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국가가 원칙적으로 북한을 우리 국가로 생각하고 탈북자가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면 국민으로 생각한다.
현역 정보장교 시절에 탈북자가 하나원에서 수료하고 대한민국에 얼마나 잘 정착하고 부적응을 하는지 당사자는 모르게 관찰자 입장에서 추적한 때가 있었다.
탈북자를 직원으로 채용한 사장을 면담해 보니 일을 안 하고 시간만 때운다. 일을 마치고 퇴근해 회식을 하면 위아래 구분도 못한다 그런 말에 그래도 힘들게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해 중국, 몽고, 라오스를 돌고 돌아 힘들게 온 사람이니 참고 기다려달라고 했다.
세월이 흘러 전역해 민간인이 되었고 탈북자를 만날 일도 없었는데 최근 도서관에서 소설을 쓰다가 탈북자를 묘사하기 위해 책을 빌렸다.
현역 시절에 탈북자를 채용한 사장님의 불만 하나의 원인을 알았다.
주변에 탈북자나 조선족 아니면 한족 중국인이 있으면 관찰해 보면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고 경제적으로 민주화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더 수평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국민의 대다수는 공과 사의 업무영역 구분 없이 언어생활을 한다.
회사의 괴장, 부장, 대표 등과 퇴근 후 회식을 해도 과장님, 부장님, 대표님이라고 호칭하고 술잔을 받아도 공손하게 받는다.
하지만 모택동이나 김일성이 이름하여 항일무력투쟁식에 공적인 전투나 사업에서는 계급을 유지하고 공이 아닌 사적 영역에서는 계급장을 떼고 동지로 호칭하고 실제 언행에서도 스스럼없이 대한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언어생활에는 공사의 개념 없이 상하가 존재하는 언어문화다.
먼 후일의 일이겠지만 남과 북의 통일을 위해 서서히 우리 언어생활도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이 구분되었으면 좋겠다.
다음 한 예를 그게 한다. 중국인 왕효령이 쓴 <한국 리포트>에 소개된 내용이다.
그녀가 중국 공무원연수단 일원으로 경희대학교에 연수를 왔다. 지도교수님과 연수단이 같이 식사를 했다.
중국의 부성장은 한국의 부지사에 해당하는 직급이다. 경리에게 라이터를 달라고 하니 경리가 자기 라이터를 상사에게 던졌다.
그것을 본 경희대 교수님이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중국이다. 직장 내의 생기는 서열은 일할 때만 존재하는 것이고 일을 떠나서는 동등한 인격체로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생각한다.
왕효령, <한국 리포트>(가람기획, 2003) 208 쪽
우리나라 사람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라이터를 던지는 행동을 무례한 짓으로 생각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공과 사의 경계를 명확히 긋지 않는 까닭에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무조건 최대한의 충성을 바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애사심이 없다거나 충성심이 없는 것으로 오해받기 때문이다.
군대에서 마지막 보직이 국군심리전단 군수과장이라 한여름에 비상이 걸리고 을지훈련이 개시되면 군장을 꾸려 서울 삼각지 심리전단에서 평택 캠프 험프리로 이동했다.
연합심리전사령관은 미군장군이 되고 우리 합참 민심부장이 부사령관이 되어 상황 브리핑이 한 줄은 영어 한 줄은 한국어로 브리핑했다. 모든 훈련을 마치고 만찬을 하였다.
한국군은 만찬장에서도 계급 상하의 연속인데 미군들은 정말 계급장 떼고 대화하듯이 했다. 그렇다고 무질서한 것 버릇없는 것이 아니지만 수평의 대화가 이루어졌다.
우리는 언제 저런 시대가 올까? 상상만 했었다.
그런데, 요즘 딸과 아들과 대화에서 내가 죽고 딸 아들이 내 나이 되면 그렇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