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도 모를 거면서
20여 개의 카드에 적힌 20여 개의 가치들이 내게 주어졌다. 1분 안에 반을 없애고 또 다섯 개만 남기고 또 세 개만 남기고 결국 한 개만 남겨야 하는, 잠시 약속한 운명. 우정, 사랑, 가족.. 그리고 결국 하나가 남았을 때, 그건 순수함이었다. 시작음이 울리기 전, 더 효율적인 진행을 위해 ‘가치 없는’ 가치를 없앨 때부터 눈에 띈 것이다. 내가 그때 말하지 않았더라면 정의 대신 정직이 없어졌듯이 그저 쉽게 사라졌을 것. ‘순수함’은 다른 이들에게는 한없이 쓸모없는 종잇장에 불과했으니. 그러니 누군가는 나의 ‘순수함’을 가식으로 보고, 내 결정을 의심하는 것이 놀랍진 않다. 그렇지만 나도 나에게 물어야 했다. 왜?
순수함, 그것이 나에게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C에게서 멀어짐을 느꼈을 때, 그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거리였고, 내가 순수하다고 생각한 모습이 사라졌을 때였다.
A를 만났을 때 한 번도 편하다고 느낀 적 없었고 무언가 엇나감을 느꼈다. 그건 그에게서 순수함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B에게서 말 못 할 배신감을 느낀 것은 무엇보다 그의 의도가 순수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을 때였다.
그 순수함이 뭐냐고 물었을 때, 난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이건 느낌에 가까운 것이라 어떻게 설명해도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 아무리 많은 예시를 들어도 우린 모두 이해하는 척, 설명하는 척에 불과한 것이다. 결국 짜낸 대답은 앞과 뒤가 같음이었고, 좋아하는 것에 진실됨이었다. 그때 나는 너무나 명확히 알게 되었다, 이건 아무도 이해 못 해!
그래서 순수해지고 싶냐는 질문에는 거짓말을 했다. 난 순수해지고 싶지 않다, 그저 난 내가 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내가 되어버려서 사라지는 것을 느끼는 순간은 순수한 사람과 함께할 때이다. 내 세상에 그들만 남게 될 때이다.
그래서 내가 아이들을 좋아하는 것일까? 순수할 수밖에 없는, 햇빛을 받아 무수히 반짝이는 이 존재.
내가 다르다는 걸 은연중에 느껴왔지만 그땐 그게 틀린 거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어떻게든 다수에 포함되고 싶었다.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는 포기했고,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안다.
그래도 어딘가 있지 않을까, 나처럼 느끼고 사유하는 사람이. 여기에서 멀어지면 죽음에 가까운,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세상임을 아는 사람이.
사진은 서울시립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