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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간일기 Jun 01. 2024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달기만 하진 않다

- 씁쓸한 첫사랑을 추억하며, '퍼스트러브'를 음주해보았다.

오늘은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이름을 지닌 술을 한 병 가지고 왔다. '퍼스트러브', 누구에게나 없을 수 없는 첫사랑이란 명칭을 가진 친구이다. 겉보기에 굉장히 고급스럽게 생긴 이 탁주가 과연 어떠한 맛과 향을 가져다줄지, 기대와 함께 뚜껑을 열어보도록 하자.


씁쓸한 첫사랑을 추억하며, 퍼스트러브

한눈에 보기에도 단정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친구이다. 녹색과 상아색으로 이루어진 색의 조화는 말할 것도 없고, 길고 유려하게 올라가는 기둥과 병목, 더불어 그 끝을 감싸고 있는 진녹색 마감 지는 병 안의 술과 어우러지며 우아한 형태로 마시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전면부엔 '퍼스트러브'라는 술의 이름이 재치 있게 쓰여 있는데, 이 역시 두 가지 색만을 사용하여 깔끔하게 표현해 낸 모습이다. 최근 음주했던 술들 중 디자인 면으론 가장 이목을 끌지 않나 싶다.


'퍼스트러브'는 '(주)도반주조'가 파주에서 재배되는 쌀과 물, 누룩만으로 빚어낸 막걸리로서, 가수를 하지 않은 원주상태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핵과류계의 과실향과 묵직한 바디감이 기분 좋게 어울리며 다가오고, 인공감미료나 첨가물이 일절 사용되지 않아 깊은 풍미를 깨끗하게 맛볼 수 있다고 한다.


제품의 용량은 375ML, 도수는 16도, 가격은 21,000원. 혼자 마셔도 좋고, 둘이 마셔도 괜찮은 양에 막걸리치곤 상당히 높은 알코올 함유량, 쉽사리 구매하기엔 망설여지는 금액을 지녔다. 분명히 몇 년 전만 하여도 10,000원이 넘어가는 막걸리를 찾기 힘들었던 것 같은데, 언제 이리 몸값을 다들 올렸는지 참 의문이다.

잔에 따른 술은 산뜻한 상아색을 뽐낸다. 우유와 비슷한 빛깔을 지니고 있으나 그보다 약간 짙은 느낌을 가져다주며, 술방울 역시 어느 정도 무게감 있게 흘러내리는 형태를 띠고 있다. 참 깔끔해 보이는 면모이다.


얼굴을 잔에 가까이 하니 은은한 과실향이 흘러나와 코를 적신다. 참외, 바나나, 복숭아에서 느낄 수 있을법한 단내와 미미한 산향이 나타나고, 그 아래로는 일반적인 막걸리보다 높은 도수가 가져다주는 씁쓸함이 약하게 자리 잡고 있다. 과실의 감향이 살짝 감돌다가 백도의 향으로 넘어가는데, 향 자체가 그리 강하지 않고 그윽하게 코를 감싸기 때문에, 큰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 향이라고 예상된다.


이어서 한 모금 머금으면 다채로운 맛을 지닌 막걸리가 혀를 안아준다. 단맛과 산미, 씁쓸함을 모두 지니고 있는 술로서, 멜론과 바나나를 연상케 하는 과실의 감미에서 레몬, 라임 등을 떠오르게 만드는 산미로, 산미에서 곧바로 고소한 쌉싸름함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앞서 향에서 맞닿았던 알코올이 비교적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질감이 상당히 크리미 하면서도 부드러워 목넘김까지의 과정이 꽤나 수월하게 진행되는 듯하다.

보통의 막걸리에서 맛볼 수 없는 씁쓸함을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이다. 적당히 무거운 바디감과 함께 산미를 머금은 고미는 목구멍을 넘어가고, 이후 앞에서 이어지는 맛 그대로 레몬껍질 같은 여운을 남겨놓은 채 사라진다. 이때 후미의 길이는 약 5초 정도이며, 목구멍을 씁쓸함이 차지함과 동시에 미미한 따뜻함이 그 아래를 채워가니 슬쩍슬쩍 혀를 건드리는 산미와의 조화를 집중적으로 끝맛을 감상하면 좋을 것이다. 씁쓸함의 풍미는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며 맛을 마무리한다.


약한 감미와 그보다 좀 더 튀어나온 산미, 그 산미보다 확실히 두드러진 씁쓸한 향미를 가졌다고 생각된다. 딱 술다운 막걸리라고 여겨지는게, 보통 마셔왔던 알딸딸함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끝나는 탁주가 아닌, 그것보다 한 단계 위의 취기를 선물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막걸리라는 주종에 한해서 겪기 어려운 향미기에 탁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마셔보아도 후회가 없을 것이다. 다만, 개인적으론 '퍼스트러브'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어 어느 정도 상큼 발랄한 풍미를 기대했는데, 역시, 첫사랑은 씁쓸한 법이었다. 


만약 음주할 계획이 있다면 안주는 육전, 매운 족발, 견과류가 들어간 초콜릿 등을 추천한다. 외외로 안주를 크게 가리지 않고 좋은 시간을 선사하는 친구였다.


'퍼스트러브', 첫사랑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주는 술이었다. 다들 자신의 첫사랑을 떠올리며 잔을 들어보자.


판매처에 따라 가격이 10% 정도 상이하다. 잘 보고 조금이라도 저렴한 곳에서 구매하길 바란다.


쌉싸름한 산미, '퍼스트 러브'의 주간 평가는 3.9/5.0이다. 달기만 한 첫사랑은 없다.


         주간일기의 모든 내용은 개인적인 평가임을 명심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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