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을 진행할 병원을 알아보고 있던 어느 날 남편이 메일을 보내왔다. 생소한 6개의 이름이 적혀있었고 맘에 드는 이름을 골라보라고 했다. 생기지도 않은 아이의 이름을 벌써 작명한 것일까라고 생각했겠지만, 그것은 사실 내 이름이었다.
아이가 부부에게 오는 때가 다 있는 거겠지만 남편은 그때를 그 운을 당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나의 이름에서 자식 운이 약하다고 생각했고 좋은 이름을 몇 개를 지어 왔다. 부창부수라고 했던가?
나는 무슨 이름을 바꾸라는 거냐며 잔소리 한번 하지 않고 오히려 신나는 마음으로 이름들을 보았다.
어떻게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묻는다면 사실 잘 모르겠다. 임신하고 싶은 절박한 마음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던 것 같다. 새로운 이름으로 새로운 내가 되면 뭐든지 잘 될 것만 같았다.
그날 저녁 남편과 나는 작명소에서 받아온 이름을 함께 보며 이 이름은 너무 아니지 않냐며 낄낄거렸다. 남편은 새로운 여자 친구가 생긴 듯 이 이름 저 이름 신이 나서 하나씩 불러보는데 나는 괜스레 쑥스러웠다. 다음날 남편 없을 때 혼잣말로 익숙한 나의 성에 어색한 이름들을 하나씩 불러보았다. 하나하나 다른 느낌이었다. 이건 도저히 양심에 걸려 부르지 못한 어여쁜 이름도 있었다.
나의 원래 이름은 중성적인 이름이다. 학교 다닐 때 나의 이름과 같은 남자아이가 반에 꼭 한 명씩 있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영어 이름을 지을 때도 몇 개의 이름을 골라 직장동료들에게 어떤 이름이 나의 이미지와 잘 맞느냐고 물었었는데 제일 많은 표를 받은 이름이 중석적인 느낌의 영어 이름이었다. 본명의 느낌 따라 애교가 없는 건지 애교가 없어서 중성적인 느낌의 이름이 잘 어울리는 건진 잘 모르겠지만 지인들에게 나는 애교 없고 털털한 사람인 건 맞다. 가족들은 내가 이름을 바꾼다고 하면 어떤 반응일까? 양가 부모님 모두 우리 부부의 뜻을 존중해주셨다. 특히 친정 부모님에게 감사했다. 인생을 어진 마음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지어주신 이름답게 적어도 나는 사람을 만날 때 상대방이 나를 속이거나 해하지 않을까라는 편견 없이 어진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났다. 너무 어질게 살았나? 사람 볼 줄 모른다는 말도 꽤 들었다. 이름에 부응하며 현명하게 살지는 못한 것 같다. 그래도 사는 동안 늘 현명한 여자가 되자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으니 이름이 주는 힘이 큰 건 확실하다.
양가 부모님과 시누이 가족 그리고 나의 남동생에게 이름을 보여줬다. 다들 맘에 드는 이름을 하나씩 골랐다. 나의 이미지랑은 조금 먼 것 같은 이름도 꽤 있었고 개인적으로 이쁜 이름을 선택한 느낌도 들었다. 어떤 이름이든 다 좋다는 의견으로 표가 나누어졌고 결국 선택은 온전히 내 몫으로 돌아왔다. 남은 인생 살아가는데 등대가 되어 줄 나의 두 번째 이름에 대한 책임은 내가 가져가야지. 부르기 좋고 이름도 이쁘고 뜻도 좋은 이름을 2개 골라놓고 며칠 동안 번갈아 가며 불러보았다.
남편이 어느 날은 A 이름으로 나를 불렀고 어느 날은 B 이름으로 나를 찾았다. 나는 들었을 때 조금 더 정이 가는 이름을 최종적으로 선택했다. 모든 서류에 나의 이름을 바꾸고 주민등록증까지 새로 만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나의 이름을 바꾸는 일을 시작으로 아이를 만날 준비를 하나씩 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