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지나도 바뀌지 않아야 할 당신만의 경영철학은 무엇인가요?"
스타트업이라는 정의는 모호하다. 구글링해 보면 "a newly established business". 이 정의에 기반한다면, 새롭게 창업한 모든 기업은 스타트업의 범주로 묶을 수 있겠다. 다만, 현실에서는 모든 새로운 기업에 스타트업이라고 명명하지는 않는 듯 하고, "기업가 정신과 올바른 조직문화, IT 기술력을 기반으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롭게 창업을 결정한 젊은 CEO와 그를 따르기 위해 모인 열정 있는 동료들" 정도의 뉘앙스로 사용되곤 한다. (뭐 어쨋든 간에 내가 하려던 말은) 이유를 불문하고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나름대로 그들만의 조직문화를 구축하고, 그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일하는 방식을 찾아 나가는 과정을 거치는 경우들을 많이 보게 된다.그런데, 그간 몇 년동안 몸담아온 회사와 주변에 가깝게 알고 지내는 다른 기업의 조직문화를 살펴보면한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조직문화와 기업의 성공과의 인과관계가 어쩌면 반대되는 것 같은 미궁에 빠지고 마는 것.
표현이 좀 어려운데,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ㆍ(일반적인 HR의 상식은) 좋은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다면 → 성공할 확률이 높다 였는데,
ㆍ(그러나 실제 세상에서는) 성공한 기업들만 → 좋은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만약 이와 같은 현실 명제가 사실이라면 올바른 조직문화가 다 무슨 소용인가. 차라리 돈벌이에만 집중하고서, 나중에 먹고살 만 해지면 그제서야 조직문화를 뒤늦게 가꾸면 되지 않겠는가? 심리적 안전감과 자율성 부여 등등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과연 조직문화와 기업의 성공 간의 상관관계가 있기는 할까?
이에 대해 나의 지난 경험들을 깊이 숙고한 끝에 나는 아래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먼저, 아래 질문들을 한 번 살펴보자.
"직원은 신뢰의 대상인가(A), 감시의 대상인가(B)?"
"고객이 우선인가(A), 매출이 우선인가(B)?"
"임원급의 리더십 자질은 교육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가(A), 어느 정도 선천적으로 타고나야 하는가(B)?"
기업 경영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윤 창출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위 질문에 대해 사실 무엇이 정답이라고 답할 수는 없다. 바꿔 말하면 이는 창업주이자 대표 스스로가 선택해야 하는 문제일 뿐이며, 나의 선택에 동의해 줄 수 있는 구성원들과 함께 미션과 비전을 만들어 경영해 나가면 그만이다. 정작 문제인 것은 '무엇을 선택하는가'가 아니라, '(창업가 나름의 신념으로 만들어진) 경영철학이 너무도 쉽게 바뀌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앞선 3가지 질문들을 다시 살펴보자. 그럴싸한 경영을 하고 싶은 초기 스타트업 창업가들은 대부분 B보다는 A 문장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실은 B에 더 마음이 가는 경우도 많지만 이런 경우라 하더라도) 겉으로는 A를 표방하는 경우가 많고, 실제로도 언행일치를 위해 A를 표방한다는 사실을 명문화하는 등의 노력등을 기울이고 마음을 다잡으시곤 한다. 그러나..
(위 문장 중 첫번째 질문의 예로 든다면) 믿었던 직원이 갑자기 경쟁사로 이직하면서 그동안 야근수당을 받지 못했다며 노동부에 나를 신고하는 순간 CEO의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내가 직원들을 위해 많은 배려를 했던 결과물이 고작 이것인가'
(두번째 질문의 예로 든다면) 고객 중심적인 제품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고객이 반드시 돈이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정의의 편에 서면 인생이 고된 법이니까. 그러고 나서는 고객이 불편함을 겪게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스타트업의 생존'이라는 명목으로 매출이나 이익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결국 CEO는 처음에는 A를 택했지만, (주변 변수들에 따라) 초심을 잃게 되면서 점점 B를 택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경영이라는 것은 상황에 맞게 변화무쌍하게 바꿔 나가야만 해.
변화하지 않는다면 결코 성장해 나갈 수 없어.
위 문장은 당연히 참이다. 거시적인 시장의 흐름이나 경쟁사와 동종업계의 움직임 등에 따라 목표를 적절히 수정하고, 이에 따른 방향성을 바꾸어 나가는 것은 기업 경영에 있어 당연히 필요한 덕목이다. 더군다나 기술개발의 속도와 그것이 일상에 미치는 변화 속도가 매우 빠른 오늘날의 세상에서는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명제이다. 그러므로, 매년(혹은 필요에 따라 반기나 분기 등)마다 우리는 올바른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경영전략을 수립하며, 시의적절하게 바꾸어 나가야 함은 물론 참이다.
다만, 위 문장은 부분적으로는 거짓이다. 기업 경영에 있어 쉽게 바뀌지 않아야 하는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어떠한 조직문화를 구축한다 하더라도,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성과를 내고 어떻게 목표를 달성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창업주의 경영이념과 철학이 담기게 된다. 그런데, 창업주의 경영 철학이 위와 같은 예시처럼 쉽게 바뀌면 어떻게 될까?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버리고 만다.
비슷한 예시로, 세상의 변화에 따라서 새로운 법령이 추가되거나 수정될 수는 있겠지만, 대한민국의 존립에 근거한 헌법(이를테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 쉽게 바뀐다면 어떻게 될까? 그 조직의 존재 혹은 존폐의 문제와 직결되는 기본이 있는 것이다.
기업 운영에 대한 나만의 철학을 바탕으로 경영 이념을 세우는 것은 국가로 따지면 헌법을 세우는 것과 같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경영 이념을 기반으로 기업을 경영하는 리더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주변 상황이 변화한다고 해서 나의 경영 철학을 쉽게 바꾸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경영철학은 기업의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식, 심지어는 조직도와 프로세스 등등 모든 것들에 뿌리깊게 반영된다. 먼저, 아래 질문들을 한 번 살펴보자.
아마 IT 혹은 스타트업 업계에 계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요새 많은 기업들이 재택근무를 없애거나 축소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사실 재택근무가 줄어든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도 줄어드는 이유 자체가 더욱 중요하다. 몇가지 이유를 들어 본다면,
첫째, 비대면 소통에서의 한계를 절감하고 대면 소통을 활성화하기 위해
둘째, 비상경영 시기에 비대면 소통으로 인한 비효율을 제거하고 조직 생산성을 늘리기 위해
셋째, 재택근무가 불가한 직군(현장직 등)과의 차별성을 줄이기 위해
넷째, 직원들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1~3번째 이유를 들곤 하지만, 사실 안타깝게도 대부분 창업주들의 실제 속마음은 4번인 경우가 많다. 일부 직원(5%)의 어뷰징 케이스를 보고선, 나머지 직원들(95%) 또한 그럴 것이라고 가정하는 경우라 가정해 보자. 이 때, 5%의 어뷰징 케이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95%의 직원들을 신뢰하고 자율을 부여하는 것이 이득이라면 이 제도를 유지해야 할 것이고, 반대로 5%의 어뷰징 케이스가 발생했으니, 나머지 95%의 직원들도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면 이 제도를 폐지해야 할 것이다. 이는 곧,
"경영자인 나에게 있어 직원들은 신뢰할 만한 존재인가, 아니면 그저 내 앞에 있을때만 일하는 척 하는 눈속임 하는 존재들인가?"와 같이 우리 회사의 대표자인 나의 경영철학으로부터 기반하는 질문이다. (이는 사실 "인간은 선한가, 악한가"와 같은 질문에서 파생된다)
저의 말씀을 오해는 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직원들을 무조건 신뢰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직원들을 신뢰할 마음이 없다면) 착하고 멋진 코스프레보다는 솔직한 나의 생각(이를테면 직원들은 눈속임하는 존재)을 기반으로 어떻게 경영철학을 잡아나가 회사가 잘 돌아가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변화무쌍한 유연함도 필요하지만, 경영에 있어 바뀌지 않아야 하는 것도 분명 존재한다. 일론 머스크와 제프 베조스, 스티브잡스 등은 각각 스타일이 달랐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경영철학에 있어서 결코 타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영의 신이라 불리웠던 고 이나모리 가즈오 또한 그의 저서에서 "경영자는 어떤 변화가 생겨도 근본까지 파고든 확실한 경영철학을 견지해야지, 경영이라는 것을 그리 간단하게 바꿔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나는 그들이 성공하지 못해 그저 그런 중소기업으로 남았다 하더라도 그 철학을 유지해 나갔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 기업을 대표하는 사업가로서, 시대가 변해도 바뀌지 않아야 할 나만의 철학이 무엇인지 한번쯤 깊이있게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지보신다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