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다고 했잖아
일을 시작한 뒤부터 일상이었던 아이와의 미술 놀이가 특별한 일이 되었다. 집에서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전보다 줄어들다 보니, 시간은 항상 부족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미술 놀이를 매일 함께하고 싶다는 열망은 커져만 갔다.
새로운 일을 하고 싶어졌다. 하고 있던 일의 흥망성쇠가 결정된 것도 아니었다. 온라인 쇼핑몰을 시작하기 전부터 가지고 있던 꿈이 있었다. 아이와 그림을 그리고, 그림책을 보며 이야기하는 공간을 따로 마련하는 것이다. 엄마들과 아이들이 함께 모여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고 공감하는 장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현실 사이로 불쑥불쑥 들어오고 있었다. 이 고민을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좋은데? 나는 네가 쇼핑몰 하는 것보다 이 사업을 하는 게 더 좋을 거 같아.”
그냥 던진 말이었는데, 남편은 당장 사무실부터 알아보라고 말했다. 남편은 내가 무슨 일을 한다고 하든 늘 좋다고, 잘해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었다. 뒤늦은 나이에 대학원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도, 10년간 했던 디자이너를 다신 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도, 뜬금없이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을 때도, 사업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도 늘 “그래.”라고 대답했다. 변함없이 응원해 주는 모습에 고마움을 느끼던 찰나 한 가지 궁금한 게 떠올랐다.
“그런데 왜 쇼핑몰보다 이게 좋을 거 같아?”
“밤늦게까지 일한다고 잠도 못 자고 고군분투하는 게 보기 안쓰러워서 그러지.”
나도 남편에게 어깨를 내어줄 수 있을 만큼 단단하고, 믿음직스러워 보이고 싶었다. 남편의 한 마디가 고마우면서도, 동시에 나약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고 싶은 반항이 혼재되어 있었다.
남자가 마흔이 넘으면 인생의 고뇌도 깊어지고,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부담감도 짙어진다고 했다. 하루는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할 때가 있었다. 남편에게도 꿈이 있었다. 박사과정을 밟으며 일과 학업을 병행하고 싶어 했다. 남편의 커리어에 도움 되는 일이라 “꿈을 쫓아!”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박사 과정에 들어가면 생명줄과도 같은 남편의 급여가 실타래처럼 가늘어질 것만 같았다.
당시 남편의 급여는 곧 우리 가족의 생명줄이었다. 덜컥 합격해버릴까 봐 입학원서도 넣지 못하겠다는 남편의 말에 가슴이 아팠다. 남편은 억지로 자신의 꿈을 짓누르고 있었다. 재정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가장의 무게감을 덜어주고 싶었다. 남편이 나의 꿈을 같이 그려줬던 것처럼, 남편과 아이가 꿈을 꿀 때 함께 그려줄 수 있는 아내이자 엄마가 되고 싶었다.
얼마 전 남편에게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했다. 당장 꿈을 실현하지는 못 해도,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꿈꾸던 모습이 현실이 되어 있는 날을 마주할 거라고 했다. 나는 실제로 경험해 봤기에 남편에게 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나도 자극을 받았다. 남편이 돈 걱정 없이 꿈을 좇을 수 있도록, 내가 한 단계성장해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지금도 한 걸음 앞에서 남편의 손을 잡아 주고, 때론 기댈 수 있는 어깨를 내어 줄 수 있을 만큼 단단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 괜히 박 대표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꾸준히 성장하는 삶을 살아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