고 미소 짓게 만든다. 모든 이들이 꿈꾸는 아름답고 영원한 사랑에 대한 환상을 자극한다. 화가 특유의 색채 감각은 마치 한 편의 서정시를 회화로 보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샤갈의 작품이 변치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이다.

샤갈, 산책, 1917-8, 마분지에 유채, 170x183.3cm, 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관
샤갈, 생일, 1915, 캔버스에 유채, 81x100cm, 현대미술관, 뉴욕

벨라와의 결혼 후, 행복감을 표현한 1910년대 작품들. 상류층 유대인 가정 출신이었던 벨라는 모스크바에서 연기, 문학, 예술 등을 전공한 재원이었다. 그녀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난한 화가였던 샤갈과 결혼해 평생 남편의 예술적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했다.



샤갈의 작품에는 자주 등장하는 연인(혹은 부부)은 이 세상 모든 연인이며, 동시에 화가 자신과 아내인 벨라이기도 하다. 벨라는 샤갈과 같은 고향 출신 유대인으로, 1915년 샤갈과 결혼한 이후, 1944년 그녀가 사망할 때까지 늘 샤갈의 작품에 영감을 준 뮤즈였다. 또한 1, 2차 세계 대전과 유대인 핍박이라는 고난 속에서도 샤갈이 삶에 대한 희망과 예술적 의지를 잃지 않게 해 준 가장 큰 후원자이자 동반자였다. 


샤갈, 연인과 부케. 1927, 캔버스에 유채, 46.7 x 33cm, 딕슨 갤러리 앤 가든스, 테네시주


샤갈,  에펠탑의 신랑 신부, 1938-9, 캔버스에 유채, 150x136.5cm, 조르주 퐁피두 센터, 파리

샤갈 작품에서 연인들은 꽃이나 동물들과 같이 등장하곤 한다. 나귀, 수탉, 염소, 물고기 등이 풍경, 인물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화면에 환상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자연과 인간, 동물의 조화로운 관계를 중시하며, 그것을 통한 신의 사랑을 강조하는 동유럽 유대교적 가치관을 담고 있는 것이다. 



샤갈의 예술적인 원천은 고향인 러시아, 동유럽 유대교 신비주의, 그리고 아내 벨라 크게 이렇게 세 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꿈은 늘 벨라와 함께 고향인 러시아로 돌아가 자신의 예술적 꿈을 펼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꿈과 달랐다.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러시아에 귀국했지만, 고국 러시아가 사회주의 체제를 택하면서, 예술가들의 표현의 자유를 크게 제약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이념에 부합하는 미술만을 인정하는 러시아에서 꿈과 환상, 사랑과 평화 같은 주제를 다루는 샤갈의 작품은 철저히 외면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러시아에서 경제적 어려움과 예술적 탄압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그는  고국 러시아를 등지고, 1920년대 프랑스로 망명한다. 프랑스 망명 이후에야, 그는 비로소 경제적인 안정을 찾고 화가로서의 명성도 얻기 시작했다. 화가 스스로도 훗날 프랑스에 정착을 시작했던 이 시기를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로 손꼽았다. 이때부터 집중적으로 그려진 작품들이 바로 '꽃과 연인' 들이다. 이 시기 작품 속의 행복한 연인들은 그가 프랑스에서 느꼈던 자유와 기쁨, 여유와 낭만, 사랑과 평화에 대한 찬미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참고문헌

노성두 , 《예술의 거울에 역사를 비춘 루벤스》, 아이세움 , 2015

최정은 , 《사랑의 그림》, 세미콜론,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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