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2~3권의 일기장을 동시에 쓴다. 글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스치면 즉시 끄적이는 버릇 때문이다.
부엌 일기장은 주로 요리 자투리 시간에 끄적이는 곳이다. 김치찌개를 졸이거나, 나물 숨 죽이거나, 설거지 후 물기가 마르는 틈새 시간에 적다보니 노트 아래는 마른 자국으로 쭈굴쭈굴하다.
맨 앞장엔 하늘색 스테고사우르스가 왼쪽 스프링을 보며 편안히 웃고 있다. 그 위에는 "차 안의 독서 기록"이라 써놓았다.
차량용 일기장을 만들었다가 가방에 넣어 부엌으로 데려왔나 보다.(내가 한 일인데도 기억이 가물거린다.)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생각 3줄
나의 미래의 삶에 대한 10줄
호주에 사는 20년 지기 친구에게 쓴 편지와 딸의 쪽지
간간히 적힌 그날의 병원 예약, 장 볼거리 등
아직 호주에 가지 못한 4월의 편지
두 번째 일기장은 직장에 있는 갈색 레자 다이어리이다. 일터에서 느끼는 갈등, 찰나의 후회, 원망 등이 적혀있는 비밀 수첩이다. 커피 한 잔과 빵하나를 같이 먹은 지출 흔적과 반성을 남긴 장소이다. 나만 해석할 수 있는 키워드들이 때론 칼춤을 탭댄스를 추는 곳이다.
세 번째 일기장은 침실 책상에 있는 연회색 폭신 다이어리.
이 곳엔 새벽 독서모임의 긍정 확언들과 어제의 한줄 기록이 모여있다. 끼적인 그림일기도 있다.
지난날의 감정, 사건을 알 수 있는 오유진실록이다. 뼛속 소리, 욕도 쓰여있고, 깊은 사랑의 감정도 쓰여있다.
잊히지 않는 밤의 꿈도 있다.
새벽 6시에 쓰이는 나의 미래
내가 사는 공간에 있는 일기장들 속엔 어떤 검열관도 들어올 수 없다. 나도 나를 검열하지 않는 원칙을 지킨다. 직접 만든 현실 또는 초현실적 세계관 속 초상화이다. 내가 쓴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어두운 글도 많다. 울렁이는 가슴으로 일기장을 넘기면 공백의 종이가 있다. 그리곤, 다시 끄적거려진 일상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