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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울건너 Dec 08. 2024

우리 것을 만지다

 우리의 먹거리를 만질 때가 나는 가장 행복하다.

 어릴 적 겨울날 화롯가에서, 부잣집 장녀였던 어머니로부터 외갓집 곳간 항아리에 그득 채워두고 먹었다던 곶감, 한과, 밑반찬 등 겨울 먹거리 이야기를 들을 때 마음이 푸근해졌다. 희고 긴 앞치마를 두른 여인들이 마당과 부엌을 분주히 오가고, 추수한 곡식 가마니를 등에 진 머슴들이 창고에 볏가마니를 쌓는 외갓집 풍경도 함께 상상이 되면서

   


부모님께 빌붙어 살던 삶을 떠나 내 삶을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결혼을 하고부터 저장 음식들을 만들어 겨울 살림에 대비했다.     

추석에 시댁에 내려가 밭에서 따온 많은 깻잎을 씻어 한 장 한 장 포개 여러 무더기로 만들고 각각의 무더기를 깻잎과 함께 가져온 짚 끈을 이용해 열십자로 묶어 항아리에 넣었다. 그리고 넓적한 돌로 누른 뒤 짭짤한 소금물을 부어 연탄 광에 저장했다. 겨울에 한 무더기씩 꺼내 물에 담가 간을 빼고 들기름만 부어 살짝 찌면 훌륭한 반찬이 된다.      

호박을 썰어 말렸다. 주인집 옥상을 오르내리며 가을 햇빛과 바람에 뽀얗게 분을 올리며 말라가는 호박을 가끔 뒤집어주었다. 물에 불려 양념과 함께 볶으면 정월 대보름에 주로 먹는 호박오가리나물이 된다.      

고구마를 쪄내 썰어 채반에 편 후 망을 씌워 말렸다. 일명 고구마 말랭이다.      


가을이 깊어질 무렵 고추에 밀가루를 씌워 쪄내 실을 꿴 바늘로 고추에 한 개 한 개 찔러 넣으며 엮어 연탄불의 화기가 지나가는 부엌 연통에 걸어놓고 말려 부각을 만들었다.      

김장 땐 담벼락에 길게 줄을 매고 거기에 무시래기를 걸었다. 눈비 맞으며 시래기가 누렇게 변하며 말라갔다.


이 여러 겨울 먹거리들을 항아리에, 자루에 보관하며 겨울에 시장을 나가지 않고도 식재료가 해결된다는 생각에 편안해지며 미리 배가 든든했다.     


겨울밤 위풍 심한 신혼 단칸방에서 남편과 함께 담요를 허리께까지 올려 덮고 앉아 티브이를 보며 오물오물 고구마 말랭이를 먹었다



몇 년 후 작은 아파트로 이사했다.

지자체로부터 추첨으로 임대받은 주말 농장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배추시래기도 말렸다. 김장할 때 떼어낸 배추 겉 잎 시래기 반찬은 무시래기 반찬보다 더 쫄깃하고 맛이 있으니까. 토란 농사도 지어 토란대도 말릴 수 있었다.


베란다에 줄을 매 무시래기를 걸었고 약간 도탑게 썬 호박은 넓은 채반에 담아 펴서 베란다 창 밖 화분대에 내놓아 말렸다.            

    



작은 텃밭을 마련했다.     

내 몸의 사계는 바람이 일러주는 대로 움직인다. 정월 대보름을 지나 겨울과 봄의 경계에서 장을 담그고 사십 후에 된장과 간장으로 가른다.

몇 해 전에 담근 간장이 항아리에서 햇빛에 그대로 다 졸아붙어 갈색 보석이 되어 반짝이며 큰 소금덩어리가 되어있기도 하는데 그것을 떼어내 절구에 빻고 체로 걸러 간장의 신비한 영양을 머금은 간장소금으로 만들어내는 일도 체화된 몸짓이다.

    


봄이면 두릅 엄나무순 머윗잎으로 장아찌를, 약을 치지 않은 매실로 항아리에 청을 담그고  쑥을 뜯어 데쳐 씻은 쌀과 함께 방앗간으로 가져가 쑥차와 쑥개떡을 만든다.      

취와 망초대는 데쳐 말리고 여름부터 가을 서리가 내리기 전까지 여주와 가지를 썰어 말린다.

     


누가 ‘쥐눈이콩’이라고 이름 지었을까. 가을이 삭아질 무렵 쥐 눈알만큼이나 작고 까만 쥐눈이콩을 거둬 털었다. 그것은 겨우내 콩나물로 다시 자랄 것이다.


빨간 고추는 따서 말려 빻고, 늦게 열어 찬바람에 미처 익지 못한 초록 고추는 서리 내리기 전에 서둘러 따서 부각을 만든다.     

추위가 머뭇거리는 초겨울, 무 배추시래기는 울타리에 걸어 널고, 김장을 끝내고 남은 무는 무말랭이 반찬으로 만들기 위해 두껍게 썰어 말린다.

야채가 많은 양이어도 이젠 건조기가 있어 번거롭지 않고 빨리 말리는데 어려움이 없다.

 묵나물로 밥상에 올리고, 형제들과 소중한 지인들과도 나눈다. 그러고도 남는 야채들은 근처 로컬푸드 매장에 내다 판매하기도 한다.      

   


지난 달 해외에 살고 있는 동생이 와서 지내다가 돌아가는 짐에 된장과 간장 밑반찬들을 넣으며 우리 집안에 어머니 전수자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말했을 때 나는 내가 상상했던 외갓집 풍경을 따라 하고 싶었나보다고 생각했다. 옛날 외갓집처럼 부엌과 마당을 분주히 오가는 여인들은 없이 여인은 텃밭에서 지금 나 혼자고, 볏가마니를 등에 져다 곳간에 쌓는 머슴들은 없이 지금 씨 뿌리고 일구는 머슴은 남편뿐이지만.     



동생과 지인들에게 건넨 선물이 해외에 있는 그들의 지인들과도 나누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공들여 매만진 먹거리가 캐나다로 동남아로 미국으로 건너가 누군가의 건강에 도움이 되고 있을 거라는 자부심에 어깨가 펴졌다.     




김장을 끝냈으니 이젠 느릿느릿 움직여도 좋으리라.      


누가 떨구고 간 박 씨일까, 심지도 않은 조롱박이 열렸다. 박들을 따서 작은 톱으로 썰어 안을 파내고 물에 삶은 후 말려 바가지를 만들었다.           

기둥에서 잘 마른 옥수수를 내려 알을 하나하나 따서 모아보니 한 됫박 되겠다. 겨울차로 끓여 마시기 위해 볶아 달라 부탁하러 오일장에 뻥튀기 사장님을 찾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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