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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군•읍 중앙리 387

시골가서 사진관 하는 꿈

"니는 아직 단풍 구경이라는 걸 도대체 왜 하러 가는지 모르겠제? 커 봐야 아니라. 안죽은(아직은) 그저 불고기 도시락 싸가지고 놀러 간다 카니까 그저 신나제? 나중에 커 봐라. 아마 오늘이, 이 날이 생각 날끼다. 고성능 엘란트라 타고 단풍 구경 간 날."


모태 신앙인 나는 어렸을 때 하루를 풀데이-오프 해 본 날이 없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학교 가고, 주일엔 교회 가고. 그나마 토요일은 오전 4교시 하고 끝났다. 하프데이-오프. 그렇게 반나절 놀고, 일요일엔 9시 반 예배에 갔다. 그 당시 '디즈니 만화동산'이 KBS 2TV에서 9시부터 한 시간 정도 방영됐다. 집에서 교회까지 걸어서 5분. 9시 25분까지 그걸 보다 뛰쳐나갔다. 그래서 내 기억 속 디즈니 만화동산은 앞부분 반편짜리다. 뒷부분은 무슨 내용인지 모른다.


그런데 간혹 그걸 다 볼 수 있는 날이 있다. 어린이 주일학교 시작 시간은 9시 반이지만, 어른 예배 시작 시간은 11시다. 그런데 어른 예배가 소풍 가는 날이면 어린이 주일학교는 쉰다. 대부분 어른 예배 다니는 분들 자제들이 어린이 주일학교를 다녔으니, 정확히는 쉬는 게 아니고, 소풍 가서 어른들과 함께 예배를 본다. 그래서 소풍 가는 날은 디즈니 만화동산을 다 보고 교회 소풍 출발을 해도 됐던 거다.


영국 TV 쇼 중에, 어린아이에게 "냉장고 가질래, 일형놀이 세트 가질래"를 물어보고, 부모는 가만히 있어야 하고, 어린아이가 고른 선물을 받아갈 수밖에 없는 잔인한 쇼가 있다고 한다. 물론 대부분의 어린아이는 가격하고 상관없이 본인이 갖고 싶어 하는 것을 선택한다. 녀석에게 냉장고가 얼마짜리든 상관없는 것이다. 그 녀석의 세계관에서 냉장고란 물건은 아직 제 역할을 못 찾은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인형놀이 세트라니! 그 세계관 기준 최고의 아이템이다. 어린아이의 세계는 그렇게 작동한다.


내게도 그랬다. 소풍이 왜 좋은지도 모르고, 그 어른 예배 소풍이란 걸 왜 꽃피는 봄이나 단풍 물들 가을에 하는지는 더더욱 모르고, 그저 디즈니 만화동산을 끝까지 볼 수 있는 날이라서 신났다. 그래서 교회 소풍이 좋았다.


부모님 차를 타고 이동하지 않았다. 우리 집 차엔 다른 애들이 타고. 나는 다른 집 차를 얻어 타고. 그렇게 애들이랑 부모가 섞여서, 다른 어른들 차를 타고 이동했다. 정확히 왜 그랬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재밌는 시스템이다.


나는 '고성능 엘란트라'를 몰던 김선봉 선생님 차를 타고 소풍지로 떠났다. 사학재단에 속한 교회여서 대부분의 교인들은 그 재단 교직원들이었다. 내가 탔던 차의 차주는 한자 선생님, 부차주(사모님)는 독일어 선생님. 저 때 선생님은 어려서는 경치 좋은 줄 모른다, 그런데 커 보면 안다는 말씀을 농 섞어 표현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때 난 이런 생각을 했다. '고성능 엘란트라'는 '엘란트라' 업그레이드 버전일까? 선생님 차가 그렇담 아우토반에서 '뽀르셰'도 이긴다는 그 고성능 엘란트라인가? 단풍 놀인지 야외 예밴지 모르겠고, 그런 기막힌 차를 타고 가서 좋다, 뭐 이런. (그 당시 TV 광고에서는, 아우토반에서 포르셰 자동차를 이겨버리는 엘란트라를 촬영하고, 끝날 즈음에 "고성능 엘란트라"라고 목소리 멋진 성우가 카피를 넣었다. 광고 때문에 난 팩트랑 한참 동떨어진 관념을 가진 어린아이가 될 수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하여튼, 그 고성능 엘란트라를 타고 타지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길을 스며들어 간다. 덕유산 자락 중에서도 동네 사람만 아는 좁고 구불구불하고 단풍 흐드러지게 물든 길이다. 그 끝에는 또 예배를 드릴 만한 공터도 있다. 살던 동네에서 길어야 3-40분만 가면 그런 지상낙원이 나타나곤 했다.


보통 주일 소풍지에 도착하고 나면, 각기 다른 차를 타고 도착한 어린이 주일학교 친구들이 다 모인다. 그래서 예배 시작 직전까지 칼싸움할 만한 작대기를 찾아 뛰어다닌다. 젤 곧고 두꺼운 놈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린 단풍이 예뻐서도 아니고, 날씨가 좋아서도 아니고, 그저 아침에는 그놈의 디즈니 만화동산을 완주했고, 또 여긴 칼싸움하기 좋은 작대기들이 천지에 널려 있으니 기뻤을 뿐이다.


그렇게 뛰어다니다가 어른들이 터를 잡고 예배를 시작할 분위기가 되면 주섬주섬 각자의 작대기를 챙겨서 모여든다. 어른들과 같이 예배를 드린다. 굉장히 지겨운 한 시간인데, 버티는 이유가 있다. 이 예배만 끝나면 불고기 도시락, 동그랑땡, 머리 고기 반찬, 술떡, 팥떡, 사과, 귤 따위의 디저트까지 맛있는 것들 잔치가 되는 점심시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식사 끝나면 난 꼭 물에 빠진 생쥐처럼 물에 풍덩 빠졌다. 새로 산 운동화를 신었더라도 어김없었다. 여름이 한참 지난 데다, 산 깊은 계곡이라 굉장히 추운데도 난 유난히 물을 좋아했다. 그래서 그 근처에서 뛰놀다 보면 십중팔구 첨벙 빠져버리고 만 것이다. 이럴 때마다 엄마는 날 나무라지 않고, '그럼 그렇지, 우리 아들이 당연하지.' 하시면서 신발, 양말을 벗기고 돗자리에서 발을 말리게 해 주셨다. 빨리 또 가서 애들이랑 칼싸움해야 하는데, 얼른 말라야 또 뛰어노는데. 다 마르지도 않은 걸 신고 축축 젖은 바짓단 걷고 금세 또 뛰놀러 나갔다.


저런 지 삼십이삼 년 지났다. 그런데 그때 김선봉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맞다. 지금은 그 장면들을 생각하면, 슬로 모션처럼 지나간다. 차 타고 소풍지로 들어가던 굽이굽이 굽은 길. 흐드러지게 물들었던 단풍나무. 신기하게도 또 그 물은 노란 물, 빨간 물이 제일 적절한 배합으로 어우러져서, 사철나무가 익숙해 푸르른 산과 들이 자연스러운 우리 눈에 이국의 냄새를 풍겼던 것 하며. 또 칼싸움할 작대기를 찾으러 뛰어다녔던 산속 공터는 엎어져도 안 아플 정도로, 눈 시릴 만큼 푸른 풀들이 쿠션 역할을 해줬다. 다시 찾으래야 찾을 수 없는 '풍경'과 '시간'이었다.


그 속에 어린아이의 눈에 기록된 엄마와 아빠가 있고, 동네의 어른들이 있고, 그 모든 이를 감싼 풍경이 있다.


2004년에 처음 서울 살러 올라와서 아버지께 물었다. "아빠, 서울 사람들 너무 불쌍해요. 시청 앞에 잔디 좀 깔아놨다고 죄다 거기 나와서 돗자리를 깔고 소풍을 해요." "허허허, 것 참 우습지. 그래서 서울 촌놈들 불쌍하다고 하는 거다."


오늘은 아내와 함께 그 불쌍한 서울 촌놈처럼, 한강 주차장에 차 몰고 가서 트렁크에서 캠핑의자와 돗자리를 꺼내 적당한데 펴 앉았다. 그리고 한강 바람을 쐤다. 이미 봄이 왔다. 들이마시는 따뜻한 공기와 봄 특유의 풀냄새에 묘한 흥이 올라왔다. 삶이 좀 더 바스락거리는 느낌이 들고 살살 녹아 고소해졌다.


"인감증명서 두 통이랑 지방세 완납 증명서 발급해서 갖고 계세요. 제가 주말에 찾아뵙고 가져갈게요."


지난 주말에 만나기로 했던 하나은행 강 과장님과 약속이 계속 미뤄졌다. 이번 주말에도 갑작스러운 지방 출장이 생겨 다음 주중에 만나자는 것이다. 노심초사한다. 왜냐면 그이가 내 사업자대출 연장 담당자이기 때문이다. 그이가 일을 잘해주면 문제없이 연장이 되어 나는 또 앞으로 1년을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고, 그게 잘 안되면 나도 같이 죽는 것이다. 즉슨, 곧 내 목숨이 그이에게 달렸다.


다음 주엔 하나은행 강 과장님. 월말엔 농협 송내동 지점 양 과장님. 다음 달엔 신용보증재단 만나야 하고. 매출 체크하고, 고정비 체크하고. "금리를 내릴 수 있을 것도 같지만 시기상조인 것도 같고, 추이를 좀 더 지켜볼 예정인데, 너무 기대는 마십쇼." 파월이 이번주엔 또 어떤 모호한 말을 내던졌는지 찾아보고. 네이버에 "금리 인하 시기" 한 번 쳐 보고. 요즘 내 삶에 노랗고 빨갛던 덕유산 자락 적상(붉은 치마 같다 하여 붙여진 동네 이름. 말 그대로 그 동네 주위는 온통 단풍으로 휘감겨 있다.) 따위가 끼어들 틈은 없어 보인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그 틈으로부터 멀어질 데로 멀어진 장소에서의 삶을 택했다고 해야 맞을지도 모르겠다.


먹고살기 위해 서울에 산다. 그러길 20년이 지났더니 나도 이제 서울 촌놈이 됐다. 엎어지면 코 닿을 데 노랗고 빨간 단풍 흐드러지게 피는 덕유산 산골 자락에서 풍요롭게 살던 나였는데 말이다. 그래서 이제는 나도 한강 둔치에도 돗자리 펴고, 시청 앞에도 돗자리 펴는 신세가 됐다.


꽤 많은 남자들이 꿈꾸는 것처럼, 나도 은퇴하면 시골 가서 살고 싶다. 하루에도 열두 번, 시골에서 사진관 열어 아내와 함께 먹고 살 실력은 언제쯤 완성됐다고 확신이 들까, 하고 자문한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서울에서 이 정도 굴러 먹었으면 내려가서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태어나 살던 동네는 ㅇㅇ군 ㅇㅇ읍 할 때 그 ㅇㅇ이 같은 이름이다. 거창군 거창읍이다. 그런 지역 표기를 보통 거창군 거창읍 하기 번거로우니 편지 쓸 때 거창군•읍 하고 쓴다. 근데 동네 아이들 다 이 표기를 어떻게 소리 내어 읽을지 잘 모른다. 그래서 보통 "거창군 (헙) 읍"하고 한 박자 쉬고 발음한다. 거창 가서 사진관 할 생각을 할 때마다 "거창군 (헙) 읍 아지매"를 떠올린다. 그 동네 아짐들, 대구 다음 가는 분지로, 보통내기들이 아니다. 서울에서 시원찮게 사진 배워가지고 가서 사진관 열어도 만만히 일궈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래서 아직은 꾹 참고 실력을 더 키우기로 한다.


언젠가 때가 되어 시골 가서 사진관 차려도 밥 벌 수 있겠다 싶은 날이 오거든 단풍 보러, 꽃 구경 하러, 아니 단풍하고 살러 내려가고 싶다. 물론 그때가 되면 사진 실력 보다도, 아내를 설득할만한 입담이 준비되어야 하긴 할 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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