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이랑 손만 잡고 걸어도 좋은 것
아무것도 하지 않고 벤치에 앉아 지는 석양만 바라봐도 좋은 것
그게 신혼여행이지! 조용하고 경치 좋은 곳으로 떠나는 신혼부부들과 달리
나는 결혼 전부터 정해둔 곳이 있었다.
1년 8개월의 외국생활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향수병에 걸렸다.
다름 아닌 외국으로 다시 나가고 싶어 걸린 그리움이었다. 캐나다 토론토에서의 생활이 잊히지 않을 즈음 한국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1년간 연애를 하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결혼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너무 자연스러웠던 탓에 결혼식과 혼인신고 그리고 신혼여행의 순서가 뒤바뀌었다.
결혼식 6개월 전에 혼인신고를 마치고 바로 신혼여행을 준비했다.
"신혼여행 어디로 가고 싶어?"
남편의 질문에 1초도 생각하지 않고 "캐나다로 가자" 답했다. 아직 결혼식도 안 올렸고, 이제 막 혼인신고를 마친 터라 남편의 사랑과 배려가 넘치던 무렵이었다. 남편은 1초도 생각하지 않고 "그래"라고 답했다. 남편과 어디에 있든 그곳이 파라다이스다라는 생각은 핑계였고, 그리운 캐나다를 너무 가고 싶었다. 신혼여행은 길게 다녀올 수 있으니 이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캐나다로 이견없이 정했다는 기쁨과 동시에, 어느 도시로 갈지 행복한 고민이 이어졌다. 토론토에 살면서 여행했던 퀘벡과 몬트리올을 제외하면 밴쿠버와 빅토리아가 궁금해졌다. 도시적이고 냉소적인 느낌의 동부지역보다는 관광지로 유명하고 따뜻한 느낌의 서부도시들도 경험해보고 싶었다. 남편과 처음 떠나는 해외여행의 설렘보다는 다시 밟을 캐나다 땅에 대한 기대감으로 출국일을 기다렸다.
우리는 밴쿠버 국제공항에 도착해서 다운타운에 있는 숙소로 향했다. 짐을 풀고 동네 곳곳을 걸어 다니며 그 도시의 공기와 분위기를 느끼는데 집중했다. 물론 나 혼자 느꼈다. 남편은 크게 티 내지 않았지만 '내가 이렇게 길거리를 돌아다니려고 신혼여행을 온 게 아닌데'라는 표정으로 묵묵히 함께 걸어주었다.
신혼여행지로 캐나다를 정했을 때 가장 먹고 싶은 게 떠올랐다.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서 스테이크도 썰고, 맛있는 양식으로 먹고 와인도 한잔 하면 좋겠다고 남편은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나는 그 흔하디 흔한 베이글이 먹고 싶었다. 한국에서도 줄 서서 먹을 만큼 맛있는 베이글 가게도 많은데 굳이 캐나다까지 가서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베이글이라니,,, 남편은 그저 소박해서 보기 좋다며 그런 나를 사랑으로 덮어주었다.
우리는 호텔에 가방을 내려두고 곧장 팀홀튼부터 찾았다. 2년 전 새벽 3시에 출근하면서 팀홀튼에서 지독하게 베이글을 구웠는데, 그 또한 그리움이었을까? 팀홀튼에서만 파는 에브리띵 베이글에 버터를 올리고 따뜻하게 내린 커피 한잔이 그렇게 먹고 싶었다. 신혼여행지에 와서 그 소원을 풀다니..
비행 14시간, 이동 1시간 만에 밴쿠버땅을 밟았는데 첫끼가 베이글이라니. 행복이 별거인가?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앉아 먹고 싶은거 먹으면 그만이지.
나는 남편과 신혼여행지에 와서 나의 사심을 풀어서 좋았고, 남편은 나의 소박하고(?) 순수한(?) 욕심에 반했고, 뭐가 됐든 이래저래 서로 좋은 시간이 되었다.
밴쿠버로 출장 와서 몇 주간 지내면서도 좋다는 생각 못했다는 남편인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신혼여행지를 양보(?)해준 덕분에 나는 소원풀이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