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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수다 왕언니 Oct 24. 2023

나의 등급은?

[변신_프란츠 카프카 저_을유문화사]를 읽고...

고등학생 딸아이를 둔 지인을 만났다. 우리의 대화주제는 온통 학업과 입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녀는 한 지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엄마는 모자란 자녀의 학원비를 벌기 위해 백화점에서 판매직으로 일을 한다고 한다. 그렇게 번 돈으로 학원을 보내는데, 아이의 성적은 신통치 않은가 보다. 공부는 못하지만학교생활도 열심히 하고 학급의 궂은일도 도맡아 하는 착한 딸을 그 엄마는 미워한단다. 미운마음이 솟구쳐서 자꾸 괴롭다고 나의 지인에게 털어놓았단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금지옥엽 키웠던 우리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가서 등급을 받는 순간, 그들의 대우는 달라진다. 숫자에 따라 그들의 존재가치가 변하는 이 웃픈 현실이 씁쓸하다. 입시 관련 기사에서 우연히 읽었던 한 댓글이 기억난다. 아마 고등학생이 쓴 댓글이지 싶었다. 우리가 무슨 한우도 아닌데, 등급으로 차별받는지 억울하다는 글이었다.


어느 날 아침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버린 한 청년이 있다. 그의 이름은 그레고르 잠자이다. 그는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사람이다. 여동생을 사랑하고 나이 든 부모님을 대신하여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 왔다. 하지만 벌레로 변해버린 그를 가족들은 외면했고, 나중에는 돌보지 않는다. 결국 쇠약해진 그레고르는 죽음을 맞이한다. 100페이지의 짧은 소설인 카프카의 변신을 나는 드디어 읽었다. 꽤 유명한 소설임에도 이제야 읽은 이유는 단순하다. 하루아침에 벌레로 변한 남자이야기는 나의 흥미를 끌지 못했고, 카프카의 소설은 어려울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벽한 반전이었다. 가독성도 뛰어나고 심리묘사도 탁월했다. 적절한 사건과 묘사만 담으면서 완벽하게 인간군상을 표현한 카프카는 위대한 작가다. 세계문학을 읽으면서 개인적인 감상이 명성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었다. 어렵기만 하고,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작품들 말이다. 하지만 카프카의 작품은 쉽고 재미있었다. 그의 다른 소설들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레고르는 흡사 처자식을 위해 젊은 시절 열심히 일한 아버지들의 모습도 생각나게 한다. 경제력을 상실한 남편들이 집안에서 귀찮은 존재로 여겨지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인생의 뒤안길에서 쓸쓸하고 외로운 노인들의 모습과 그에 대한 처우와 닮아 있다.


인생의 반을 넘긴 나는 요즘 노년의 삶에 관심이 많다. 유튜브에서 친절한 알고리즘이 노후준비나 노년의 삶에 대한 영상을 수시로 추천한다. 이런 영상들은 주로 경제적인 노후준비 방법과 마음자세를 담고 있다. 희망적이고 즐거울 것이라는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뒤로 하고, 과연 주체할 수 없는 시간들을 어떻게 소비할 것인지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다. 그 오랜 시간을 나는 무엇을 하며 지내야 한단 말인가? 생각보다는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당연한 명제를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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