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고작 실수

고작실수

by 구슬통

저녁 장사를 준비하며 메뉴판을 정리하고 있는데

은행 앱에 알림이 떳다.



103호, 22,000원 입금.


나는 손에 쥔 휴대폰을 조금 기울였다.

작은 숫자 하나가 어딘가에 걸린 듯 어색하게 보였다.

다시한번 내가 보낸 메시지를 훑어봤다

내가 보낸 금액은 분명 22,930원.


그럼 930원은 어디로 간 걸까.


나는 이 건물의 총무를 맡고 있다.

화장실 청소와 주차장 청소,

매달 말이면 관리비 명세서를 만들고

임차인 단톡방에 명세서를 올린다.

그 후, 혹시나 놓쳤을까봐 개인 메시지로 또 다시

사진과 각 점포별 입금해야할 금액을 보낸다.

“글씨가 흐리다, 다시보내라”

이런 저런 불만을 피하기 위해

한번 두번 세번…숫자들을 확인하고

또박또박 보낸다


103호는 어떤 근거로 깎아내림을 한걸까.

내게 주는 청소비가 아까운걸까.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930원이 커보였다.

털어내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고 있는 내 자신이 싫다.


아니,

그래도 이건 말하는 게 맞다.

이건 단순한 돈 문제가 아니라

다른 상가와의 형평성 문제이기도 하니까.

누구 하나가 깎으면

다른 누군가도 깎을 것이다.

그리고 그 끝은

내가 다 감당해야 하는 일들이다.


그러니까 말해야 한다.

말하는 게,

맞다.

맞는데…

왜 이렇게 말 한 번이 어렵지?



나는 짧게 숨을 들이마시고 메시지를 보냈다.


-사장님, 관리비는 22,930원입니다.


보냈다.

보내고 나니 오히려 더 긴장됐다.

고작 몇 글자인데

이 문장이 어디로 닿을지,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

잠시 숨을 고르게 만들었다.


그런데 한시간이 지나도록

어떤 답장도,

930원도 오지 않았다.


-사장님,930원 더 보내주세요


한번더 보냈다

하지만 몇시간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다.


무시하는건가…?


순간 욕지거리가 목까지 차올랐다.


뭐야, 왜 무시해?

장난해?

930원이 우스워?


분명히 읽었을 텐데

아무 말도 없다.

그 침묵이 숫자보다 더 거슬렸다.



나는 다시 한 번 메시지를 띄웠다.

손끝이 조금 떨렸다.


-사장님, 관리비를 함부로 깎으시면 곤란합니다.


메시지를 보내는 순간

가슴 한쪽이 일렁였다.

말을 참는 건 괴로웠고,

말을 꺼내는 건 더 힘들었다.

그럼에도 이 말은 해야만 했다.


930원이 아니라

이건 태도가 문제였기 때문에.


바로 답장이 왔다.

“잘못 보냈어요. 실수입니다.”


곧 930원이 추가로 입금되었다.

정말 실수였을까를 생각하고 있는데

그 다음 문자가 왔다.


“고작 실수했을 뿐인데

말 표현이 좀 그러네요.”


고작 실수… 나의 말표현…

그 문자를 보는 순간 나는 오래전 잊혀진

문 하나가 몸 속에서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 사람도 그랬다.


그가 말하는 문제는 늘 내 말투였다.

분노의 원인은 내가 제공했다고 말했다.

그를 만나는 동안 나는 말 한마디를

제대로 꺼내지 못한채 죄책감만 안고 살았다.



처음 만났을 때 그 사람은 다정했다.

점심시간이면 한 시간 동안 통화를 했고,

업무 틈틈히 계속 메시지를 보냈다.

누군가가 나에게 이렇게 관심을 주고

시간을 쓰는게 벅차고, 고마웠다


친구를 만나면 친구와 함께 있는

사진과 위치를 보내달라고 했다.

나를 이렇게 걱정해주는구나,

이렇게 나를 궁금해 하는게

사랑 아니고 뭘까.

친구들에게 귀찮기도 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사랑받고 있다는 걸 자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집착은 심해졌다.

장소를 옮길때마다 사진을 찍었어야 했고,

대화 도중에도 계속 전화가 오고,

카톡도 보내야 했다.

사실 그럴 때마다

나는 친구들에게 괜히 미안하고,

조금 불편했다.

그래서 일부러 톡을 늦게 확인하고

늦게 보냈다.

친구들과 있는 자리에서

내 연인이 요구하는 확인 작업을

계속 수행하는 게 싫었다.

하지만 내가 톡을 늦게 보내기라도 하면

그 사람의 말투는 금세 달라졌다.


“너 지금 어디야.”

“여자 친구들이랑 만나는 건 맞아?”


다음 메시지는 거의 항상 같았다.


“씹어? 나 지금 찾아간다?”


“오빠가 아는 친구들이잖아.

다른 남자도 없는데 왜 그래?

자꾸 이러니까 나 친구들한테도 눈치 보이고 불편해.

이러지 마.”


나는 그 말을 조심스레 했다.

혹시나 상처받을까 봐,

말끝을 최대한 부드럽게 눌러 담았다.


“그 말투 뭐야?”

그의 목소리가 단단하게 올라섰다.

“넌 정말 이기적이구나?”


순간 그 말이 나에게 화살처럼

툭, 하고 박히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네 걱정하는 나는 안 보여?”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런 식으로 말해, 왜!

내가 너 사랑하니까 걱정돼서 그러는 건데…

그걸 꼭 집착하는 것처럼 말해야겠어?”


자신의 감정은 사랑이고 걱정이었고,

내 감정은 예민함이고 이기심이었다.

나는 늘 그의 “배려”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의 통제는

늘 “사랑하니까”라는 말로 덮였다.


잘못한 사람은 항상 내가 되었고

설명해야 하는 사람도,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 사람도

늘 나였다.



나는 점점 작아졌다.

모든것이 조심스러웠고,

그의 기분을 지키는 것이

내 삶의 전부처럼 되었다.



그러다

알바하던 카페에서 이벤트를 하던 날이었다.

연락처를 남기면

사은품을 주는 단순한 행사.


“종이에 연락처를 남겨주시면 추첨 후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손님을 응대하며 자연스럽게 이벤트를 설명했다


“이게 뭐야?”


그림자 하나가 내 앞을 가렸다.


“따로 연락을 드린다고?”


“이건 단순히—”


나는 끝까지 설명하지 못했다.


“이벤트?? 허… 야!! 남자 번호 받으니까 좋냐?”

“아니 이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물잔을 집어 들었다.

잔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유난히 길게 들렸다.


차가운 물이

내 팔과 얼굴에 튀었다.

잔은 깨지지 않았지만

그의 날카로운 눈빛과 표정이

내 몸 구석구석을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일이 끝날때 까지 카페 한쪽에서 기다렸다.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그 침묵이 목을 죄는것같았다.


일이 끝나자 기분이 안좋다며

술집으로 나를 데려갔다.

혼자서 술을 연거푸 들이켰다.


그리고 시작된 그 말들.


“넌 너무 헤퍼”

“넌 너무 말을 기분나쁘게해.”

“니 말이 얼마나 기분드럽게 만드는지 알아?”


나는 아무 말도 하지않았다.


“남자들앞에서는 그렇게 웃고, 옷도 원피스같은거만 입지? 남자꼬시고 싶어서 그러는거 아냐?”


”너 걸레같아“


수많은 폭언이 폭탄처럼 쏟아졌다.

언제 끝날까?

언제 멈출까?


”그만하자.내가잘못했어. 우리 헤어지자“


내 말을 듣는 순간 눈빛이 완전히 바꼈다


”뭐? 말 다했어? 씨… 너…너 따라와“


그는 나를 화장실 앞으로 데려갔다.

벽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다시한번 말해봐.“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오빠가 나땜에 기분나쁘다고 힘들다고 하니까..“


퍽.

주먹이 배로, 얼굴로 날아왔고

눈물도,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건지 모르겠다

이건 내가 아니다.




“이제 알겠어?

너는 내가 이렇게 해야 알아듣지?

날 이렇게 만드는건 너야.”



맞은 몸보다 더 아픈건 마음이었다.

슬펐다.

나는 그 사람을 사랑했고, 사랑받고 있다고

나를 지켜줄 사람이라 믿고 의지 했다.

하지만 그 사랑은

갑자기 폭력의 얼굴로 다가왔다.


그날 이후

나는 아르바이트도 그만두고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의 연락은 받지 않고

번호도 차단해버렸다.

문을 잠그고 불을 끄고

하루 종일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밤—

초인종이 울렸다.


딩—동.

딩—동.


문손잡이가 미세하게 돌아갔다.

나는 전신이 굳어 움직이지 못했다.


“열어.”


그의 목소리는 낮았다.

화가 났을때의 목소리다.


“안에 있는거 다 아니까 어서 열어.”


문이 한 번 툭,

그리고 또 한 번 퍽—

쿵쿵쿵쿵!!!

문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나는 간신히 숨을 참은 채,

벽에 등을 붙이고 눈물을 흘렸다


잠시후 소리가 잠잠해졌다.

밖은 고요했다.

너무 고요해서

내 머릿속이 더 큰 소음으로 가득찼다.


한참뒤 커튼 틈으로 바깥을 조금 열어본 순간—

그가 서 있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고개를 젖힌 채

내 방 창문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가만히…

아주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유리를 천천히 조용히

두드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날 밤 잠을 자지 않았다.

잠을 들 수 없었다.



날이 밝자

나는 시골 할머니 집으로 도망치듯 떠났다.

집과 점점 멀어졌지만

내 몸에 남은 공포는

쉽게 빠져나가지 않았다.


남자가 가까이 오면

불안하고 조마조마했다.

아무 이유 없이

뒷걸음치게 되는 순간이 많았다.

몸이 먼저 기억하는 공포는

머리보다 오래 남았다.



그리고 오늘

103호의 그 문장이

그 기억을 다시 흔들었다.


“말 표현이 좀 그러네요.”


실수는 103호가 했는데

또 나는 나쁜 사람이 되었다

과거의 그 사람도

오늘의 103호도

같은 방식으로

나를 책임자로 만들었다.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고

메시지를 다시 썼다.


“실수인 줄 몰랐습니다.

이런 식으로 대충 넘어가시려는 분들이 많아서

오해했습니다.

930원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말하고 싶었다.

따지고, 싸우고, 욕하고,

억울함까지 던져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쯤에서 그만두기로 했다.

그럴 가치가 없다.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조용히 가게의 조명을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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