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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란 Jun 26. 2023

물비늘과 그를 둘러싼 어떤 것의 이야기

이천이십삼 년 유월 이십사 일

윤슬 혹은 물비늘의 극히 일부.




윤슬보다 물비늘이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미적인 느낌은 윤슬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물비늘에 더 끌린다. 물비늘이라고 하면 물비린내가 느껴지는 것만 같아서 왠지 내가 좋아하는 풍경을 더 감각적으로 떠올리거나 묘사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강물에 비친 빛을 좋아한다. 윤슬이라거나 물비늘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모습들을. 그 물결에 내가 투영하는 대상은 매번 바뀐다. 혹은 나조차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그려 낼 수 없다. 어쩌면 아무것도 투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잔물결의 일렁임은 눈앞에서 시시각각 변화하기 때문에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계속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물비늘 바라보는 행위를 좋아할 만하지 않을까.


이 년 반가량 지하철을 타고 매일같이 한강을 건넜다. 그토록 좋아하는 풍경을 매일 볼 수 있었지만 한강 사진을 제대로 찍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학교 가는 길에는 자느라, 올 때는 누군가가 늘 창문 앞에 서 있어서.


졸업한 지 네 달이나 지나서야 처음으로 달리는 지하철에서 한강을 찍었다. 몸을 뒤로 돌려 창밖으로 지나가는 강물을 카메라에 담았다. 옆자리에 다른 사람이 아닌 친구가 앉아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다리가 없는 반대쪽 풍경을 찍을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 번에 모든 걸 성공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나는 최선을 다했다. 그러니 후회하지는 않는다.




계속 보다 보니 다리도 예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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