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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things Oct 18. 2023

(단편소설) 사돈끼리 스위치

제4장. 이베리코가 이런 거였어. 

어느덧 진영이 민준이 부모님 댁에 와서 지낸 지도 벌써 5일이나 지나갔다. 

이제 이틀만 지나면 원래로 돌아간다. 

돌아가서 편하게 지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왠지 싫지가 않았다. 사람으로부터의 느껴지는 따스한 “정”이라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고, 자신에게는 전혀 쓸모없다고 여기면서 살아온 세월이었다. 


항상 “인생 뭐 있나. 돈이 최고지 뭐. 그리고 자식만 챙기면 돼. 부부도 헤어 지면 그만이지만, 돈하고 자식은 

평생 지켜내야 해”라는 신념으로 살아왔던 '진영'이었다. 

어디를 가더라도 주눅이라고는 전혀 들지 않고, 할 말 다하는 성격의 소유자인 그녀에게 민준이 가족의 

과잉스럽다고도 볼 수 있는 친절함이 거부감으로 느껴졌었는데, 이것이 곧 사라진다 생각하니까 

큰 무엇인가를 잃어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영철은 한번 크게 헛기침을 하더니 방에서 나왔다. 

“여보, 오늘 민준이네 가족들 불러서 같이 저기 아래 고깃집 생겼다는데 같이 가보는 게 어때?

지난번에 민준이 왔는데 애가 얼굴이 푸석 푸석하고 일이 많이 힘든가 봐. 같이 밥이라도 먹으면서 이야기 좀 들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지나가다 봤어요. 거긴 무슨 고깃집이에요?”

“이베리코라는 품종의 돼지고기를 파는데 맛있다고 하더라고. 당신이 민준이 한테 연락할 거야?”

“네. 제가 문자 남길게요.”

진영은 그렇게 이야기해 놓고 '인서' 생각을 했다. 지방이 많은 돼지고기보다 소고기를 훨씬 더 좋아라 하는 딸을 생각하니, 영철에게 소고기 맛있는 곳으로 가자고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민준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부모님이 삼겹살을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한 달에 몇 번씩은 꼭 식당에 가서 외식을 한다고 했다. 

그런 돼지고기 덕후로 알고 있는 민준이 엄마의 모습을 한 진영이 그런 이야기를 꺼내면 며칠 전 아팠던 것도 있고 민준네 식구 전부의 눈총을 계속이고 받아야 하는 처지였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서 저녁시간이 되었다. 

다들 모여서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삼겹살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딸 인서였기에 조금 걱정이 되었는데, 보고 있으니 젓가락의 움직이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이베리코는 맛있게 잘 먹고 있었다. 

“애미야. 요즘 민준이가 가게 일이 불황이라서 고생이 많구나. 한잔 받거라.”

“아니에요. 아버님. 제가 먼저 한잔 드릴게요.”

시아버지 영철과 며느리 인서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이야기 꽃을 피워 나갔다. 


진영은 혼잣말로 “이런 게 사람 사는 건가 보네. 바깥사돈 인상이 참 좋으시더구먼 마음씨도 좋으시네.”

누군가는 “관상은 과학이다”라고 이야기했다. 

그 말이 딱 들어맞는 말인 것 같았다. 

진영은 딸과 바깥사돈이 화기애애하게 지내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고서 흐뭇했다. 

사람의 경제적인 상황이 아무리 중요하다 치더라도, 관계에 서먹함이 생겨나면 행복은 존재할 곳이 

없는 것이다. 

너무 많은 걱정을 했었나라고 생각도 들었고, 마음이 놓였다. 

마음 쓰던 일들이 걱정 없는 일들로 바뀌어 가니 진영은 딸을 더 자주 볼 수 있는 시어머니로써 살아가고 있는 최근 며칠 동안 행복함도 자주 느끼었었다. 

세상의 누구나 걱정이나 염려했던 문제들이 사라지게 되면 , 왠지 모를 허탈함 같은 것이 

찾아온다고 하는데, 진영이 그런 격이었다. 

너무 쓸데없는 혼자만의 상상을 했던 것은 아니었는지부터 안도의 한숨까지 나오게 되었다. 

어른들의 옛말 “겪어봐야 안다.”라는 말이 틀린 말이 전혀 없는 “진리” 로 믿었다. 

며칠 전이면 진영은 도대체 칠일이라는 시간이 가기는 가는 걸까 라면서 불평, 불만이 가득했을 터인데 , 

5일이 지난 지금은 시간이 조금이라도 천천히 가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그 누구나 행복한 시간은 아주 천천히 흘러가기를 바란다. 

안 좋게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그저 상상했던 일뿐이라면,  역시 직접 눈으로 가까이서 딸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니까 안심이 되었다. 

경제적인 상황의 중요성도 삶의 여정 속에서 중요하지만, 어떠한 환경에 내가 속하여 있느냐는 것은 그 어떠한 것들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철이 갑자기 거실에 앉아 있는 진영에게 가까이 오면서 이야기를 했다.

“여보. 민준이네 바깥사돈 팔순을 하신다고 우리를 초대하셨네. 오랜만에 안사돈도 뵙고 애들하고 같이 

내려가 보자고.”

너무 당황스러웠다. 이제 이틀 남았는데, 이 시간만 지나면 원래로 돌아가는데 말이다. 

“저희가 대구로 내려가야 하는 거 맞죠. 민준아빠. 바깥사돈 팔순은 언제예요?”

진영은 알고 있었다. 평생을 같이 살아온 남편의 생일이기에 알고 있지만 모른 척하면서 물었다. 

“20일이니까. 낼모레네.”

왜 하필 마지막 날인지, 이것은 하나님이 나를 시험하시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 다시 담아 넣을 수도 없는 것이었다. 

진짜 민준이 엄마는 지난 5일 동안 어떻게 지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궁금해졌다. 

하루빨리 인서의 엄마 “진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틀만 참자. 잔치에 가서도 아무것도 모른 척하면 되는 거다. 하루만 딱 하루만 잘 참자. 

몇 번이고 속으로 다짐하고 다짐했다. 

속과 겉이 다른 인생을 사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기를 바라였던 게 바로 얼마 전이었는데, 불편함과 어색함이 다시 '진영'을 찾아왔다. 

하루빨리 대구로 가고 싶어졌다. 

"이틀만 빨리 지나가라! 두 다리 쭉 피고 내 소파에 누워서 티브이 좀 편하게 보게." 

생각만 해도 좋았다. 아주 소소하고 일상이었던 것들 조차도 잃어버렸다 다시 찾으면 

커다란 행복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런데, 안사돈을 만나면 어떻게... 나한테 말했듯이 안사돈에게도 이야기했겠지. 

 아무 말도 말라고 했는데, 그래야 원래로 돌아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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