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스물다섯 번째 봄, 4월 3일

엄마와 아빠가 결혼한 날

by 네로

사랑하는 규담아,

생일 축하해.

스물다섯 번째 봄을 지나고 있는 너에게

아빠는 오늘, 아주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구나.


아빠의 스물다섯 번째 봄에,

아빠는 너의 엄마와 결혼을 했단다.

5월의 어느 따뜻한 날이었지.

벚꽃은 다 져 있었고, 햇살이 초록잎들을 통과해

예쁘게 흩어지던 그런 날.


우리 결혼식엔 주례가 없었어.

아빠와 엄마가 하객들 앞에서 서로에게 직접

약속을 주고받았단다.


아빠는 “주식하지 않겠습니다.”

엄마는 “소주 병나발 불지 않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단다.

둘 다 진심이었고, 지금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지.

물론 항상 지키기는 너무 어렵더구나.


너의 외할아버지, 그러니까 엄마의 아버지는

결혼식 당일 너무 긴장하셔서,

엄마와 아빠는 함께 입장을 했단다.

그 모습이 무척 자연스러웠고,

지금 돌아봐도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

우리는 꼬마신랑과 꼬마신부였단다.


아빠가 장인어른, 장모님께 인사드릴 때는

정성스럽게 큰절을 올렸단다.

그런데 할아버지와 할머니 쪽으로는 목례만 했더니,

저 뒤쪽에서 어떤 아저씨가

"호로자식이네~!" 하고 소리치셨지.

그 말에 다들 웃음이 터져서,

결혼식장이 잠깐 장터처럼 시끌벅적해졌어.


신혼여행은 바로 가지 못했어.

아빠가 그땐 일이 많아서,

결혼식 다음 날에도 바로 출근했단다.

우리의 진짜 여행은 6월 중순에,

엄마와 푸켓으로 떠난 신혼여행이었어.

햇살은 눈부셨고, 바다는 따뜻했고,

무엇보다 엄마가 정말 예뻤단다.


엄마와 아빠는 3,000일을 만나고 결혼했어.

긴 시간 동안 서로를 알아가고,

사소한 버릇까지도 익숙해지면서,

결혼이라는 하나의 계절을 맞이하게 되었지.


지금도 아빠는 그 첫날 아침을 잊지 못해.

눈을 떴더니,

옆에 엄마가 자고 있었고,

우린 동시에 눈이 마주쳤단다.


그 순간 엄마가 했던 첫마디가 뭔지 아니?

“빨리 안경 써. 수제비 씹다 만 것처럼 생겼어.” 였단다.


우리 둘은 아침부터 한참을 웃었단다.

그 웃음이, 우리의 삶을 오래도록 따뜻하게 데워주었어.


규담아,

오늘 네 생일을 축하하면서,

아빠는 너의 삶에도 그런 따뜻한 장면들이

하나씩 차곡차곡 쌓이길 바란다.


사랑하는 사람과 눈 마주쳤을 때,

그냥 웃음이 나는 순간.

그걸 평생 잊지 못할 만큼

가볍고도 깊은 하루.


아빠가 없더라도,

그런 날이 너에게 자주 찾아오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이 편지를 쓴다.


네가 웃는 봄,

그것만큼 소중한 선물은 없단다.


규담아,

아빠는 늘 너에게 말하고 싶었단다.


사랑한다.

말로 다 닿지 않을 만큼,

너를 처음 품에 안았던 그날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아빠는 한결같이 너를 사랑해 왔어.

그건 아마, 네가 이 편지를 읽는 지금도 계속될 거야.

규담이가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영원히.


보고 싶다.

너의 웃음, 너의 옹알이, 너의 울음.

아빠는 다 기억하고 있어.

아마 지금의 너는 더 어른스러워졌겠지만,

아빠 기억 속 너는 언제나 한 손엔 엄마의 머리카락을,

다른 손엔 아빠 손을 꼭 잡고 있던 아이야.

가끔은 문득 너를 안아보고 싶어지는 날들이 많단다.


규담아,

어떤 계절을 살아가든

너는 그 안에서 너답게 피어나기를 바라.

누구의 삶도 아닌,

너의 이야기로 가득한 인생을 살아가렴.


그리고 기억해 줘.

지금 이 순간에도

너라는 사람을 진심으로 믿고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아빠는 아빠 옆에서 잠들어있는 어린 규담이를 보면서도,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있을

너를 기다리고,

너를 그리워하며,

지금 이 순간도 너를 위해 이 편지를 남긴다.


봄에,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