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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Jun 02. 2023

장래희망은... 할머니

I can turn invisible. (난 투명 인간으로 변할 수 있다)


이 첫 문장에 난 바로 감정 이입할 수 있었다.

『When you trap a tiger (Keller, 2020,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의 주인공 Lily는 선생님이 자신의 이름을 까먹고, 애들이 같이 놀자고 하지 않고, 1년 동안 같은 반이었던 아이가 ‘너 누구니?’를 물어 오면, 내게 이런 초능력 (투명 인간으로 변하기)이 있나 싶어 진다고 했다. 나도 그랬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심지어 가족에게도. 맘먹고 초능력을 부려서가 아니라 그냥 언제나 투명 인간인 채 사는 게 아닌가 싶은.


전래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가 Tae Keller라는 훌륭한 스토리텔러의 손에서 신비스럽고 감동적인 이야기로 재탄생된 듯하다.


Lily와 Sam 자매는 엄마와 아픈 외할머니댁으로 이사한다. 자매가 더 어렸을 때, 아이들을 자신의 옆에 하나씩 눕히고 옛날이야기를 해 주었던 할머니.


Long, long ago, when tiger walked like man...


할머니의 이야기엔 마법 같은 힘이 있어서인지, 아픈 할머니가 사는 워싱턴주의 경계선을 넘어서자, 할머니 이야기 속 호랑이가 Lily 앞에 나타난다. 캘리포니아에서 투명 인간으로 살았던 Lily가 워싱턴주로 이사했다고 해서 투명 망토를 벗어 버릴 수 있겠나. 하지만 이야기로 마법을 부리는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자 Lily의 일상에 할머니 이야기 속 호랑이가 자주 등장한다. 투명 인간으로 살던 아이지만, 거래를 제안하는 호랑이를 덫에 가둬 할머니를 살리고 싶어 진다. 그러니 아이는 생각하고, 용기 내고, 언니를 설득하고, 새로 사귄 친구에게 도움도 청하고... 여전히 투명 망토를 손에 들고 있지만, 가끔은 그걸 벗어 들고 사람들 속으로 섞인다. 그러면서 아이는 성장한다. 어쩌면 할머니의 이야기엔 진짜 마법 같은 힘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용기 내게 하고 성장시키는 마법.


할머니는 이민 일 세대다.

굴곡진 역사와 낯선 땅.

굳이 말하지 않아도 할머니의 생은 힘들게 버텨온 일생이었을 거다. 자식이, 손녀가 그 인생을 다 알 수도 없고, 보통 별로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글을 쓴 작가처럼 어느 날 갑자기 할머니의 인생이, 그분이 떠나오신 곳이, 그곳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날이 올 수 있다. 자신을 1/4 한국인이라고 했던 작가는 이런 뿌리를 파헤치며 할머니를, 그리고 자신을 더 알게 됐다고 했다.


본래 할머니들은 엄마와 달리 뭔가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아이가 울면, 우는 얼굴을 자기 손바닥으로 닦아 주고, 엄마가 안주는 달달한 사탕을 손에 쥐어 주고, 무엇이 됐든 얘기를 꺼내 아이에게 들려주는 할머니.

그 얘기에 서럽던 일도 스르르 녹아내리고.

그 앞에선 소중하기만 한 내 새끼라 투명 망토 같은 걸 걸칠 필요가 없다.

물론 모든 할머니가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할머니가 해 준 이야기를 듣고 자란 Lily는 그 이야기 덕분에 용기를 내고 세상에 나갈 준비를 했다. 행운이다.


I don’t yet know the ending, but I will face my story as it changes and grows. (어떻게 끝날지 잘 모르겠지만, 난 이 이야기가 어떻게 바뀌고 발전해 가는지 잘 지켜볼 거다.) Because of Halmoni, I can be brave. I can be anything. (할머니 덕분에 난 용감해질 수 있고, 뭐든 될 수도 있다.) I am a girl who sees invisible things, but I am not invisible. (난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는 아이지만, 보이지 않는 아이는 아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아이는 자신이 더 이상 투명 망토를 입고 사는 아이가 아니라고 스스로 말한다. 그거면 된 거다. 할머니의 예쁜 새끼. 잘 자라고 있는 아이.


안타깝게 내겐 그런 할머니가 안 계셨다. 그래서 아직도 투명 인간으로 살고 있는지도. 그런데, 하도 오래 투명 인간으로 살다 보니 거의 프로의 경지다. 프로의 눈엔 다른 투명 인간들이 잘 보인다. 그러니.,.이제 그들에게 말을 걸어주고, 그들의 말을 잘 들어줄 준비만 하면 된다. 그렇게... 투명 인간들의 투명 인간 할머니가 되고 싶다.


내 장래 희망은......     


할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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