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에 대한 두려움에 관하여
OS(Operating System) 업데이트는 좋은데 싫다.
업데이트를 하면 오류들이 사라진다. 버튼을 누르는 품을 들인다. 그리고 기다린다. 나로선 꽤 큰 공을 들여 이뤄낸 결과물이다. 새롭게 나아간 느낌이다.
그런데 싫다. 업데이트 때문에 잘 되던 어플(Application)이 작동하지 않으면 짜증이 난다. 아마도 새 OS에서도 잘 작동되도록 준비되지 않은 탓이리라. 자주 쓰는 어플이라면 짜증을 넘어서서 당황스럽다. 보통 OS는 업데이트를 한 번 하면 다운그레이드하기 굉장히 어렵다.
붙잡아야 할 것을 붙잡지 못하고 놓칠까 봐 두려워 업데이트 버튼을 최대한 미룬다. 누르면 되돌릴 수 없다. 소중한 것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렇게 매일 뜨는 알림을 무시한다.
“해당 애플리케이션은… 이번달을 마지막으로…”
그러다가 이제 또 어떤 어플은 ‘구버전 OS’에서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고 경고한다. 결국 끝까지 버티다가 OS를 업데이트한다. 화면이 껐다 켜지길 반복하고, “안녕하세요.” 문구가 나를 반기려 하지만 반갑기보다는 두렵다. 몇 가지 어플은 또 오류가 나겠지. 그렇지만 필수 어플 A 때문에 어쩔 수 없긴 했잖아.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다. 새롭게 바뀐 UI(User Interface)는 상당히 세련됐다. 폰트 가독성도 좋아진 것 같다. 변화가 약간 설레기까지 한다. 별로 느려지지도 않았다. 생각보다 쓸 만 한데. 며칠 지나 몇몇 오류를 발견하긴 했지만 치명적이지 않다. 안 써도 그만인 어플이다. 그렇게 적응한다.
동네를 떠나 이사를 가는 마음도 비슷하다. 직장을 옮길 때도 비슷하고, 독소 섞인 질긴 관계를 절연할 때도 비슷하다. 습관을 끊는 일, 안 하던 행동을 하기로 하는 일, 물건을 버리는 일, 그리고 (그이와의) 사랑을 그만하기로 결심하는 일 따위도 해당된다. 모든 업데이트는 두려운 일이어서 보통 최대한 미루게 된다.
그런데 막상 그 변화는 별 게 아닐 때가 많다. 생각보다 괜찮고, 금방 적응하고, 놓친 것들을 쉬이 보내주게 된다. 시간이 꽤 흐르고 나면 그런 게 있었나 싶다. 우린 적응에 최적화된 동물이다.
사진은 좋다. 결국 사진 예찬이다. 수 천장, 아니 수 만장이어도 검지 반 만한 USB(Universal Serial Bus) 하나에 다 들어간다. 매 번 마주하는 두려운 변화의 입구에서 쓸 수 있는 치트키(Cheat Key)다. 미련이 남을 것 같은 것들을 찍어두면 된다. 이사 간 집에서도 옛 집을 불러낼 수 있고, 버린 물건을 불러낼 수도 있다. 붙잡아야 할 것 같은 것들을 나중에 꺼내볼 수 있다. 보험이다. 마음이 약한 이에게 행동할 수 있는 힘을 보탠다.
그런데 찍어놓고 가지고 있으면, 절대 다시 꺼내보지 않는 사진이 있다.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한 나머지 그런 게 있었다는 걸 까먹는다. 필요 없었다는 얘기다.
‘지금은 이 기억이 나중에도 필요할 것 같지만 이건 뇌고픔(‘배고픔’과 ‘뇌’의 합성어, 배고프지 않지만 배고픈 것 같다고 느끼는 착각) 같은 거야. 욕심이야.’
사진을 계속 찍다 보면 그런 착각을 점점 잘 구분할 수 있게 된다. 필요할 줄 알았지만 없이도 잘 사는 것들을 포기하는 연습이 USB를 다이어트시킨다. 결국 꼭 남겨야 할 것들만 찍을 줄 아는 사람이 된다.
때로는 꺼내보면 상처 입는 사진도 있다. 절연했던 관계의 독소가 사진에 묻어있다. 겨우 끊은 습관이 만든 도파민 메커니즘이 꿈틀댄다. 다 잊은 줄 알았던 사랑의 흉터가 아직 콕콕 찌른다. 그래서 사진을 계속 찍다 보면 절대 찍지 말아야 할 것도 알게 된다. 남기는 것도 일이지만 버리는 것도 찍는 자가 할 중요한 일이다.
찍는 자는 변화를 두려워하면서도 사진이라는 치트키를 활용해 앞으로 나아간다. 잊혀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동시에 앞을 본다. 사진을 찍으면 업데이트 버튼을 누를 용기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