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5. 국방일보 교수실에서 기고글
과거에는 바다로 떠난 배가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꽤 빈번했다. 그래선지 구전(舊傳) 속 바다는 두려움이 가득한 미지의 영역으로, 선원들은 강한 힘과 용기를 지닌 자들로 종종 묘사되곤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바다에 익숙해졌고, 중세 국가들은 바닷길을 이용해 점차 교류할 수 있게 됐다. 아시아에서는 해양 실크로드로 불리는 동아시아-인도 항로를 이용했으며 유럽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항로들이 인기가 많았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항로는 지중해-홍해-인도양을 지나는 오스만 제국의 동방 무역로가 있다. 하지만 15세기 초 오스만 제국의 지중해 교역 제한과 흑사병 치료제라고 인식됐던 향신료(육두구)의 수요 폭등으로 인해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신항로 개척 시대가 열리게 됐다. 이 신항로는 기존의 동방 무역로가 아닌 아프리카 대륙을 끼고 돌아가는 엄청나게 긴 항로다. 그러자 기존보다 훨씬 먼 거리를 항해하는 원양항해술의 필요성이 대두했다.
이에 따라 카락(Carrack)과 같은 원양항해용 범선이 개발되고, 이슬람 문화권의 아스트롤라베(Astrolabe)와 나침반을 이용한 위치계산법이 개발됐다.
카락은 이전의 범선과는 다르게 횡범과 종범을 모두 사용하는 범선이다. 배의 중심선에 교차해 달리는 사각형 가로돛인 횡범과 중심선에 평행하게 달리는 세로돛인 종범은 각각의 역할이 있다. 순풍(선미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불면 횡범은 빠른 속도를 꾸준히 내는 동력이 되며, 종범은 돛의 방향을 바꿈으로써 함선의 선회를 돕는 역할을 한다. 그러면 역풍(선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불 때는 어떻게 되는가. 바로 배를 틀어 지그재그로 움직여 역풍을 맞으며 전진하는 비팅(Beating)이 있다.
보통 역풍의 방향을 기준으로 ±45도 구간은 전진할 수 없는 No-go zone이 되는데(배 또는 돛의 형태에 따라 No-go zone은 ±30도에서 ±60도까지 조정), 이 구간을 미리 계산한 뒤 측량된 진행 각도에 맞추어 돛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이처럼 대규모 범선 카락은 항해를 위해 측량 계산이 필수적이다.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과 더불어 위도와 경도를 측정하는 아스트롤라베는 그리스어로 ‘별을 붙잡는다’는 의미의 아스트롤라보스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초기 아스트롤라베는 태양 또는 별의 고도를 이용해 시간을 측정하는 시계로 이용됐다. 그러다 점차 관측자 위치의 위도·경도 측정 및 천체의 궤도 계산 등이 가능한 복잡한 계산기로 발전했다. 아스트롤라베는 당시 수학과 천문학적 정보를 집약해 놓은 정수(精髓)로서, 선박의 현재 위치와 정확한 항적을 계산해 목적 항해가 가능하게 했다.
이렇듯 수학적 지식은 원양항해를 완성하는 핵심 지식이었고, 결과적으로 오늘날 세계 역사가 각 문명의 역사가 아닌 모든 대륙의 문명이 얽힌 하나의 세계 역사로 발전하는 기초가 됐다.
1498년 포르투갈의 바스쿠 다 가마는 아프리카를 돌아 아시아 대륙으로 가는 신항로 개척에 성공하였고, 1492년 콜럼버스의 본격적인 아메리카 대륙 탐험 등을 통해 유럽인들은 지구 상의 전체적인 세계 지도를 거의 완성할 수 있었다. 이는 지리학적인 발견을 넘어 유럽국가들이 타 대륙에서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는 등 문명 간의 접촉 혹은 충돌을 의미했고, 이 과정에서 유럽으로 들어간 막대한 자원은 산업혁명의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우리가 익히는 수학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인류 역사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며, 전쟁과 군사 분야에서의 영향력 또한 두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