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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괴괴랄랄 Feb 22. 2024

뒤지려고 수면제 산 날 꿈을 꾸었다(1)

젠장쇼

사연을 바탕으로 각색한 이야기입니다.


나는 대학교에서는  3학년 화석이

사회에서는 어딜가든 막내인

이제 막 22살 귀요미?다.


며칠 전에 아주 기괴한 꿈을 꾸었다.

그 꿈이 왜 기괴하냐면

그 날은 내가 뒤지려고 마음먹은 날이었는데

살기위해 눈을 뜨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암튼.

에서 나는 국밥집에 앉아있었다.

아저씨들 3명 정도가 시끄럽게 욕을 하면서

국밥에 소주를 기울이고 있었고

그에 맞춰 국밥 아줌마가 티비 소리를 키웠다.

귀가 찢어질 것처럼 시끄러웠다.


존나 시끄럽누..라고 생각하면서

숟가락으로 국밥을 퍼먹었다.

내가 평소에 절대 먹지 않는 허여멀건한 국밥을.

(왜냐면 나는 빨국만 먹는 코리안이니까


티비 속에서는 무언가가 생중계되고 있었다.

아나운서 두명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운석이 충돌할 거라고. 소리질렀다.


엥두.

진짜 너무 말안되는 상황.

지금 생각해보면 누가봐도 그저 악몽인데

그 때는 그 모든게 너무 현실이었다.

소주마시던 아저씨들이 시끄럽게 하던 말을 멈추고 티비에 집중했다. 나 역시.


국밥집 블라인드 사이로 바깥이 힐끔 보였다.

태어나서 그런 색깔은 처음 봤다.

빨간색이라기에는 파랗고 파랗다기엔 노랗고

노랗다기에는 또 붉은.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색이었다.


그 형용할 수 없는 개미친 색의 하늘 아래

사람들이 반쯤 미쳐서 날뛰고 있었다.

국밥집 아재들도 주인아줌마도

소리지르며 발작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극도로 겁에 질리면

흰색이 아니라 파스텔블루색이 되는구나

라는 걸 처음 알게 된 나.


그 때 그 꿈에서 운석이 충돌한다는 

아나운서의 대국민 몰카쇼가 아니라 찐이었다.

아나운서는 충돌까지 10분정도 남았다고 했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대피강령.

아 만약 이게 리얼리티였다면 당연히 뻘소리였겠지만

이성 상실한 유사 판타지 상황에서는

모든게 다 믿어짐.


지하철 탑승장소로 대피하거나

아파트 주차장 혹은 어디 깊숙한 땅굴을 찾으라는

퀘스트가 지령처럼 뉴스에서 흘러나왔다.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나버리는 꿈이라니.

지금의 나도 쪽팔려 뒤질 지경임.

그러나 그 때 나는 국밥집 바닥이라도 삽질할 기세였다.


나는 미친놈처럼 주변에 있는 깊숙한 땅굴을 찾았다.

주변에 있는 빌라의 지하주차장을 찾으려고

목이 찢어질 정도로 뛰었다.


분명 빌딩이 즐비한 도시의 국밥집이었는데

살겠다고 문을 나선 순간부터 주변이 휑했다.

이게 꿈 속 주인공의 법칙인가.

아스라이 보이는 건물을 향해 전속력으로 뛰었다.

티비 뉴스는 시야에서 사라진지 오래됐는데

운석 충돌까지의 카운트 다운은 귓가에 메아리침.

아오 난 보신각 카운트다운도 안하는 새끼라고요;


그렇게 결국 찾은 빌딩 문을 잡아당겼는데

싀바

문이 잠겨있었다는게 실화냐. 정말 절망.

목이 찢어져라 뛴 나는 또 성대가 결절될때까지 소리질렀다.

제발 문 좀 열어달라고.

문 좀 열으라는 내 말이 점점

나 좀 살려달라고 바뀔 때쯤

내 목소리에 내가 놀라서 깨어버림.


앗발꿈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하늘색이었고

뉴스 아나운서는 내가 관심없는 얘기나 읊고있었다.

운석이고 충돌이고 다 진짜 개꿈이었음.

다만 일어나보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에 절어있었고

독감에 걸린건지 침이 안삼켜질정고로 목이 따가웠다.


그리고 가방 옆에 패대기 처놓은

레전드 꼴깞으로 가득한 유언장과 수면제 한뭉텅이.

그제서야 눈에 뵈기 시작했음.


기억났.

그 날은 ㅋ

내가 아주 가족들에게  화려한 죽음쇼를 보여주려고

잔뜩 계획했던 날이었다.

이걸 보는 님들이 언제 어디서나 불행하길바라는

악귀들린 저주의 유언장은 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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