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하얀 들깨가 꽃을 피웠다. 저 꽃이 지면 꽃 진 깨보숭이에 들깨가 들어앉아 몸을 키우며 익어갈 것이다. 깨가 다 여물기 전에 어서 깻잎을 따야한다. 늦게 따면 다 익은 깨가 잎 따는 소리에 놀라 뛰쳐나오다 바닥으로 다 떨어져 헛농사가 될 테니까. 내일은 일어나자마자 깻잎부터 따리라.
신혼 때 시어머니가 농작물 중에서 약을 제일 적게 하든가 안 하는 것이 깻잎이라고 알려주셨다. 다른 작물처럼 약을 많이 하는 줄 알고 있던 나는 놀랍고 반가웠다. 그때부터 깻잎 욕심이 많아져 많은 양을 따오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세상 뜨실 때까지 팔년 동안은 어머니가 키워 놓으신 밭에서 땄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후엔 시누이네 시댁에서 따가라고 배려해 주셔 벌초 때마다 내려가 그곳에서 깻잎을 땄다. 어느 해인가 절기가 꽤 늦었던 때가 있었다. 깊은 가을 속에서 깻잎을 따는데 한 잎 두 잎 똑 똑 딸 때마다 들깨가 후두둑 후두둑 떨어졌다.
그 뿐인가, 몸이 깻잎을 스치기만 해도 깨가 떨어졌다. 들깨가 이미 다 익어 수확만 기다리고 있던 시기였으니까. 그런데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이리 저리 사돈네 깨밭을 휘젓고 다니며 깻잎만 따느라 바빴다. 그럴 땐 깻대를 건들지 말았어야 하거늘. 깻잎을 한 장도 따지 않는 게 밭주인에 대한 예의였다. 나는 그렇게 몸만 어른일 뿐 늦도록 철이 없었다.
여린 깻잎조차 나에겐 탐욕의 대상이었다. 내 신랑 내 새끼 건강 지켜줄 저 깻잎, 또 그것이 들기름으로 태어난다는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깻잎 딴다고 들깨를 땅바닥에 다 쏟아놓고 떠난 자리를 보며 사돈어른이 얼마나 혀를 찼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