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최고의 김치에 관하여
"형, 이거 뭐예요? 미쳤는데."
친구 커플이 집에 놀러 왔다. 우리 집은 거창에서 김치를 가져다 먹는다. 얻어오는 경위가 좀 복잡한데, 요약하면 사돈지간하고 친해서 그 댁서 모셔온다. 나의 아내는 매 끼니 1순위 반찬이 김치다. 20%가 껑충 올랐다는 배추값 기사에, 눈치 보며 부탁해서 얻어온다. 참고로 서울에서 차로 세 시간 하고도 반 거리. 와인 셀러는 없어도 김치 냉장고는 필수. 맛있게 먹으니 예쁘다고 푸짐하게 주시는데 이게 우리 집 보물이다. 삼겹살은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다. 부루스타를 꺼내서 불판을 얹어놓고 삼겹살을 대접했다. 물론 비스듬히 불판을 타고 흘러내리는 삼겹살 기름길에 우리 집 김치를 펼쳐놓고.
"야, 김치가 삼겹살보다 더 맛있다."
이건 또 다른 친구 부부를 초대해서 같은 메뉴를 대접했을 때다. 내 기억에, 한 30분은 저 말 말고 다들 아무 말도 안 했다. 먹느라.
경상도 음식은 맛이 없다는데, 운이 좋았던 걸까. 내가 어렸을 때 살던 거창 음식은 다 맛있었다. 아니, 그냥 내 입맛이 맞춰진 걸 수도 있겠다. 하여튼 산골짝이라 그런지 굴맛이 강하면 상급으로 쳐줬다. 그중에 으뜸이 식당 하는 종식이 이모 김치였다. 엄마랑 친자매는 아니고, 그만큼 친해서 이모다. 다 커서 큰 누나가 엄마 고생시켰다고 욕 할 때 살짝 들은 전언으로는, 아버지가 종식이 이모 김치 없으면 밥을 안 드셨다고 한다.
이모가 엄마를 무척 좋아하셔서 어린 시절 우리 집엔 항상 종식이 이모 김치가 있었다. 갓 담근 새 김치가 들어오면 먹어보라고 쭉 찢어 주셨는데, 한 입 맛보면 시간이 몇 시건 바로 밥을 먹어야 했다. 오래 묵혀 신김치가 되면 찌개를 끓여 먹었다. 잘 변하지 않아서, 부엌 양은 냄비에는 거의 항상 김치찌개가 있었다. 다 먹으면 또 끓이고, 남은 걸로 또 먹고. 김치찌개는 김치 맛이다.
이모가 이제는 연로하셔서 김치를 안 담그신다. 그래서 한동안 대기업 김치를 사다 먹었는데, 몇 해 전 어느 날 셋째 누나가 먹어보라며 김치 한 통을 줬다.
정보 1. 요새 김치 담가 주시는 사돈댁은 셋째 누나의 남편의 어머니다. 정확히는 나의 부모님의 사돈이다.
정보 2. 글쓴이는 누나가 넷이다.
정보 3. 아내에게 감사하다. 그래서 김치를 바쳐야 한다.
그런데 이게 웬걸, 상급을 넘어 최상급이다. 어렸을 때 먹던 종식이 이모 김치처럼 굴맛이 강하고 각종 젓갈이 들어간 게 쌀 밥이 당기는 그 맛이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 누나와 매형한테 애교를 부리며 얻어오게 된 것이다. 요새도 김치가 다 떨어지면, 그 집 김치 담그는 날을 성탄절보다 더 기다린다.
하여튼 그렇게 해서 내 인생 1호 김치는 종식이 이모 김치요, 2호 김치는 지금 얻어먹는 누나 남편의 어머니 김치가 됐다.
8년 전, 밥벌이가 바빴던 시절 어느 날, 나는 외근 나가 있었다. 일 마치고 스튜디오에 돌아오니 한 직원이 그랬다. 어머님, 아버님 다녀가셨습니다. 먼 길, 서울 와서 일 보시고 가다 들렀는데 내가 없어서 바쁘겠거니 하고 뭘 놓고 바로 가셨다고. 글쎄 사무실 냉장고를 열었는데 냄새가 진동했다. 종식이 이모 김치가 큰 통으로 한 통이었다. 그땐 반가운 마음보다도, 유명한 사람들도 제법 왔다 갔다 하는 스튜디오에 김치 냄새가 배면 안 되는데 하고 서둘러 싸가지고 집으로 데려왔다. 참 싸가지도 없었지. 심신이 녹초가 된 날이라, 그러고는 까먹었다.
그러고 얼마 안 있다 엄마는 돌아가셨다. 그날도 통원치료 때문에 올라오셨던 건데, 그렇게 거창에서 신촌을 얼추 십 년 왕복하셨다. 이번에도 통상적인 치료겠거니 했다. 누가 오래 아프면 우린 거기 무뎌진다. 암은 고쳤는데, 약해진 신장에 물이 차서, 그렇게 엄마는 갑자기 가셨다.
운전도 못 할 것 같아서 친구에게 부탁해서 오밤중에 급히 내려갔다. 사진 한다는 아들놈인데, 영정에 쓸 사진 한 장이 없었다. 부기가 좀 빠지면 찍어드려야지, 차일피일 미루다 놓쳤다. 오랜 가족사진에서 포토샵으로 엄마만 땄다. 문 닫은 사진관 사장님 번호를 어찌어찌 알아내서 상황을 설명하고 사정했다. 어렵게 영정 사진을 마련한 이 경험 덕에, 요새는 슬퍼도 영정 사진은 잘 챙기게 되었다.
그렇게 보내드리고 올라와서도 몇 달을 냉장고 문을 못 열었다. 그 아프신 와중에 아들 사무실 들러 놓고 간 김치를 차마 대면할 수 없었다. 발효되다 못해 상해버릴 만큼 시간이 흐르고 겨우 비장한 결심을 한 날, 비닐장갑과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사 들고 귀가했다. 그걸 꺼내 버린 날 눈이 퉁퉁 부었던 기억이 난다.
인생 최상급 김치 투 탑을 구성하는 종식이 이모 김치와 사돈댁 김치. 그날 그렇게 버렸던 김치는 요새 거창서 얻어오는 김치로 다시 연결이 되었다. 거창 김치를 먹으면 엄마 영정 사진을 못 찍어드린 게 자꾸 생각난다.
보통 가족사진은 엄마들이 제일 찍기 싫어한다. 주름하고 살 걱정을 특히 많이 하신다. 그래서 가족사진 손님이 오시면 맨날 하는 소리가 있다. 저는 어머님을 젤 잘 찍어드릴 거예요. 그리고 보정도 젤 열심히 해드릴 거예요. 이게 촬영장 분위기를 좋게 하려는 의도도 있는데, 깊은 마음속에는 이런 말이 들리는 것 같아서다. 내 사진은 못 찍어줬어도, 다른 엄마들은 예쁘게 잘 찍어드려야지 이놈아. 등짝을 때리면서 엄마가 그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