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 자본주의의 실현, 예술로 꽃 피운 공동체의 가치
세토우치 섬들을 무대로 3년에 한 번 개최되는 현대 아트 제전, 세토우치 국제예술제(Setouchi Triennale)는 나오시마의 봄, 여름, 가을 동안에 약 100만 명의 관람객을 이끄는 국제적인 예술 행사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예술제가 고요하고 잔잔한 어촌 마을에 불러들인 문화예술의 바람, 오늘은 나오시마를 방문하며 느낀, 예술과 지역 사회가 어떻게 융합될 수 있는지, 그리고 예술이 한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세토 내해에 위치한 세토우치 섬들(나오시마, 이시마, 오카야마, 산고) 중 하나인 나오시마는 한국과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생각보다 한국에서 방문하는 것이 쉽지 않은 편이다. 일반적으로 다카마쓰를 중심지로 삼아 약 1시간 정도 페리를 타고 나오시마에 도달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며, 섬 내에서는 자전거나 전기차를 대여해 하루 또는 이틀을 온전히 보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섬 내 가장 대표적인 숙박시설은 ‘오벌’, ‘파크’ ‘비치’와 미술관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베네세 호텔(Benesse House Hotel)이며, 이곳은 각 객실마다 특정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연유로 방문객들은 이 호텔을 이용할 때 자신이 선호하는 작가의 작품이 있는 방을 선택하여 특정 작가를 응원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다.
나오시마는 안도 타다오가 자연 속에 그린 거대한 회화 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 이유는 나오시마 프로젝트를 구성하는 베네세하우스(1992), 지중미술관(2004), 이우환미술관(2010), 벨리갤러리(2022), 이에 프로젝트(1998~) 등의 건축물 건립에 모두 안도가 직접 참여하며, 자연을 포용한 독특한 미적 색채를 섬 전체에 걸쳐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지중미술관은 자연광을 활용해 실내 공간과 작품이 변화하는 모습을 강조하고, 이우환미술관은 '점'과 '선'을 주제로 한 공간을 만들어 자연과 건축이 하나가 되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처럼, 나오시마는 자연과 인공, 빛과 공간, 그리고 시간과의 관계를 탐구하면서 섬 전역에서 인간의 감각을 깊이 자극하는 독특한 예술적 경험을 펼쳐 보인다.
안도 타다오
“나의 건축은 기본적으로 모더니즘의 구성 방법과 형태에 의거하고 있지만 제각기 장소성, 풍토, 기후 그리고 역사나 문화적 배경을 중시하고, 상황과의 관계 속에서 건축의 원점을 생각해 나간다.”
개인적으로 나오시마에서 미술관을 돌아볼 때는 건축물 자체가 작품의 시작점이자, 그 안에 담긴 작품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도록 사진 촬영이 엄격히 금지된 지중미술관(地中美術館)에서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 그다음, 바닷길을 따라 밸리갤러리 → 이우환미술관 → 베네세뮤지엄을 둘러보며, 야외에 설치된 예술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바닷가에 설치된 쿠사마 야요이의 (a.k.a) 노란 호박과 마주할 수 있다. 이는 섬의 약 1/3~1/4을 걷는 코스인데 섬 전체가 하나의 캔버스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마치 거대한 예술 작품의 요소요소를 둘러보는 듯한 독특한 미적 경험을 선사한다.
후쿠타케 소이치로 (출처: Chosun Biz)
예술을 모르는 인재는 성과가 1위라도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21세기엔 좋은 기업, 매력적인 기업만 살아남습니다. 이러한 기업을 만드는 것은 결국 미술, 더 나아가 예술을 즐길 줄 아는 창의적이고 여유로운 인재입니다. 이러한 나의 경영관엔 변화가 없을 겁니다.
나오시마를 방문하면서 가장 궁금했던 점은 과연 '이 엄청난 프로젝트의 기획자는 누구인가'였다. 개인적으로 "나오시마 프로젝트"를 문화예술이 경제를 이끌어가는 (매우) 이상적인 비즈니스 모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이면에 놓인 수많은 현실적인 과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도 자명하기에, 그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고 이를 구현한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한 것은 나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이 프로젝트는 미술관 유치와 작품 수집뿐만 아니라, 산업 폐기물로 오염된 섬에 경제적 자립을 불어넣기 위한 큰 비전과 막대한 자본력, 그리고 지속 가능한 기획력이라는 삼박자가 필수적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오늘날의 나오시마를 존재하게 한 대서사의 시작을 알아보기 위해 후쿠타케 소이치로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와세다대학교 기계공학과 출신인) 후쿠타케 소이치로는 후쿠타케 소이치로의 장남이다. 그의 아버지 후쿠타케 테츠히코는 오카야마현 출신으로, 처음에는 교육용 도서를 제작하는 출판사를 운영하다가 실패 후 후쿠타케 서점을 창업해 성공, 이후 도쿄 증권 거래소에 상장될 정도로 최고의 교육 기업을 만든 인물이었다 - 한국으로 치면 교보문고를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1986년 테츠히코 회장은 급성 신부전증으로 갑자기 세상을 뜨게 되었고, 그의 장남인 후쿠타케 소이치로가 40세의 나이에 급히 도쿄 생활을 정리하고 가업을 물려받게 되었다고 한다.
가업을 물려받음과 동시에, 그는 아버지의 오랜 꿈도 이어나가고자 하였는데, 이는 전 세계 어린이를 위한 캠핑장 건립이었다. 그는 이 비전을 이행하기 위해 오카야마와 지리적으로 가까웠던 나오시마섬의 절반 가까이를 10억 엔에 사들였고, 1989년 (서쪽 해안에 후쿠다케 서점의 사원과) 아이들의 소규모 국제 청소년 캠프장을 완성했다고 한다.
캠핑장을 건립하는 과정에서 그는 나오시마라는 아름다운 곳에 국가 행정력이 전혀 미치지 않고 섬이 방치되는 것에 불만과 의구심을 품었고, 현대미술을 무기로 이 섬을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자고 다짐한 것이 “나오시마 프로젝트“의 시발점으로 볼 수 있다. 이후, 후쿠타케 소이치로는 본사를 도쿄에서 오카야마로 옮기고, 회사명을 '베네세(Benese)'로 변경하며, 황량한 나오시마를 자연과 인간, 문화예술이 조화를 이루는 섬으로 바꾸기로 결심했다 - 'Benesse'는 라틴어로 'BENE(잘)'와 'ESSE(살기)'를 합성한 이름으로, '웰빙(Well-being)'을 의미한다.
1991년 발표한 기업 이념 하에 - ‘한 사람, 한 사람이 잘 살기 위해 지속 가능한 사회를 실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회사를 세우자'-, 그는 산업 폐기물로 오염된 나오시마에 막대한 꿈과 자본을 투자했으며, 오늘날 나오시마는 매년 50만 명이 찾는 '세계 7대 예술 성지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후쿠타케 소이치로가 서울아트가이드와 진행한 인터뷰를 보면, 그는 예술가의 힘을 빌려 현대 사회를 비판하는 시각을 고수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그의 관점을 유의미하게 생각한 이유는, 그가 단순한 비평을 통한 사회 비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업가로서 나오시마라는 공간을 통해 이상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구현한 실행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현대 미술을 지역 재생과 결합하는 것은 실로 이상적인 계획이지만, 동시에 해당 지역 주민들과 방문객들에게는 낯설고 어려운 도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토우치 트리엔날레는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며 예술과 지역 사회의 융합을 이룬 탁월한 기획력, 추진력, 그리고 실행력을 동시에 보여준다.
실제로 세토우치 트리엔날레 행사를 준비하는 데 있어, 외부 예술가와 지역 주민들의 협력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들었다. 특히, 나오시마는 고령 인구로 구성된 지역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2,000회가 넘는 주민 설명회를 통해 산업 폐해로 잿빛이었던 섬을 예술의 섬으로 변모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주민들에게 설득했다고 하니, 그 꾸준함과 집요한 열정은 정말 본받을 만한 자세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여담일지 모르지만, 고령화 사회가 심각한 일본에서 주민들이 지역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며 상생하는 방향은 큰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에도 시대 스타일의 고라쿠엔 정원(Korakuen Garden)은 개장 전 일부 지역 봉사자들이 조경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개개인의 지역 사회와 문화유산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동시에, 노년층의 문화적 기여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도록 장려하는 공동체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단기적인 효과를 넘어 지역사회와 문화예술이 상생하는 방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보게 된다.
항상 일본 하면 관성처럼 도쿄와 오사카만 떠올렸는데, 올해는 그 외의 소도시에도 눈을 돌려보자 마음먹고 가장 눈에 띈 곳이 바로 나오시마였다.
이곳을 다녀오면서, 날씨도 그렇고 어쩐지 베니스의 잔상이 떠올랐다 - 비엔날레를 통해 전 세계 관람객에게 현대 예술 및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한 베니스처럼, 나오시마도 (후쿠타케 소이치로의 비전 아래) 문화예술을 통해 섬을 재생하고, 세토우치 트리엔날레와 같은 국제 예술 행사를 통해 지역사회의 자립을 넘어 세계적인 예술의 중심지로 자리 잡아가고 있기 때문일까 - 나오시마의 주민들은 산업 폐기물로 오염된 섬을 예술의 힘으로 변모시키기 위해 길고 익숙지 않은 과정에 동참했으며, 공간의 한계를 장점으로 탈바꿈하며 살아가고 있다.
아마 이런 모습이 내가 베니스를 경험하며 느낀 도시의 생명력과 맞닿아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본다. ‘단점이 장점으로 여겨지는 곳, 척박한 땅을 딛고 자신들이 가진 문화를 보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치관, 그리고 이런 유산을 도시의 주요 산업으로 확장해 나가는 힘’, 이전 포스팅에서 언급한 베니스의 생명력은 문화예술의 힘을 믿고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가고 있는 나오시마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공익 자본주의의 실현, 예술로 꽃 피운 공동체의 가치
‘경제는 문화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신념 하에, 후쿠타케 소이치로는 기업 활동의 본질이 부의 축적뿐만 아니라, 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해 왔다. 실제로 그는 초창기부터 주식 일부를 재단에 기부하며, 기업 경영에는 '지역 진흥'과 '문화 진흥'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는 철학을 실천해 왔고, 이러한 철학이 예술과 경제적 성과가 결합하여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성공적인 모델로서의 나오시마를 통해 가시화되었다고 생각한다.
'잘(Bene) 산다(esse)'는 의미는 단순히 개인이나 사기업의 명성과 경제력을 넘어, 공익을 위한 자본까지 고려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가치가 진정으로 빛날 수 있다는 배움을 얻어본다. 지역사회와 예술의 상생은 결국, 공익 자본주의를 통해 꽃 피운 공동체의 지속 가능한 유산임을 깨닫는 동시에, 문화예술의 긍정적인 비전을 목도한 것에 큰 안도감을 느끼며 나오시나의 잔상을 담아 글을 마무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