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개화하던 시기에 아이는 세상 밖으로 나왔고 낙화할 즈음에 나는 병실 밖을 나올 수 있었다.
봄스러운 꽃향기 한 번 맡아볼 새도 없이 같은 병원 위층에 있는 산후조리원으로 올라갔다. 봄의 향기는 가까이하지 못했지만 그렇게 기다리던 아이의 살결 냄새를 곁에 두고 맡을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아이 낳고 산후조리하기에 부담이 없는 3월이다. 아침 8시 30분이 되면 간밤에 떨어져 잔 아이를 보러 신생아실로 갔다. 간호사들이 수유 일지에 적어주는 반가운 숫자. 36.5~37. 아기가 잘 자라고 있다는 증거였다. 몸의 회복이 더뎌서 한동안 모자동실을 하지 못했다. 임신도, 출산도, 육아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이른 아침 아이의 얼굴을 보니 간밤의 피로가 사라진다. 입을 귀에 걸어놓고 아기를 데리고 방으로 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젖을 물리는 일이었다.
‘아이를 안을 때 느껴지는 이 따스함이 36.5 도구나.’
피부가 맞닿자 느껴지는 온기를 몸으로 그리고 가슴으로 새긴다. 시간이 흘러 아이랑 함께 한집에 산 지 80일이 되었다. 배고파도 울고 졸려도 울고 눕혀 놓기만 해도 우는 탓에 내 귀에서는 “애앵~”소리가 멈출 틈이 없었다. 아이의 젖병을 씻어 소독하기 위해 주방에 있을 때였다. “애앵~” 울음소리가 들렸다. “오구오구 왜 울어? 엄마 갈게” 습관이 되어 버린 영혼 없는 말을 내뱉고 아이에게 다가갔다. 뭔가 불편해 보이는 듯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했다. 이상한 느낌에 아이를 안았다.
이 체온은 내가 알고 있는 36.5도의 온기가 아니었다. 평온한 6월 어느 평일 오후의 공기는 아주 덤덤했기 때문에 아이의 몸이 뜨겁게 느껴진 것은 착각 일리 없었다.
“오빠, 아이 몸이 뜨거워! 어떡해..”
“체온계로 한번 열을 재봐.”
체온계 액정에는 빨간불과 함께 38.3도라는 숫자가 찍혔다.
‘100일 미만의 아기가 38도가 넘으면 무조건 응급실로 오라고 했는데...’
그 순간부터 별별 생각이 들었다. 신생아 고열을 위험하다.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와서 열이 나는데 심하면 패혈증이 올 수도 있고, 구토, 설사, 경기 등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 아이가 분유를 먹다가 조금만 게어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엄마는 38.3이라는 숫자를 보는 순간 심장이 떨렸다.
“오빠 응급실 가야 할 것 같아. 빨리 가자”
“금방 열이 내릴 수도 있잖아 조금 더 지켜보자”
기다려볼 일이 아닌데 남편의 침착한 반응에 서운하다 못해 화가 났다. 초보 엄마가 호들갑을 떠는 걸 수도 있으니 최대한 억누르며 침착하게 대답했다.
“신생아가 100일 이전에 고열이 나면 무슨 이유이든 위험할 수 있다고 했어”
설령 아무 일이 아니더라도 대학병원이 집에서 10분 거리였기 때문에 해열제라도 받아오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이를 둘러업고 응급실로 향했다. 남편은 병원 1층에 우리를 내려주고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데스크 앞에 서서 응급실 접수를 하고 있을 때 주차를 끝내고 남편이 올라왔다. 접수를 진행하는 동안 남편은 아이를 안고 응급실 앞에 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묻는 데스크 직원은 엉덩이에 불이 붙은 내 마음을 알 리가 없다. 황급히 접수를 마치고 응급실 앞으로 갔다. 1분이 10분 같았던 시간이 지나고 우리 차례가 되었다. 간호사는 아이 발에 팔찌 하나를 체우며 물었다.
“아이가 열이 언제부터 났나요?”
“마지막으로 몇 시쯤 열을 체크했어요?”
“이렇게 열이 난적이 있었나요?”
“해열제는 먹이셨나요?”
끊임없이 물어보는 질문에 내 머릿속에 하얘졌다. 소변검사와 피검사를 해봐야 왜 열이 나는지 어떤 바이러스가 들어갔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검사를 위해 옆방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180cm 정도의 길고 차가운 파란색 입원실 침대 위에 우리 아기를 눕혔다. 기저귀를 벗겨 소변 봉투를 채우고, 피를 뽑았다. 나는 옆에서 소리 없이 울기만 했다. 어떤 감정이 복받쳐 눈물이 흘렀는지 생각하기도 전에 그냥 눈물이 흘렀다. 눈물 자국을 자연스레 흘겨 닦고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집에서 급하게 나온 탓에 기저귀며 쪽쪽이며 손수건이며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못했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남편이 아이 짐을 가지러 집으로 출발했다. 10분이 지났을 즈음 검사 결과가 나왔다.
“어머니 아기 소변검사 결과 세균수치가 높아요. 요로감염으로 보여요.”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요로감염이 무슨 큰 병인 듯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었다.
“입원 치료가 필요해요. 염증 수치가 낮아질 때까지 항생제 투여하면서 좀 지켜봐야 합니다. 다른 검사들도 받고요.”
아니 이게 무슨 마른 주말 오후의 날벼락인가! 아기 기저귀 한두 개 가지러 갔던 남편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 기저귀 두 팩과 이불, 우유병 등 내가 보내준 리스트대로 짐을 챙겨 왔다. 입원 수속을 하기 위해 간호사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감염을 우려해 보호자를 1명만 허용한다고 했다. 당연한 듯 엄마인 내가 당첨이 되었다.
걱정부터 밀려오는데 설상가상 1인실이 만실이라고 했다. 아픈 아이를 안고 어쩔 수 없이 텅 빈 6인실에 들어갔다. 사람이 없는 큰 병실은 냉기가 흐르다 못해 으스스했다. 시작부터 눈물이 났다. 울면서 청승 떨고 있는 사이 집을 가지고 남편이 왔다. 병실 밖에서 가방을 건네받고 남편을 얼른 집으로 돌려보냈다. 발걸음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던 남편은 언제든지 힘들면 전화하라는 말을 하고 갔다.
으쓱한 기운이 감도는 차가운 병실에서 아이와 나의 첫 입원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