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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람 Oct 07. 2023

1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10월이다.

한국에서 10월이면 동네 나무들도 알록달록 단풍이 들기 시작할 테지만, 캘리포니아의 가을은 여전히 푸르다. 아침저녁으로는 기온이 15도 내외로 떨어지지만,

낮기온은 여전히 30도를 훌쩍 뛰어넘어 뜨겁다.

이런 걸 인디언서머라고 하는 걸까.

하루에 여름과 가을, 두 계절을 함께 보내고 있는 기분이다.

금요일 오후. 물놀이가 하고 싶다는 아이들 등쌀에 떠밀려 오랜만에 수영장을 찾았다.

여름방학이 지나고는 다시 수영장을 갈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10월이 지나도 찬물에 몸을 담글 수 있을 만큼 캘리포니아의 햇살은 뜨겁다.

물을 보자 서슴없이 풍덩 뛰어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청량하다. 확실히 이곳의 계절 시계는 한국과 다르게 흘러가는 듯하다.

아이들과 한바탕 신나게 물놀이를 하다가 반대편으로 건너와 조금 전 머물렀던 곳을 바라본다.

우리는 분명 그곳에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우리는 그곳에 잠시 머물렀을 뿐. 우리가 떠난 그 자리는 지금은 비었고, 언젠간 또 다른 사람으로 채워질 거다. 잠시 머문다는 건, 저 빈 의자 같은 거구나. 싶었다.

요 며칠 괜히 마음이 가라앉았다.

가을이 오고, 곧 겨울이 오면 미국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돌아가서 해야 할 일들과 그동안 해온 일들을 돌아보며 후회와 아쉬움이 밀려왔다.

1년 사이에 뭘 해내겠다는 거창한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막상 또 아무것도 해낸 게 없는 것처럼 허무했다. 한 움큼 움켜쥐었던 모래가 어느새 스르르 빠져나간 것처럼 손에 쥐어진 게 하나도 없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모든 시간, 모든 공간이 그렇듯 우리는 그곳에 잠시 머물 뿐이다. 애초에 손에 쥘 수 없는 모래였다.

다만 머무는 동안,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는 수밖에.

이제부터라도 하고 싶었던 일들, 하려 했던 일들을 마음속에 담아두지 말고, 머리로만 계획하지 말고,

실제로 하나씩 해보자 다짐한다. 언젠가 이 시간과 공간에서 멀리 떨어져 바라봐도 후회가 남지 않도록.

신나게 물놀이를 마치고, ‘이제 그만 집에 가자’는 말에도 아무런 미련 없이 물밖로 나와 물기를 툭툭 털어내는 아이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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