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by 송나영

자유로움이 가득한 미사를 처음 봤다. 아들과 성묘하고 오랜만에 함께 미사를 드렸다.

작년 추석부터 아들과 포천에서 만난다. 아들이 굳이 집에 들러 함께 가야겠냐고 해서 아버지의 영탑에서 만난다. 아들은 항상 약속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다. 내가 오히려 작년이나 올해나 시간에 쫓겨 달려가기 일쑤다. 새벽부터 비는 부슬부슬 계속 내렸고 길은 미끄러웠다. 아들한테 전화를 하니 고속도로에 차가 없단다. 영탑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서 만나기로 했다. 아들은 먼저 와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아들의 얼굴에 피곤함이 가득하다. 요즘 많이 바쁘다고 말끝마다 짜증이 가득하더니 고달팠나 보다. 안쓰러움도 있지만 자랑스럽기도 하다. 어느덧 제 할 일을 온전히 해내는 아들이다. 함께 편의점에서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막걸리를 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빗방울이 줄어든 거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져서 조촐하게 차례상으로 준비한 음식이 비에 젖을까 걱정을 하면서 왔는데 포천에 오니 이슬비처럼 내린다.

성묘를 하고 가까이에 있는 성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10시 40분부터 조상을 위한 기도를 한다고 해서 늦지 않게 도착했는데 이미 연도는 시작됐고 자리를 잡자마자 벌써 끝났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좀 빠르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11시가 되기도 전에 벌써 미사를 시작한다. 웃음이 새 나왔다. 나도 성질이 급한 편이지만 여긴 성질 급한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는 생각이 스쳤다. 미사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앞 줄에 앉은 할머니가 일어나시더니 신부님을 촬영을 했다. 찰칵찰칵 당당한 할머니의 모습에 신부님은 전혀 미동도 하지 않으셨다. 연세 지긋하신 신부님은 천천히 미사를 진행하시는 듯했는데 강론은 일사천리로 끝내셨다. 신부님을 도와 미사를 진행하는 복사 아이들은 신부님 뒤편에 서서 소곤소곤 수다를 떨었다. 처음 보는 미사 풍경에 당황스럽기는커녕 유쾌했다. 신부님은 아이들의 수다에 전혀 개의치 않으셨다. 지적받지 않으니 아이들은 자유로웠고 웃음이 가득한 미사가 되었다. 할머님은 그 이후에도 가끔씩 자리에서 일어나 핸드폰으로 신부님을 촬영하셨다.

핸드폰 울림소리에 눈살을 찌푸리시는 신부님도 종종 계시고 뭐라고 얘기하시는 분도 계신다. 한 번은 성당 근처 고아원에 사는 남자아이들이 앞자리에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웅성거리자 신부님께서 미사를 도중에 중단시키시고 아이들을 꾸중하셨던 적도 있었다. 아이들을 차렷자세로 반듯하게 미사에 집중시키려는 신부님의 의도와 달리 미사 분위기는 얼어붙었었다.

미사가 길지도 않았는데 갓난아이의 울음이 터졌다. 당황한 아이 아빠는 일어나서 갓난아이를 안고 서성이며 걸었지만 아무도 젊은 애아빠를 쳐다보지 않았다. 아이가 울어도 신부님은 들리지 않는 것처럼 개의치 않으셨다. 자신의 길을 오롯이 느긋하게 진행하셨다. 신부님의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미사는 진행됐다. 심지어 복사 아이들이 마침 성가가 끝나기도 전에 촛불을 끄고 나가 버렸다. 그 순간 참았던 웃음이 터져 나와 이를 악물었다. 나를 본 아들도 이 어수선한 분위기가 우스웠었는지 나를 보고 같이 웃음이 터졌다. 나 보고 왜 웃냐고 묻는 아들에게 미사가 끝나고 나보다 성질 급한 사람이 몽땅 모여 있는 거 같아 웃었다고 전했다. 아들은 할머니는 사진 찍지, 복사 애들은 수다 떨지, 아기는 울어대고 자기는 정신이 없었다지만 아무도 미사 예절을 안 지킨다고 인상을 쓰지도 않았고 아이가 운다고 눈짓을 주는 사람도 없었다. 추석에 가족이 모여 도란도란 차례를 지내는 것만 같았다. 미사가 끝나고 동네 주민들에게 가족은 다 왔냐고 안부를 묻는 신부님은 더없이 자애로우셨다. 미사를 마치고 차를 타고 돌아가는 가족들에게 손을 흔들며 배웅해 주시는 신부님은 아버지 모습 그대로였다. 평화가 가득했던 유쾌함이 넘쳤던 미사였다.

아들과 몇 년 만에 함께 한 미사다. 모두 자유로웠던 미사에서 우리는 즐겁게 조상님께 차례를 지냈다. 신부님이 손 흔들며 배웅해 주시는 모습을 본 아들은 또 웃음이 터졌다. 내년 설에도 여기 와서 차례를 지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비가 내리는 추석에 함박웃음을 선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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