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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취미가 될 때 얻는 용기

변화에 대한 두려움에 관하여

    OS(Operating System) 업데이트는 좋은데 싫다.


    업데이트를 하면 오류들이 사라진다. 버튼을 누르는 품을 들인다. 그리고 기다린다. 나로선 꽤 큰 공을 들여 이뤄낸 결과물이다. 새롭게 나아간 느낌이다.


    그런데 싫다. 업데이트 때문에 잘 되던 어플(Application)이 작동하지 않으면 짜증이 난다. 아마도 새 OS에서도 잘 작동되도록 준비되지 않은 탓이리라. 자주 쓰는 어플이라면 짜증을 넘어서서 당황스럽다. 보통 OS는 업데이트를 한 번 하면 다운그레이드하기 굉장히 어렵다.


오늘의 업데이트를 내일로


    붙잡아야 할 것을 붙잡지 못하고 놓칠까 봐 두려워 업데이트 버튼을 최대한 미룬다. 누르면 되돌릴 수 없다. 소중한 것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렇게 매일 뜨는 알림을 무시한다.


    “해당 애플리케이션은… 이번달을 마지막으로…”


    그러다가 이제 또 어떤 어플은 ‘구버전 OS’에서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고 경고한다. 결국 끝까지 버티다가 OS를 업데이트한다. 화면이 껐다 켜지길 반복하고, “안녕하세요.” 문구가 나를 반기려 하지만 반갑기보다는 두렵다. 몇 가지 어플은 또 오류가 나겠지. 그렇지만 필수 어플 A 때문에 어쩔 수 없긴 했잖아.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다. 새롭게 바뀐 UI(User Interface)는 상당히 세련됐다. 폰트 가독성도 좋아진 것 같다. 변화가 약간 설레기까지 한다. 별로 느려지지도 않았다. 생각보다 쓸 만 한데. 며칠 지나 몇몇 오류를 발견하긴 했지만 치명적이지 않다. 안 써도 그만인 어플이다. 그렇게 적응한다.


Homeless Family 1939, Dorothea Lange


    동네를 떠나 이사를 가는 마음도 비슷하다. 직장을 옮길 때도 비슷하고, 독소 섞인 질긴 관계를 절연할 때도 비슷하다. 습관을 끊는 일, 안 하던 행동을 하기로 하는 일, 물건을 버리는 일, 그리고 (그이와의) 사랑을 그만하기로 결심하는 일 따위도 해당된다. 모든 업데이트는 두려운 일이어서 보통 최대한 미루게 된다.


    그런데 막상 그 변화는 별 게 아닐 때가 많다. 생각보다 괜찮고, 금방 적응하고, 놓친 것들을 쉬이 보내주게 된다. 시간이 꽤 흐르고 나면 그런 게 있었나 싶다. 우린 적응에 최적화된 동물이다.



Dorothea Lange, Politics of Seeing


    사진은 좋다. 결국 사진 예찬이다. 수 천장, 아니 수 만장이어도 검지 반 만한 USB(Universal Serial Bus) 하나에 다 들어간다. 매 번 마주하는 두려운 변화의 입구에서 쓸 수 있는 치트키(Cheat Key)다. 미련이 남을 것 같은 것들을 찍어두면 된다. 이사 간 집에서도 옛 집을 불러낼 수 있고, 버린 물건을 불러낼 수도 있다. 붙잡아야 할 것 같은 것들을 나중에 꺼내볼 수 있다. 보험이다. 마음이 약한 이에게 행동할 수 있는 힘을 보탠다.


    그런데 찍어놓고 가지고 있으면, 절대 다시 꺼내보지 않는 사진이 있다.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한 나머지 그런 게 있었다는 걸 까먹는다. 필요 없었다는 얘기다.


    ‘지금은 이 기억이 나중에도 필요할 것 같지만 이건 뇌고픔(‘배고픔’과 ‘뇌’의 합성어, 배고프지 않지만 배고픈 것 같다고 느끼는 착각) 같은 거야. 욕심이야.’


    사진을 계속 찍다 보면 그런 착각을 점점 잘 구분할 수 있게 된다. 필요할 줄 알았지만 없이도 잘 사는 것들을 포기하는 연습이 USB를 다이어트시킨다. 결국 꼭 남겨야 할 것들만 찍을 줄 아는 사람이 된다.


    때로는 꺼내보면 상처 입는 사진도 있다. 절연했던 관계의 독소가 사진에 묻어있다. 겨우 끊은 습관이 만든 도파민 메커니즘이 꿈틀댄다. 다 잊은 줄 알았던 사랑의 흉터가 아직 콕콕 찌른다. 그래서 사진을 계속 찍다 보면 절대 찍지 말아야 할 것도 알게 된다. 남기는 것도 일이지만 버리는 것도 찍는 자가 할 중요한 일이다.


    찍는 자는 변화를 두려워하면서도 사진이라는 치트키를 활용해 앞으로 나아간다. 잊혀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동시에 앞을 본다. 사진을 찍으면 업데이트 버튼을 누를 용기가 생긴다.


Country store on dirt road. Sunday afternoon, 1939, Dorothea L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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