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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 한 May 13. 2023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위로가 되는

북 에세이 1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위로가 되는     


 가끔 주변을 보거나 뉴스를 보면 우리가 진심을 다해 사과하는 법을 모르는 것이 아닌가 하고 궁금증이 생기곤 했다.  권력자들도 시민들에게 고용주도 고용자들에게 선생님들도 학생들에게 나 자신도 타인들에게 큰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사람들은 누구나 살면서 크고 작은 실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떤 자세로 사과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위선적이고 거짓된 사과가 아닌 진솔한 사과. 사실  사과 행위는 상처 입은 타인에게  용서를 구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자신도 그 행위를 통해 인간으로서의 격을 지킬 수 있다

 왜 진심 어린 사과가 어려운 걸까? 먼저, 자신의 잘못을 알지 못하거나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서 그럴 수 있다. 그냥 내가 잘못했을 리 없다. 걔가 오해하는 거야라고 우기고 싶다. 둘째,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셋째, 상대가 사과를 받아주지 않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다. 용서받지 못했을 때 민망하고 난처한 상황이 싫을 수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개인뿐 아니라 우리 공동체 속에서도 인간적 품위와 따뜻함을 담은 진심 어린 사과를 찾아보기란 어렵다.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자신의 무지와 부족함이 만든 상처에 대한 사과의 말은 달라지겠지만 ‘진심’을 담아 사과해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변함이 없다. 때론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그 어떤 것보다 상처 입은 이들에게 위로가 된다.

     

1.  A Small,  Good Thing

레이먼드 카버 Raymond Carver의 대성당 Cathedral 』에 수록된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의 영어 원제가 A Small, Good Thing이다. 영어에 서툰 사람이나 사전적 의미로 직역한다면 제목이 자칫 우스꽝스러울 수 있었다. 작고 좋은 것.. 조그맣지만 선한 것.... 제목을 한국어로 말하다 보니 자칫 소설의 첫인상과 내용 전달을 망쳤을 수 있겠다 싶다. 다행히도  번역자 김연수는 소설이 전달하는 분위기와 메시지를 상하지 않도록 제목을 제대로 번역해 놓은 셈이다. 소설가여서 그런가 역시!!! 뭐 어쨌든...

 단편소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앤 와이스가 다음 주 월요일이면 8살이 되는 아들 스코티의 생일 케이크를 주문하러 간 빵집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자신이 할 일만 묵묵하게 하는 아버지 뻘 되는 빵집주인은 말수가 적고 그녀에게 퉁명스러웠다. 그녀는 이런저런 사적인 이야기를 하다 그의 무뚝뚝 태도에 친근해지려 애쓰는 일을 포기하고 최소한 필요한 정보만 교환한다. 그녀는 집 전화번호를 남기고 월요일 오전에 찾으러 오기로 하고 떠난다. 

하지만 월요일 자신의 생일날 아침, 등교하던 아들 스코티가  뺑소니 사고를 당하고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하워드는 아내의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간다. 하워드와 앤 와이스 부부는 그동안 큰 불행 없이 순탄하던 삶을 살았다. 하지만 스코티의 사고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들의 행복한 일상은 아들 스코티가 깨어나기 만을 바라는 슬픔과 무기력함으로 대체되었다.     


“갑자기 모든 상황이 바뀌면 한 사람을 꺾어 버리거나 내팽개쳐 버리는 힘들이 있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지만, 지금까지는 그 힘들로부터도, 또 그 어떤 실제적인 위해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p. 95      


의식이 없는 스코티를 진찰한 의사 프랜시스는  부부에게 아이의 육체적 기능은 정상이며 혼수상태가 아니니 곧 깨어 날거라 말한다. 줄곧 병원에서 스코티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리던 하워드는 집에 잠깐 들른다.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마침 전화벨이 울린다.   

   

“여기 가져가지 않은 케이크가 하나 있어요.” 수화기 저편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말씀이죠?” 하워드가 물었다. 하워드는 무슨 얘기인지 알아들으려고 애쓰며, 수화기에 귀에다 바짝 붙였다. “케이크라니 지금 무슨 말입니까?” 그가 말했다. “젠장 지금 무슨 말입니까?”  “그렇게 말하면 안 되죠.” 그 목소리가 말했다. p. 95      


스코티의 상태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있고 아내가 케이크를 주문해 놓았다는 것을 알리 없는 하워드에게 그 전화는 무례하고 짜증 나는 감정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더 나아가 자신들의 불행을 조롱받고 있다고 여겼을지 모른다. 물론 와이스 부부의 비극적 상황을 모르는 빵집 아저씨의 입장 또한 황당했을 것이다. 월요일 아침 가지러 오겠다던 사람이 정성껏 만든 케이크를 가지러 오지도 않고 그녀의 남편이란 작자는 대뜸 화를 내며 따지는 듯한 태도를 보이니 빵집 주인도 화가 났을 것이다. 

스코티는 여전히 아무런 변화 없이 병상에 누워있다. 아들이 깨어나지 않자 아들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과 그들이 처한 불행을 이해할 수 없어 생기는 공포, 안일하고 무책임한 태도로 방관하는 의사. 그들 부부에겐 모든 것이 바닥이다. 게다가 그런 절망 속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거나 약 올리듯 끊는 전화가 계속 걸려온다. 부부의 분노도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불행히도 며칠 뒤 스코티가 잠시 눈을 뜬 뒤 의식을 잃고 숨을 거둔다. 부부는 사랑하는 아들을 순식간에 놓치고 마는 최악의 순간을 맞이한다. 그들은 이제 아들이 없는 삶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현실이 지옥이다. 아이의 죽음을 지인들에게 알리기 위해 집에 도착해 전화기를 잡으려는 순간. 그 전화, 분노 유발 전화가 또 걸려온다. 전화가 세 번에 걸쳐 시간적 간격을 두고 걸려온다. 그 사이 앤 와이스는 스코티의 생일 케이크와 빵집사장이 생각났다. 앤은 하워드와 함께 죽일 기세로 빵집 주인을 찾아간다.      


“ 내부 깊이 타오르는 분노로 그녀는 자신이 원래의 자신보다, 거기 있는 남자들보다 크다고 느꼈다.”

p. 123     


 부부의 폭발할 듯한 호전적인 자세에 빵집주인은 무척 당황한다. 그리고 자신도 빵집에서 밤낮으로 먹고살기 위해 성실히 일하는 사람이라며 나름대로 자기 행동에 대한 정당성과 심정을 토로한다. 그렇게 주문하고 오지 않으니 당연히 화가 났다고 말하며 케이크를 가져갈 거면 가져가고 아님 나가라고 말한다.   

   

“ 우리 아들이 죽었어요.”그녀가 냉정하고 침착한 목소리로 잘라 말했다. p.124     


 빵집 주인은 침묵한다. 모든 것이 이해된다. 그 순간 서로의 분노는 아무 의미가 없다. 

     

“두 분 다 여기 좀 앉으시오.” p. 125... 빵집 주인은 탁자를 치웠다.... 하워드와 앤은 의자를 탁자 쪽으로 붙이며 앉았다. 빵집 주인도 함께 앉았다.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겠소.” 빵집 주인이 팔꿈치를 탁자 위에 올리며 말했다. “내가 얼마나 미안한지는 하느님만이 아실 거요. 잘 들어요. 나는 빵 장수일 뿐이라오 다른 뭐라고는 말하지 못하겠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한 일들의 변명이 될 순 없겠지요. 그러나 진심으로 미안하게 됐습니다. 자제분에게 일어난 일은 안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가 한 일도 죄송합니다.”................

“나를 용서할 마음이 생기는지 여쭤도 봐도 되겠소?” 빵집 안은 따뜻했다. p.126      


    그 후로도 오랜 시간 부부는 빵집에 머물렀고 빵집 주인이 내어온 갓 구운 빵과 음료로 몸과 마음의 허기를 달래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2. “미안해요. 애기 엄마!”

노인 일자리 창출 프로그램 일환으로 칠순인 A씨 가 작년부터 도서관에서 봉사를 하게 되었다. 도서관 수칙에 따라 아이들을 안내하고 아이들의 독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일을 한다. 그녀는 그 일을 하며 나이 들어 일할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매우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일에 임했다. 

어느 날 도서관에 두  딸아이와 함께 젊은 엄마가 A 씨와 그녀 또래의 동료가 일하는 공간으로 입장했다. 첫째 아이는 살집이 있고 몸집이 엄청 큰 아이여서 제 나이보다 많아 보였다. 둘째 아이는 보기에도 아토피가 심한 상태였다. 온몸에 진물이 흘렀다. 출입문 앞에 계시던  A 씨의 동료가 아이의 엄마에게 “애가 왜 그래요?”라고 물었다. 그 순간 주변에 있던 아이들과 부모들이 그 아이를 보게 되고 몇 명은 그 공간을 떠나기도 했다고 한다. 게다가  A 씨의 동료는 “양말을 신기세요”라고 요구한다. 아이 엄마가 매우 당황했다고 한다. 그리고 한참 지난 후 젊은 엄마는 아이 둘을 데리고  A 씨가 있는 놀이 공간으로 왔다고 한다. 그 공간은 아이들이 책을 읽기도 하고 몸으로 독서를 체험하는 공간이라 나이 제한이 있었다.  A 씨는 그 전의 일은 모른 채  나이 제한을 염두에 두고 첫째  아이가 몇 살이냐 물었다. 

그 순간 아이들의 엄마는 폭발했다. “덩치가 커서 그렇지 아홉 살이라고 아까도 말했잖아요, 도대체 몇 번을 묻는 거예요”   A 씨는 그녀가 좀 전에도 다른 공간에서 그런 질문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 리 없었다. 하지만 젊은 엄마는 이미 너무나 화가 나서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밖에 있던 남편에게 이 사실을 말했다. 그러자 남편은 도서관 담당자를 찾아가 도서관 서비스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부당한 처우를 받았다며 매우 분노했다. 결국 담당자는  A 씨와 그녀의 동료를 부른다. 별안간 아이의 나이를 물어보았다는 이유로 그녀들은 대질 심문을 받게 된 셈이다. 수칙에 따라 맡은 바 소임을 다하려던  A 씨는 이 상황이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아이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고 그들 가족이 진상 고객이라 생각되어  A 씨도 화가 났다고 했다. 

그 사이 아이들의 아빠는 고함을 지르며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다고 한다. “아이 둘을 데리고 다닐 때 큰 애는 덩치가 크고 살이 쪄서, 작은 아이는 진물 나는 피부 때문에 사람들의 눈총 받고 다닌다... 도서관에서도 그래야 하나.... ”“ 하루에 나이를 몇 번을 물어보는 거야? 덩치 큰 게 죄야? 둘째 아이는 피부 때문에 괴로워하고 우리도 힘들고 고통받고 있는데 대체 왜들 이러는 거야?”  A 씨의 동료는 “그게 아니고 수칙을 지켜야 해서...”라고 말하자, 남자는 “여자 너는 가만있어! 입다 물고 가만있어!”라고 말했다.

 동료의 해명과 아빠의 고성은 계속된다.  A 씨는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계셨다 한다. 그 후로도 몇 분간 동료는 수칙이란 말을 반복하고 더 분노한 아이 아빠는 자신들이 받은 수모와 울분을 토해냈다. 당연히 담당자는 도서관 고객과 연세가 있으신  A 씨와 동료 분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참으로 난처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그 순간  A 씨가 차분하지만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요 애기엄마!”

“애기 엄마 나는 수칙만 생각했어요.  애기 엄마 입장은 전혀 생각 못했어요. 그런 질문들이 얼마나 애기 엄마를 힘들게 하는지 미쳐 생각을 못했어요.  미안해요!”

그 순간 아이 엄마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곤 화가 누그러지지 않은 남편에게 “누구 아빠 일어나요. 이제 가요.”라고 말하며 부부와 두 아이는 그 공간을 떠났다고 한다.           


조금만 더 타인의 마음을 미리 헤아려본다면...


* 참고문헌     

대성당 Cathedral  by 레이먼드 카버,  김연수 역, 문학동네,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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