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 3년에 기둥뿌리 빠진다'는 옛말이 있다. 서양에도 '양을 위해 소송을 벌이면 소를 잃게 된다'는 속담이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소송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며,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고통 또한 작지 않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법원과 경찰서는 가지 말아야 한다는 옛 어른들의 말에 삶의 경륜과 지혜가 녹아 있다
2023년 초, 섬기는 교회를 상대로 민사소송이 제기되었다.「회계장부 열람 및 등사신청 가처분소송」이다. 소송의 핵심내용인 즉, 교회가 창립한 이후 교회가 보유한 회계장부 및 통장 입출금 내역 등을 원고가 열람하고 등사신청을 허용해 달라는 것이다. 소송을 제기한 원고는 다름아닌 교회 직원이었다.
그는 교회에서 7년간 행정업무를 담당하며 예배순서와 담임목사님 목회활동을 지원하는 등 성실하게 교회를 섬긴 사람이었다. 나이도 5살 정도 많고, 청년부를 함께 담당하며 수련회 행사도 같이 동행하고 교회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며 인간적으로 가깝게 지내던 사이었다. 현재 이용하는 중고승용차도 그의 중개로 구입할 만큼 개인적으로 그를 신뢰하고 존경하였다. 이같이 신뢰와 존경의 대상인 그가 돌연 소속 교회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고등학교 이후 40년 가까이 현재 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교인이 교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초유의 사건에 나를 비롯한 상당수 교인들은 말 그대로 멘털이 붕괴되는 상황이었다
돌이켜보면 그의 소송 제기는 사전에 충분히 준비된 시나리오였다. 2022년 6월 말 소송이 제기되기 6개월 전 원고를 비롯한 3-4명 일부 성도들은 담임목사님 목회운영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목회운영이 독선적이다”, “회계집행이 투명하지 않다”, “교회의 법인 '교리와 장정'을 준수하지 않는다”"다른 교회는 이와 같이 하지 않는다"... 원고와 추종자들의 언행, 그리고 법원에 제출된 소장에 기재된 주장들을 요약하면 뭐 이 같은 내용이다.. 마치 노조 대표가 기업 경영자를 대상으로 빨간 머리 띠 두르고 쟁의행위하는 모습과 흡사 비슷해 보였다
처음에는 교회와 성도의 갈등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그들의 주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들이 표현하는 언어의 수준과 표현방법, 표현수단 등이 크리스천으로서는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예배가 끝난 후 음지에서 삼삼오오 모여 교회와 담임목사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업무상 횡령”, “가스라이팅”. 표현까지 사용하며 마치 교회가 범죄의 온상이고 담임목사는 범죄조직 수괴인 양 매도하는 악한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평소 신앙의 모범이 되고 교회 안팎으로 열심히 봉사하며 칭찬받는 핵심성도들, 특히 교회 중직들이 그 무리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원고를 따르는 그 무리들이 소송을 기획하고 준비하였는지 까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소송으로 교회가 어려운 상황임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그들은 이를 묵인하고 방조한 사실이 분명하다. 그 결과 그들과 친분 있는 성도들은 교회를 떠나고 교회는 분열되기 시작하였다.
교회를 개척하여 30년간 하나님 한분만을 의지하며 신실한 목회로 지역의 중견교회로 일구어 놓은 담임목사님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충격으로 목회의욕을 상실하고 육적ㆍ심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성품이 온순하고 분쟁을 싫어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라면 불을 보고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살아가는 목사님의 삶을 40년 가까이 옆에서 지켜본 터라 목사님의 금번 사건 대응이 걱정스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목사님은 잘못한 것이 없으면서도 원고를 비롯한 문제를 제기한 중직들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통곡하며 사과하셨다. 본인이 희생하면 교회가 본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으리라는 믿음에서 행동하신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목사님의 바람은 성탄절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 어린아이 동심과 같은 것이었다.
목사님의 진심이 담긴 사과에도 원고는 교회소송을 전문으로 담당하는 대형로펌을 선임하여 수원지방법원에 회계장부열람 및 등사신청 소송을 제기하였다. 원고가 제출한 소장이 교회로 송달되는 순간 "이제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좌절감은 잠깐이고, 이제 교회는 어떻게 대응하지? 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문득 뇌리를 스치기 시작했다. 광역지방자치단체 법무담당관실, 감사관실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고, 행정소송 대응으로 법원에 출입한 경험이 있어 행정적 문제라면 공무원인 내가 적절히 대응해 보겠지만 소송은 법률적 쟁점을 다투는 사항이고 소송절차 등이 쉽지 않음을 알고 있기에 교회에서도 변호사를 선임하여 대응할 것을 목사님께 건의하였다.
나의 요청으로 즉시 교회 기획위원회가 소집되었다. 기획위원회는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하여 내가 제안한 사항에 대해 적극 협조해 주었다. 논의 결과 교회 내부사정과 관련법 분야에 정통한 변호사 2분을 추천받아 최종 1분을 결정하였다. 수원 광교 커피숍에서 담임목사님, 기획위원들과 변호사님이 처음 만나는 순간, 변호사님 첫인상이 온순한 양 같았다. 담임목사님과 외형적으로 비슷해 보였다. 학력과 경력은 좋은데 상대를 압살 할만한 전투력이 부족해 보였다. 변호사에게 교회의 상황과 쟁점을 간략하게 설명드리고 소송을 위탁하였다.
변호사 선임 이후 소송을 준비하면서 교회 내부상황은 내가 문서로 기본적으로 정리하여 변호사님에게 넘기면 변호사님이 법률적 언어로 다시 정리하여 교회 기획위원회에서 최종 검토하고 확정하는 수순으로 진행하였다. 그러나 원고의 청구범위가 15년 이상 회계문서를 요구하는 것이었고, 법률적 쟁점도 구체적이지 않고 업무상 횡령, 담임목사 인사관리 등과 관련한 막연한 주장을 펼치기에 원고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구체적인 반박자료를 만드는 것이 소송에서 이길 수 있는 전략이라고 생각했다.
재정집행과 관련한 부분은 교회 재정부에서 Lowdata 등 자료제출 협조를 받으면 내가 변호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자료를 재구성하고 편집하였다. 다행히도 변호사님은 내가 제출한 자료에 만족해하셨고, 법률적 논리를 토핑 하여 신속하게 자료를 재판부에 제출하였다. 수원지방법원 1심 재판이 마무리될 때까지 원고와 교회 측은 각각 4-5번 자료를 제출하였다. 돌이켜 보니 소송과정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가 투입되는 시간이었다.
2023년 1월 제소된 소송은 4월 수원지방법원, 8월 수원고등법원, 11월 대법원에서 교회 전부승소로 재판이 종결되었다. 그럼에도 원고는 2024년 4월 경찰서에 담임목사를 '업무상 횡령' 혐의로 형사고소하여 2개월 수사 끝에 불송치(혐의 없음) 결정되었다. 2024년 7월 26일에는 원고가 당초 소송의 청구취지를 변경하여 제기한 소송에서도 교회가 승소하였다. 정리하면 원고가 제기한 4번의 민사소송에서 4번 모두 교회가 승소하였고 담임목사를 상대로 제기한 “업무상 횡령” 형사고소는 무혐의 종결되었다.
2023년 1월부터 2024년 7월까지 2년간의 민사소송과 수사를 통해 교회와 담임목사님의 결백함이 입증되어 유쾌, 상쾌, 통쾌하다. 그러나 마음 한편 개운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금번 소송에서 교회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 환난을 통해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하는 지혜와 교회 재정관리의 소중한 경험을 얻었다. 그렇지만 소송으로 인해 투입된 많은 시간과 수임료 등 재정지출은 보상받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2년 교회재정감사, 당회보고, 구역회보고, 기획위원회, 소송서류 작성 등 가장 많은 에너지를 투입한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주어진 가장 큰 전리품은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라는 확신이었고, 후유증이 있다면 거룩한 교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교회의 분열을 조장한 그들을 향한 인간적 배신감과 미움, 증오를 내 기억 속에서 깨끗이 지울 수 없다는 점이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죄는 미워도 그들을 사랑으로 품어야 하는가? 하나님의 공의로움과 정의로움으로 악을 소멸해야 하는 것인가? 지금도 어디에선가 남모르게 아파하고 신음하는 수많은 교회와 성도들을 생각하며 지나간 시간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다. 교회에서 성도(聖徒)가 역도(逆徒)가 되는 비극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