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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레센도 Jun 11. 2023

창(窓)과 여인

빛을 머금은 고요한 일상


요하네스 베르메르, 창가에서 편지를 읽고 있는 여인, 1657-59캔버스에 유채, 83 x 64.5 cm, 구거장미술관, 드레스덴

17세기 네덜란드 어느 가정집 실내, 한 여인이 창가에 서서 편지를 읽고 있다. 화면 전면에 푸른색의 커튼이 오른쪽으로 젖혀져 있어,  그림을 보는 관람자는 마치 커튼 너머 여인의 모습을 비밀스럽게  훔쳐보고 있는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여인의 피부, 머리카락,  옷에 빛이 반사되는 부분들이 흰 점이 흩뿌려진 듯 표현되어 있다. 베르메르는 정확하면서도 섬세한 빛의 표현으로, 마치 시간이 멈춘듯한 정적이고 고요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편지 읽는 여인의 표정이 진지하다. 깊게 내리깐 눈, 자신도 모르게 살짝 벌어진 입술, 그녀가 얼마나 편지에 몰두해 있는지 알 수 있다.  열린 창문 유리에 그녀의 얼굴이 어른거리지만 표정은 분명치 않다. 여인이 읽고 있는 편지는 누구에서 온 무슨 내용일까. 그녀는 지금 어떤 감정인 걸까.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마치 시간이 시간이 멈춘듯, 고요하고 정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실물로 착각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그려진 정물들, 페르시아에서 수입된 카펫과 중국산 청화백자 등 당대 네덜란드 상류층 가정에서 있었을 법한 정물들이 눈에 띈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1632–1675)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혼자 사소한 일상적 행동에 집중하고 있다. 그들이 있는 실내 공간은 대개 벽에 걸린 그림, 창문, 책상, 의자 등 아주 간결하게 몇가지 요소들로만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에서도 '창문'은 가장 자주 등장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편지를 읽거나, 우유를 따르거나, 귀금속의 무게를 저울로 재는 여인들의 사소한 행동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자연광 속에서 특유의 고요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좌) 베르메르, 저울을 든 여인, 1664년 경, 캔버스에 유채, 42.5 × 38 cm, 내셔널 갤러리, 워싱턴 DC 

(우) 베르메르, 편지를 읽는 푸른 옷의 여인, c. 1662 - 1665, 캔버스에 유채, 46.5 x 39 cm,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빛이 들어오는 창문이 있는 공간은 베르메르의 여인들의 일상이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그녀들은 언제나 관람자들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만의 행위에 몰두 하고 있다. 



베르메르에게 여인들의 일상은  화면의 간결한 구성, 조화로운 색채, 사실적이면서도 깊이있는 빛의 묘사같은  회회적 요소의 아름다움을 구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특히 '빛에 대한 집요한 탐구'는 미술의 역사에서 베르메르만큼 자연광을 깊이있고 사실적으로 묘사한 화가가 없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고집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빛이 사물에 접촉하면서 나타나는 시각적 현상을 놓치지 않기 위해 카메라 옵스큐라같은 도구들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좌) 헤리트 다우,양파를 다지는 여인, 1646 / (우) 베르메르, 우유 따르는 하녀, 1657-58


당시 대부분의 장르화가들은 그림에  풍속적 내용, 교훈적 상징성 담아내는데 관심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역시 주방일을 하는 하녀의 모습을 그린 다우의 작품을 보자. 신분이 낮은 하녀, 양파, 죽은 새, 절구, 쓰러진 물병 등 그림 속에는 다양한 사물들이 넘쳐난다. 대부분 여성의 성적인 문란함이나 타락과 관계된 은유로, 이를 경계하라는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반면에 베르메르의 작품은 간결하고 조화롭다. 상징적 내용이나 은유보다는 '색채와 빛, 구성의 균형과 조화'가 돋보인다. 베르메르의 작품 속 여인들은 '빛을 머금은 고요한 일상'의 한 순간 속에 영원히 존재한다. 






그녀의 뒷모습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창가의 여인, 1822, 캔버스에 유채, 44x37cm, 베를린 국립미술관

 한 여인이 관람객에게 등을 돌린 채,  작은 창틀에 기대어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창밖으로는 멀리 포플러 나무들이 보이고, 창문 오른쪽으로 치우쳐 배의 돛대가 보인다. 그녀는 포플러 나무들이 있는 강가와 그  강을 지나가는 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화가는 자신의 아내 카롤린을 모델로 이 작품을 제작하였다. 하지만이 여인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관람자는 이 여인의 뒷모습을 통해 그녀의 시선을 그리고 심리를 상상하게 된다.



그녀가 서 있는 공간은 전체적인 수직적 구성 때문에 상당히 경직되게 느껴지고,  여인은 그 안에 고립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창밖의 자연풍경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지나가는 배를 보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상체를 왼쪽으로 살짝 기울이는 뒷모습에서, 작은 창문 너머의 세상로 향하는 그녀의 호기심과 동경이 느껴진다. 외로움, 고독, 고립, 바깥 세상에 대한 동경. 관람자들은 여인이 누구 인지 알 수 없지만, 그녀의 뒷모습에 감정이입 하게 된다.


(좌) 프리드리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1817-18, 캔버스에 유채, 95 x 75 cm, 함부르크 미술관

(우) 프리드리히, 달을 바라보는 남과 여, c. 1824, 캔버스에 유채, 34 x 44 cm, 베를린 국립미술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1774 – 1840) 는 신비롭고 광활한 자연 풍경과 그것을 마주하는 인간의 왜소하고 고독한 모습을  대비시켜, 낭만적 감성이 느껴지는 풍경화를 그린 화가로 유명하다.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항상 관람자에게 등을 돌린 채, 뒷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를 통해 관람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림속 인물들이 느낄 고독함,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숭고함 등에 공감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이 여인은 자연이 아닌, 어둡고 적막한 실내에 갖혀 자연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뒷 모습은 대자연을 접한 인간의 경외감이나 숭고함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얽매여 있는 사회적인 속박에서 벗어나고픈 자유에 대한 동경에 가까워 보인다. 


이 작품은 프리드리히의 여타  작품들처럼 자연과  남성이 아닌, 실내공간과 여성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화가는 자신의 아내 카롤린을 모델로 이 작품을 그렸다고 한다. 그는 우연히 발견한 아내의 뒷모습에서,  그녀가 지닌 작은 '마음의 창'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텅빈 도시, 고독한 여인들


에드워드 호퍼, 아침 햇살, 1953, 캔버스에 유채, Columbus Museum of Art, Columbus, OH, US

호퍼(Edward Hopper, 1882 – 1967)의 작품은 평범한 공간과 인물을 다루고 있는 것 같지만, 어딘지 모르게 비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침대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방, 과하게 뻥뚫린 느낌을 주는 커다란  창문, 강렬하고 날카롭게  방안으로 들어오는 햇빛, 그리고 창문 너머로 멀리 보이는  건물들, 이 모든 것들이 꿈 속의 한 장면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침대 위 여인의 시선은  창밖을 향하고 있지만, 그녀의 공허한 표정과 눈빛은 그녀가 보고 있는 것이 창 밖의 풍경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좌) 호퍼, 호텔 창문, 1952, 캔버스에 유채, 101.6×139.7 cm, 개인소장

(우) 호퍼, 자동판매 식당, 1927, 캔버스에 유채, 71.4 × 91.4 cm, 드 모인 아트센터, 아이오와



호퍼의 여성들은 침실 같은 사적인 공간 뿐만 아니라, 호텔 로비, 자동 판매 식당, 사무실 같은  공적 공간에서조차 늘 혼자이다( 또 간혹 타인과 함께 있다고 해도 상대와 소통하지 않는다). 이들은 대부분 실내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거나, 창을 등진 채 생각에 잠겨 있는데,  그 창문 너머에도 칠흑같은 어둠만이 존재할 뿐, 사람이나 동물, 가로수,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다. 도시는 텅 비어 있고, 그녀들은 철저히 혼자이다.


호퍼, 뉴욕 오피스, 1962캔버스에 유채, 101.6 x 139.7 cm, Montgomery Musuem of Fine Arts, Montgomery, AL, US

호퍼는  특유의 세련된 화법으로  현대 도시인들의 우울하고 고독한 내면을 날카롭게 포착해낸 화가이다. 세부 묘사가 과감하게 생략된 심플한 화면 구성, 공허함이 극대화된 공간 표현과 그 안에 세심하게 배치된 한 두명의 인물들, 빛과 그림자의 강렬한 대비, 세련되고 감각적인 색채 등이 호퍼가 보여주는 도시풍경의 특징이다. 이러한 요소들이 어우러져 마치 영화나 광고의 한 장면을 뚝 떼어 캔버스 옮긴 것같은 인상은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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