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개울건너 Jul 17. 2024

                 학교

                                                                        

세상은 여행하다가 호기심 나는 곳에머물며 배우는 학교다. 배울 과목도 내가 정한다. 스승·덕목· 꽃차 등.      



학창시절 여러 과목의 공부가 버거웠다. 수학은 공식을 줄줄 외워도 원리를 모르니 어떻게 대입 시켜야 하는지 답답했다. 화학 교과서 뒤에 있던 원소 주기율표는 보기만 해도 두통이 일었고 영어는 단어부터 막혀 단어만 외우다 육년을 다 보냈다. 선생님들은 공부해서 성적 좀 올리라고 재촉했다. 나 역시 공부를 잘하는 게 소원이어서 열심히 하려고 책장을 열면 기초부터 몰라 넘어지는데 어쩌라는 건지.



고등학교 졸업 후 공부가 왜 그리 힘들었을까 의문이었다. 대학을 못 갔으니 한가해져 집으로 오는 신문을 꼼꼼히 읽었다. 한자 사전을 곁에 두고 읽다가 모르는 한자가 나오면 사전을 열고 찾았다. 읽을 줄 몰라 끊기는 한자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 알아내는 순간 문장이 물줄기처럼 연결되는 희열을 맛보았다.

   얼마가 지났을까 한자 섞인 신문을 사전 없이 읽을 수 있게 됐다.


   작은 영어 사전을 가방에 넣고 다니며 모르는 단어가 보이면 바로 가방에서 사전을 꺼내 찾아보았다. 거리에서든 남의 집에서든.

그 과정에서 철자 발음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음을 깨달으며 무릎을 쳤다. 일명 ‘파닉스’였다.    



결혼해 큰 아이가 다섯 살이 되자 한자 일일공부를 신청해 아이와 함께 공부했다. 우유 투입구로 한 장씩 들어오는 학습지의 빈 네모 칸을 아이와 놀이처럼 한자로 채웠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 분주함에서 조금 놓여나자 그룹 성서공부 반에 들어가 묵상을 컴퓨터로 치며 자판을 익혔다. 꾸준히 하다 보니 워드 치는 속도가 빨라졌다.

   누군가가 짜놓은 제도에 맞춰 진행되는 공부는 고단했으나 필요해서 스스로 선택해 내 식대로 익히는 공부는 재미있었다.




입구 농장의 긴 머리 여인은 그녀의 남편과 함께 밭일을 조금 하다가 “아이 더워”하며 혼자만 차 안으로 쏙 들어간다. 그리곤 차창을 열고 남자에게 계속 무어라 쫑알댄다. 어깨가 떡 벌어지고 입이 악어처럼 생긴 남자는 아내 잔소리에도 뭐가 그리 즐거운지 벙실벙실 웃는다. 그의 장모에게 갖다 줄 야채를 뜯으면서.

   그녀는 신혼시절에 남편 운동중독을 이해 못했단다. 한동안 싸우다가 운동이 어떤 것이기에 그가 그리도 좋아하는지 궁금해서 남자가 운동하는 곳에 같이 가봤다가 지금은 그녀가 더 운동중독이 돼있다고 한다.

   낚시 광인 남편을 이해하려고 또 낚시터에 따라갔다가 그녀가 더 낚시 광이 됐단다. 지혜와 노력 없이 거저 얻는 사랑은 없으리라. 덥다고 혼자만 차 안으로 들어가 재잘대는 그녀에게 누가 철부지라 말하겠는가. 헛웃음 날 만큼 오답인 내 기준에만 맞추라고 남편에게 악다구니 썼던 나에게 그녀는 스승이다.

  

저 건너 강씨가 “커피 한 잔 주이소!” 소리치며 낮은 울타리 두 개를 넘어온다. 사람들과 늘 거리를 두고 있는 그가 먼저 커피를 달라는 걸 보니 오랜 고립은 견디기 힘든 모양이다. 시골에서 초등학교 졸업 후 도시로 나가서 인테리어 기술을 익혀 그쪽 사업을 하다가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당한 경험이 있다는 그는 여기 사람들에게도 좀처럼 곁을 주지 않았었다.      

   그는 이렇게 감자 수확을 끝낸 하지부터는 하루에 해가 개 꼬리만큼씩 짧아진다고 했다. 감자를 캔 고랑의 비닐구멍에 그대로 들깨모종을 심으면 된다고도 말했다. 뒤 농장 여인이 농사일이 힘들다고 하자 그는 농사는 원래 고생하려고 짓는 거 아니냐며 농부는 손이 쉬고 있으면 안 된단다.

   개 꼬리만큼씩 짧아지는 하루 해 아래서 손을 놀리지 않으려고 나는 자꾸 풀을 뽑는다. 원소의 주기율은 모를지 몰라도 절기와 삶의 주기율을 꿰고 있는 그도 나의 스승이다.


뒤편 너머 길을 산책하다가 양 선생 네 밭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울타리 아래서 고개를 숙이고 살랑대는 꽃이 예뻐서. 호미질을 하고 있는 그녀에게 그 꽃의 이름을 물었다. 매발톱꽃이라고 일러줬다. 꽃말이 ‘행복’이라는 것도. 그녀는 꽃차를 연구한단다. 밭으로 들어가 농막 뒤를 둘러보니 꽃 반 작물 반이었다.

   그녀의 안내로 농막 안에도 들어가 봤다. 그녀가 따서 말렸다는 여러 종류의 꽃차와 동화책들이 진열돼 있었다. 그녀는 국화 꽃차를 타주었다. 말라있던 국화꽃이 따라주는 뜨거운 물 안에서 화들짝 피어났다.    

   중학교 교사이기도 한 그녀는 동화책 만드는 동아리에서도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꽃차를 마시며 창 너머 밖을 내다보는데 그녀가 표지에 냇가 강아지풀 그림이 그려져 있는 동화책을 무릎 위에 살며시 놓아주었다. 이 책은 그녀 동아리에서 만든 건 아니라고 했다. 책장을 열어 읽어보니 내용도 그림만큼이나 파릇했다. 이렇게 파릇한 작품이 무릎 위에 얹히기 까지 세상 어딘가에서 고운 사람들이 성실히 작업했을 노고가 전해졌다.

   그녀의 차분한 말투와 행동은 급한 성격인 내가 배워야할 덕목이니 그녀 또한 나의 스승이다.  


  누구의 말이나 행동을 허투로 듣거나 볼 일이 아니다. 옆 농장 김 여사가 아침에 나오자마자 우리 밭으로 먼저 들어와 어제 심어놓은 대파와 들깨 모종을 둘러보았다. 농사 선배인 그녀가 남편에게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는데 나는 무더기로 피어있는 노란 쑥갓 꽃을 사진 찍느라 그녀의 설명을 놓치고 말았다. 다음번엔 그녀가 해주는 농사 수업을 놓치지 않으리라.

   그녀가 밭을 나서다가 아직 다 못 심어 한쪽에 모아둔 들깨 모종을 보며 모종은 낮에 심지 말고 서늘해지는 저녁 무렵에 심어주라고 일러줬다. 그래야 모종들이 밤에 내리는 이슬에 목을 축이고 생기를 찾아 아침에 일어선다고. 더운 낮에 심으면 얘들은 손이 없어 양산도 못 드는데 얼마나 목이 타겠냐고도 했다.

   식물을 어린아이와 똑같이 대하는 그녀를 볼 때마다 나는 감한다. 생명 없는 영어 파닉스를 알아냈을 때 무릎은 쳤으나 감은 하지 않았었다. 그녀 말이 옳다. 이 아가들은 손도 없지 않은가.

   

세상 공부는 머리 아프지도 고되지도 않다. 궁금하지도 않은 미적분을 푸는 학창시절의 공부는 고으나  이웃들의 언행을 기록하며 나만의 교과서를 만들어가는 세상 수업은 아름답다.     


더덕 잎 타고 올라가라고 옆에 지지대를 놓아줬더니 잠깐 사이 새 순이 넝쿨을 두 번이나 감았다며 남편이 “눈도 안 달린 것이 차암..” 신기해했다.      

   

한밤중에 비가 쏟아지며 바람까지 불기 시작하니 그가 비옷으로 갈아입는다. 가지가 찢어질 만큼 많이 달린 고추 가지가 비바람에 꺾일까 걱정스러워하면서. 잘 크고 있는 저놈들 쓰러지지 않도록 기둥에 기댈 수 있게 묶어줘야 한단다.

   이제 우리 농막 교실에 앉아 그의 심성을 기록한다.

   올해 고추농사는 풍년을 예감한다.


작가의 이전글 옹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