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y to the World Dec 18. 2023

바쁘다고 좋은 건 아니다.

- 2023년을 마무리하며.

올해가 거의 다 지나갔다. 난 연말이 되면 그 해를 돌아보며 이름을 붙이곤 하는데, 올해는 “정신 없이 지나간 바빴던 해”라고 부르고 싶다. 쏜살같이, 하나하나 모든 것을 붙잡고 숨을 고를 겨를도 없이 쌩쌩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모든 것을 다 잡을 순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올해의 순간들은 잡기에는 너무 빨랐다. 나의 기억 주머니 안에 추억들을 하나하나 담아 놓기보다 여러 일들을 처리하고 흘려보내기에 급급했다.

     

확실히 바쁘다고 해서 좋은 건 아니다. 내 생각일지 모르겠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바쁜 게 대단한 줄로 아는 것 같다. 나 바빠 이러면서 살짝 거들먹거리고, 힘들다고 하면서 은근슬쩍 자기 자랑하고, 일정이 빡빡한 게 나 좀 잘나간다, 중요하다 라는 증거라도 된다는 것처럼 군다. 적어도 난 가끔 그랬다. 가끔 그런 마음이 들었었다.

     

물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렇지만 지금 돌아보니 바빠져 보고도 싶었던 것 같다. 나도 모르는, 지금 알게 되는 나의 맘이었다. 고등학생의 나이인 홈스쿨러로서 고등학생보다 훨씬 널럴하게 살고 압박도 별로 없어 굉장히 행복한 삶이다, 나의 삶은. 그렇지만 이런 나의 삶을 어떤 사람들은 부러워하기도, 어떤 사람들은 그런대로 그냥 받아들이기도, 참 행복하게 산다고 비아냥거리는 느낌을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또다시 인정 욕구가 발동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 건데. 난 항상 이게 문제다. 너무 보여주고 싶고, 너무 해내고 싶다.

     

열심히 살았다. 체력도 많이 떨어지고, 중간에 발목 접질리기도 해서 난생처음 반깁스도 해보고(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겠다;;)…. 감사하게도 크게 아픈 적은 없었다.

      

일정이 많고 나름대로 빡빡한 삶 속에서 배운 것도 확실히 있다. 나의 체력을 관리하고 스트레스받은 몸을 쉬어주고, 의욕이 안 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하나 알아갔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큰 배움은…

“바쁘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

     

하고 싶은 게 많은 건 좋은 것이고, 바쁜 것이 나쁜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과유불급이다. 무언가를 하겠다고 결정을 내릴 때 내가 끝까지 할 수 있을지, 내 체력이 버텨줄지, 다 고려해 봐야 한다. 무작정 다 해버리면 진짜 하고 싶은 걸 못 하는 수가 있다.

     

올해. 나름대로 만족하기 위해 열심히, 바쁘게 살았다. 그렇지만 영 시원치 않다. 연초에는 책을 읽으면서 공부하고 언어를 공부하고 배우고 싶었었다. 나의 미래를 위하여 투자하고자 한 시간들이 그냥 지나가버린 기분이기도 하다. 물론 배운 건 많다. 제빵, 그림, 보컬동아리, 환경동아리, 기획 및 정책 제안, 반려동물 자격증….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읽고 싶은 책들을 많이 못 읽었다.

     

더군다나 이렇게 하는 것이 많으니 큰 행사를 치르고 와서도 다음 행사 준비하느라 끝난 큰 행사를 잘 마무리하고 그날을 즐기지 못한 적도 있다. 바빴다. 정신이 없었다. 아름다운 기억과 추억 속에서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책을 읽고 싶어도 죽치고 앉아 읽지 못했다. 감사를 잊었다. 내 삶 살기에 너무 급급해져 버렸다.

     

올해를 온전히 부정하고 싶지 않다.

보컬동아리를 하며 무대 서는 걸 많이 연습했고

환경동아리를 하며 더 새롭고 더 구체적인 환경 보호 실천도 더 알아갔다.

제빵을 더 하면서 케이크를 예쁘게 만들어 내는 쾌거를 이뤄냈고

두 번째, 세 번째로 MC를 보면서 실전에서 재밌어했고

또 기획하면서 즐거워했으며

따듯하게 마무리했다.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고, 

좋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이렇게 또 브런치 글도 쓰고 있다.

좋은 일, 이뤄낸 일도 아주 많았다.

     

그렇지만 아쉬운 것도 많았다. 바쁘다고 절대 좋은 게 아니다. 놓치는 게 많았다. 꾸역꾸역 의무감에 하는 것도 허다했다.

     

나의 속도대로 살자고 했건만 팔랑귀인 나는 또다시 사람들의 수군댐의 휩싸여 남들의 속도를 따라갔다. 그러나 지금 멈춰 섰다.

      

다시 내 속도를 찾을 생각이다.     

바쁘면, 

옆을 못 보고

앞도 못 본다.

소중한 것을 너무 쉽게 지나치고 

감사한 것을 당연하게 여겨 버린다.

     

성장발표회(우리 꿈드림(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에서 하는 마지막 연말 행사)를 마치고 뒤풀이가 꽤 많았는데, 우리(보컬동아리)를 칭찬해 주시는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말씀밖에 드리지 못했다. 집에 와서 기억났다. 선생님이 보컬동아리 영상도 열심히 만들어 주시고 사실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다 선생님의 응원과 땀의 결실이었던 건데, 내가 그걸 잊은 것이다!

     

지금까지 그런 것 하나하나 세세하게 기억하려 하고 그런 것들을 다 말로 표현하며 잘 감사했던 내가(뭐 그런 걸 자부하는 건 아니다) 이 사실을 까먹었다니! 그 까먹었다는 그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를 빌려 꼭 말씀드리고 싶다. 선생님들 안 계셨으면 여기까지 못 왔다고.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도, 했었던 것도 다 선생님들의 응원과 칭찬, 노력 속에서 이뤄진 거라고. 선생님, 저희만 노력한 게 아닙니다!

  

바쁜 사람들을 뭐라 하는 게 아니다. 다만 난 바쁘고 싶지 않다. 적당히 하루가 꽉 찬 사람이 되고 싶다. 열심히 무언가를 하다 차 한잔을 마시고, 책을 읽고, 주위를 둘러보며 걸어가는 휴식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부자들이나 하는 것일까?

      

바쁜 건 내가 선택해서 만드는 거다.

     

사람들이 내가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싫었다. 나도 나름의 고민과 씨름의 시간들이 있는데. 그런데 그 사람들의 생각이 그런 게 뭐 어떻다는 말인가. 어떻게 보면 그 마음 한 켠에 부러움이 숨겨져 있지 않을까. 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일단 나는 나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내가 행복하고 자유롭게 사는 게 뭐가 어때서. 어차피 그 바쁨은 선택 안 할 바쁨 아닌가.

     

다시 내 속도로 돌아온다. 이제는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 속도를 보여주고자 한다. 

바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가끔은 천천히 걸어가야 하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을.

사람 각자의 속도와 걸음걸이가 있다는 걸.

    

나는 오늘을 최선을 다해 살 것이고, 내일도 그리할 것이다.

나에게 따뜻한 차 한 잔과 햇빛을 선물하면서,

두꺼운 책 한 권과 두터운 크림이 뒤덮인 케이크를 선물하면서,

이러한 시간이 주어짐에 감사하면서,

지나가는 만남과 주어지는 시간들 속의 소중함을 발견하면서, 

추운 겨울에도 포근한 눈이 옴을 감사하면서,

바다에 가 파도가 모래사장 위를 지나가며 뿌려놓던 보석을 기억하면서,

나만의 세계와 꿈을 상상하고 실현하면서.

     

나의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때가 언제가 되든, 쫓기듯 살진 않겠다.

많이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이 중간중간에 많이 없었던 것만큼, 올해 남은 시간 동안 추억하고 기억하고 소중히 여기겠다.


모두, 남은 2주 파이팅하길 바란다! 나도 열심히 살아낼 테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