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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겸양 Apr 26. 2023

‘세상에 쉬운 건 없다. 그렇다고 안 될 것도 없다.’

장기침체 속에서 생존을 위한 여정

주로 사무실에 앉아 있다 보니 머리가 굳는 것 같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짬을 내서 몇 자 적어 본다.    

 

2010년 한병철 ‘피로사회’가 출간되었다. 당시 무한경쟁 체제 속에서 심신이 지쳐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은 적잖은 공감과 반향을 일으켰다. 그런데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 피로도 높은 ‘을들의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내 눈에는 향후 5년, 길게는 10년 동안의 사회적 암흑기 속에 신음할 민중들이 보인다. 건국 이래 최악의 경제 상황을 겪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공공기관의 보고서들을 통해 유추된다. IMF 때와는 다른 단기간으로 끝나진 않을 복합충격이 진행되고 있다. 이미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조차 갚지 못하는 좀비(=한계) 기업들은 상장기업의 3분의 1을 훨씬 넢어섰고, 정부의 관리 아래 기업도산과 가계파산은 순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이후 세상은 또 다른 아비규환에 들어섰다. 세상에 던져진 나 역시 앞을 내다보며 가능한 대비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 몇 주 주말마다 앞으로의 보금자리를 준비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다니며 매물로 나온 집과 상가를 보았다. 공실과 폐업 정리가 안 된 수많은 가게들, 곳곳에는 상가 임대·매매와 할인분양과 애프터리빙, 중도금 무이자 등 현수막이 거리를 장식하고 있었다. 수중에 자금은 부족했지만 미래를 그려보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타인의 피눈물 위에 겸허한 마음을 잃지 않도록 경계하며, 분위기를 읽으며 여차여차 움직였다.     


2돌이 안 된 아기와 함께 장시간 이동하는 일은 쉽지 않다. 혼자라면 도저히 상상도 못 할 일이었을 테다. 어른들의 일로 힘들어하는 아이를 보면 미안함과 잘 견뎌줬다는 고마움을 느낀다. 새삼 예전 부모님들은 어떻게 살았나 싶다. 모두 각자 시대의 어려움이 있는 거지만 주변의 어떠한 도움도 없이, 이혼 후 두 아이를 혼자 일하며 키운 50대 면접자와의 대면을 떠올리면, 그런 모든 분들께 훈장이라도 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와이프가 말했다. ‘이것저것 다 봤지만 마음에 드는 물건이 없네요. 그 큰돈을 지불해서 이런 물건을 매입하는 것이 과연 맞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요. 가능하면 집은 임대 주택으로 들어가고 상가를 따로 구입하는 것이 어떨까요?’       


그 말을 들으니, 마음 한편이 편안해지면서도 또다시 미뤄야 할 것 같은 내 집 마련의 목표 때문에 애써 눌러오던 조바심이 올라왔다. 그러다가도, 다시 ‘그래 천천히 가자.’라는 뭔가 내려놓는 듯한 묘한 느낌이 나를 감싸왔다. 우리 상황에서는 그게 최선의 방법일 수 있겠지. 가진 건 없고, 수익을 낼 수 있는 무엇을 마련하고자 한다면 거주지에 대한 원의는 뒤로 미뤄둬야 할 것이다. 회사도 당장 그만 두지 못할 것이고, 하고 싶은 일도 임대로는 유지가 힘들고, 집도 마련을 해야 하고... 이사 갈 생각을 하니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와이프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세상에 쉬운 건 없다. 그렇다고 안 될 것도 없다.’ 

   

그래 쉬운 건 없다. 그리고 안 될 것도 없다. 또다시 마음을 다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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