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고 자랑스러운 기억
M은 초2 때 알게 된 친구다. 나와 짝꿍이었기도 했고, 같이 부반장을 해서 엄마들끼리도 모임을 하는 사이였다. M은 또래보다 작은 편이었지만 자기보다 큰 친구와의 싸움에도 절대 밀리지 않는 아주 단단한 면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남자애들은 M에게 싸움을 걸거나 작다는 이유로 얕잡아보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나는 M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아직도 몇 장면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날은 M의 아홉 번째 생일이었다. 같이 어울려 놀던 친구들 대여섯 명이 생일 파티에 초대받아 같이 M의 집에 갔었다. 그의 방 한쪽에는 푸른색 벽지 위에 세계 지도가 걸려있었고, 거기엔 파란색 이불로 덮인 침대가 있었다. 레고와 게임기로 가득 차 있을 것 같던 M의 방은 까불까불하던 학교에서의 모습과는 달리 고학년의 방처럼 고요했다.
거실에서 생일상이 차려지는 동안 M은 스케치북을 가져와 우리에게 자기가 그린 그림을 보여줬다. 어느 만화책을 보고 흉내 낸 그림들로, 여러 캐릭터를 만들어 자신만의 왕국 같은 것을 만들어 놨었다.
M의 캐릭터는 왕이었는데 친구들에게 나머지 쩌리 캐릭터들을 하사해줬다. 칼을 차고 있는 캐릭터를 가리키며 얘는 유난히 땀을 많이 흘리고 있던 A라고 했다. A는 장군스타일의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는지 히죽이고 있다가 용맹해 보이던 장군은 M의 부하임이 밝혀지자 덩치가 꽤 있던 A는 작은 M에게 헤드락을 거는 시늉을 하며 장난을 쳤다. 나와 친구들은 좋은 캐릭터가 걸리길 은근히 바라며 선풍기를 강으로 틀어 놓아도 도무지 시원해지지 않을 만큼 더운 공기의 작은 방에서 올망졸망 모여 흥미롭게 8절 스케치북 속 왕국을 구경했다.
왕자와 공주, 그리고 말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매직을 가진 마법사까지. 클리셰한 인물부터 요란한 캐릭터들이 한바탕 지나가고 한 친구가 진주 목걸이를 하고 있는 캐릭터를 가리키며 누구냐 물었다. M은 E라고 했다. E는 그 당시 남자애들한테 꽤 인기가 많은 친구였다. 애들이 깔깔 웃으며 M에게 너는 E보다 키가 작아서 결혼할 수 없다고 놀려 댔다.
“나는? 나는 뭐야?” 나는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물었다.
“너는 얘.” 왕 옆에 있던 낙서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뭐야?”
“내 딸!”
애들은 아까 보다 더 박장대소를 했다. 마치 지우개가 없어 잘못 그린 것을 그대로 둔 느낌적인 느낌의 것이었다. 혹시 가방인가 싶었던 그 낙서는 아주 구체적이게도 아기용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라고 했다. 다들 무기가 있거나 왕관을 쓰고 있거나 하다못해 '말에게 날개를 달아줄 수 있는 힘'이라는 초강력 스토리라도 있는데 나는 걷지도 못하는 응애응애 아기라니.
이웃 나라의 공주쯤의 대답을 기대했던 나는 그날 애들과 놀이터에서 나가 놀 때에도 열심히 놀지 못하다 시무룩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유치 찬란한 이 에피소드는 지금도 생각하면 어이없는 실소가 나오지만, 나는 한동안 좀 더 쿨하게 반응하지 못했던 아홉 살의 내가 아쉽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9살의 기억은 까맣게 잊고 산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밤 11시가 넘은 퇴근길이었다. 퇴근 후의 보상으로 팀에서 가장 친했던 언니와 으슥한 뒷골목 우리만 아는 공간에서 다른 직원들의 눈을 피해 몰래 만나 언니는 담배를 피우고 나는 그 옆에서 간접흡연을 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진정한 직장인이 되어 있는 느낌이 들어 그 시간을 즐겼다. 그날도 어김없이 우린 각자 퇴근하는 척을 하다가 그곳에서 은밀히 만나 열심히 회사욕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그러다 금요일 저녁에 테라스가 있는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자는 세련된 언니의 말에 핸드폰을 꺼내 날짜를 확인하는 중이었다. 9월 말 즈음이었으니 술 마시기 딱 좋은 날씨였다.
“오예 좋아!”
당시 만나고 있던 남자친구와 헤어질까 말까 했던 시기라 금요일 저녁에 약속이 생기는 것은 꽤나 반가운 일이었다. 신이 난 와중에 엄마한테 카톡이 왔다. 혹시라도 주말에 집에 내려오라고 할까 봐 거절의 멘트를 생각해 내며 바로 확인을 했다.
‘ㅇㅇ이가 죽었어. 장례식장에 갔다 오는 길이야’
M이었다. 몇 년 만에 보는 M의 이름이었다.
핸드폰을 들고 있던 손이 떨리더니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졌다.
심장은 덜컹 내려앉는 것 같더니 이내 요동을 쳤다.
혹시 잘못 온 것일까 홈버튼을 누르고 다시 카톡을 들어가길 몇 번을 반복했다.
그때마다 내 눈에 M의 이름이 더욱 또렷이 보였다.
한동안 먹구름이 낀 것 마냥 머리는 흐리게 그리고 느리게 돌아갔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담배를 피워보았다. 벽에 몸을 기대어 몇 모금 빨아 보기도 전에 콜록거리다 불씨는 존재감도 드러내지 못한 채 허무하게 꺼져갔다.
M은 여행 중에 사고로 죽었다고 했다. 20대 중반 가장 열정적인 나이에 M은 뜨거운 여름을 다 보내고 9월의 어느 날 허망하게 가버렸다.
나는 고향에서 치러진 M의 장례식에 가지 못했다. M의 부모님은 너무 충격이 큰 나머지 사망 소식을 본인과 아들의 가까운 몇 명의 지인에게만 겨우 알리셨고, 장례식 마지막날에서야 엄마도 다른 사람을 통해 알게 되어 급히 다녀오셨다고 했다.
황망하게 간 친구를 장례 마지막 날 밤 마지막 인사도 없이 그렇게 보내줘야 했다.
M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멋진 꿈을 가진 청년이었다. 입시를 앞두었던 고3시절, 모임을 다녀온 엄마는 M은 공부를 잘해 교대를 보낼 거라 했다며 부러워했었다. 하지만 그는 그의 부모님의 바람과는 달리 연극영화과를 진학하여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청년으로 자라 있었다. 내가 나고 자란 지방 작은 도시에서 어른들의 눈에 연극영화과란 매우 불안정하고 낯선 미래였을 것이다. 주변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뮤지컬 배우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역시 M다웠다.
'너의 단단함은 결코 휘어지지 않고 너와 함께 성장했구나. 자랑스러운 내 친구.'
옛 친구의 짧은 자취를 전해 들으며 눈물 몇 방울에 미소가 머금어졌다.
용기로 가득 찬 내 친구의 선택은 9살 그가 만들었던 왕국과 많이 닮아 있었다.
가을에 별이 된 친구가 봄이 되면 생각난다. 막 피기 시작한 젊고 짧았던 날을 닮아서일까.
나는 남들을 따라 하기 싫은 숙제를 하듯 살아온 내 지난날이 부끄러워졌다. 겨우 취업은 했지만 분명 꿈과는 멀어지고 있었다. 조연을 자처하며 직장인의 삶이란 거기서 거기라고 현실을 변명하며 살아왔던 시간이 스쳐 지나갔다.
M의 짧은 생은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바꾸게 했고 이 허무함 앞에서 나는 용기가 생겼다. 주어진 시간이 얼마이든 내가 주인공이 되어 살아가는 시간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 용기. 짧은 꽃을 피우고 간 내 친구가 말라가는 나의 봉오리에 비를 내려주는 것 같았다.
나는 지금도 그날의 공기와 내 손 끝에서 서서히 꺼져가던 불씨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는 20대의 끝자락 어느 날, 첫 사직서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