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겸양 Jul 31. 2023

일찍 퇴근하지 않는 부장님을 이해하게 됐을 때

어느 순간부터 퇴근이 그렇게 달갑지 않게 됐다.

그저 본능적으로 퇴근이 좋았던 때가 있었다.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그냥 집에 간다는 게 좋았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퇴근하는 차 안에서 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에 가서 빨리 씻고, 밥 맛 나게 먹고, 게임도 하고, 영화도 보고, 준비하는 시험이 있으면 공부하여도 하고... 그렇게 설레면서 퇴근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 결혼 후에는? 아이가 없던 주말부부 시절에는 어느 정도 유지가 되었으나,

그건 찰나의 꿈같은 시간이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만큼 더 희생하고 짊어져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는 의미겠지     


내가 뭘 그렇게 희생하고 책임지냐고 할 수 있을까? 당연한 것, 일반적인 것,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대다수의 사람이 하고 있는 것?

그래, 그 당연한 것이 절대 쉽지 않다는 걸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변수가 존재하고, 특히나 자신을 컨트롤하는 건 더욱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은가?     

먹고 치우고 씻고 정리하고,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집안일,

그걸 만 2세의 아이를 케어하며 때로는 혼자서 해야 한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개인 시간을 가졌던 그때는, 아이가 잠든 후 피로감에 같이 쓰러지는 것으로 희미해져 버렸다. 체력이 문제인가?               



결혼을 하고 아기가 생기면, 이전과는 확실히 달라지는 부분이 많다.

그 과정도 행복하게 일궈야겠지만, 처음이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은 건 확실한 것 같다.

사회에서 딱히 이에 대해 가르쳐 주는 건 없다.

가정마다 너무나 상이한 형태의 삶의 조건과 환경이 주어져 있으니, 당연한 걸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일반론은 충분히 나눠볼 수 있지 않겠는가.     


어렸을 때 결혼 전 부모 교육이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기 전이었을까, 별개의 얘기지만 부모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느꼈었다. 그런데 내가 부모가 되니, 나는 어떤가?

    

꽤나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그래도 부족하다는 양가감정이 있다.      

충분히 좋은 부모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 중에도, 이상적인 양육을 못 해주고 있다는 생각,

그리고 정신과 육신의 건강을 어느 정도 잘 관리하고 있는가 불안할 때가 많다.     


이러다 아프면 어쩌지, 왜 이렇게 피곤하지,

의욕이 없어지고, 자신감이 떨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사설이 길었다.

퇴근을 좀 유연하게 할 수 있는 회사 분위기에서 부장님은 굳이 일찍 퇴근을 하려 하지 않으셨다.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딱히 할 일도 없는데 왜 회사에 앉아 있으려고 할까?

그런데, 지금은 이해가 간다. 나도 집에 가는 것보다 회사에 있는 시간이 더 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회사가 좋은 것도 있겠지만, 집에 가서 할 일? 들이, 그렇게 설레는 일들은 아니어서 일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보고, 함께 하는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지만, 때로는 과제의 영역에 속한 것들도 많다.

지금은 휴가 기간이다. 그런데 전혀 설레지 않는다.

이번에는 어디를 가야 하나, 그냥 하나의 치러야 할 행사 하나가 앞에 있는 기분이다.

왜 이것들이 하나의 일처럼 느껴지는 걸까?     


혹시 성찰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서 인가?

유의미한 개인적인 시간을 갖지 못하고 있어서 그런가?

현실적인 문제들로 삶에 찌들어서 그런가?

그럴지도, 여하튼 중요한 건 자아를 굳건히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존재의 원의가 나의 지향이 되길 바랐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개인의 고유함과 독립성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역설적이지만 그것이 전제되어야 온전한 일치 또한 이뤄질 수 있다.

가톨릭 신앙의 원천이자 핵심 교리인 삼위일체의 신비 또한 그러한 부분은 담고 있다.     


나는 지금 나답게 살고 있는가, 출퇴근이 부담스럽지 않은 배부른 사람의 넋두리가 될까 염려도 되지만,

나도 충분히 머리 아픈 일들이 많은 사람이니, 이 정도는 괜찮을 거라 자위해 본다.           

20-30분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나는 한 번씩 말한다.


“부장님 오늘은 바로 집에 들어가지 마시고 밖에서 바람 좀 쐬고 들어가십시오.”      


정작 나도 일찍 나오면 집 말고 갈 곳이 애매해서

밖을 한참 운전하며 기웃거리다 주차장에서 20분을 훌쩍 넘기고 집에 들어가곤 한다.

하,.. 도시의 삶,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고 조용한 공원에서 멍이나 때리면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그런 자리가 잘 없더라.     

집에도 내 방이 없는데, 내 후년쯤에는 생기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어머니 암이 재발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