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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Sep 14. 2024

눈 가리기

어른들은 모두 겁쟁이다

  사실은 내가 나를 속이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 부끄러움과 수치가 몰려온다. 대단한 다짐. 큰 꿈. 하지만 움직이지 않는 몸.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생각과 다짐들. 나는 게으른 야망가였다. 대단한 사람이 되려는 척 연기했지만 오늘 해야 하는 가벼운 할 일조차 마지치 못하는 사람이었다. 노력했다는 착각. 그건 말도 안 되는 억울함을 불러일으킨다. 세상을 탓하고 책임을 피하게 된다. 잠시는 편할 수 있다. 회피란 그런 것이다.


  책임이란 무엇일까. 책임은 생각보다 불합리하다. 갑자기 달려온 차에 발을 깔린 적이 있다. 사고에 대한 잘못은 운전자에게 있을지언정, 아픈 다리로 무엇을 어떻게 할 지에 대한 선택의 책임은 나의 몫이었다. 책임이란 그런 것이다. 억울하고 답답하더라도, 남에게 떠넘길 수 없는 것. 내 시간을 어떤 곳으로 채워넣을지에 대한 선택의 권리와 의무. 참 무거운 짐이다.


  그리고 마음은 너무나도 간사하여 무겁디 무거운 삶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수시로 스스로를 속인다. ‘내일부터 진짜 열심히 해야지.’ ‘마지막으로 조금만 쉬고 시작해야지.’ ‘안 하길 잘했지. 저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짓이야.’ 합리화. 내일의 나에 대한 기대.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회피일 뿐이다. 내게 주어진 지금의 시간에 대한 회피. 책임의 회피. 여우가 말하기를 신 포도가 어쩌구. 이솝 우화는 괜히 유명한 게 아니다.


  사실은 우리 모두가 무서워하는 게 아닐까. 완벽하고 멋들어지게 성공하고 싶은 마음. 그러나 무엇 하나 확실하지 않다. 도전은 늘 실패를 감수하는 일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덜컥 밀려오는 불안의 감정이 마음의 주도권을 잡기 일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른이 되어갈수록 어린애 같은 객기와 자존심은 커져만 간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익숙함의 울타리 바깥으로 나가기를 거부한다.


  걱정에 사로잡혀 앞으로 나아가기를 두려워하고 외면하는 것은 편하고 쉬운 길이다. 다만 그런 식으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가끔은 스스로를 상처 입히고 실망시킬 준비를 해야만 한다. 실패하더라도, 무너지고 넘어지더라도 유의미한 어떤 것을 얻어가려면 겁도 없이 달려들어야 한다. 그건 정말 어렵다. 아무도 나를 구해줄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밀려오는 공포와 외로움은 끔찍하며, 몹시 실존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눈물을 머금고 포근한 집을 벗어나는 선택을 내려야 한다. 사실 죽음보다 무서운 건 죽은 사람처럼 사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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