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수단으로써 버스는 상당히 운치 있다. ‘덜컹덜컹’이 주는 타격감까지도 버스의 운치에 포함된다. 내려야 하는 사람은 미리 일어나서 벨을 누르고, 기다리면 문을 열어주는 합리적이지만 꽤 옛것 같은 시스템 안에서 우리는 오래되긴 했지만 그다지 낡지만은 않은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버스는 기본적으로 학창 시절부터 단체 여행의 오랜 이동 수단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부터 들뜬 마음과 흥분된 감정을 달리는 버스와 함께 한껏 고조시켰고, 여행의 시작과 끝을 맺는 불변의 장소를 도맡아 왔다. 그래서 아직도 맨 뒤 좌석에 앉으면 옛날 생각이 나서 그런지 출ㆍ퇴근 시간에 잠깐씩 탔다가 내릴 준비를 하다 보면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사실 내가 가장 선호하는 자리는 맨 뒤에서 한 칸 앞자리다. 그 자리는 맨 뒷자리의 메리트도 있으면서 다른 앞자리들과 같은 높이에서 창밖을 볼 수 있어 버스의 운치를 온전히 느끼기에 적합하다. 비슷한 거리를 지하철을 포기하고 버스를 택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커다란 창문 때문이다.
나의 첫 버스요금의 지불수단은 아버지가 건네주시던 토큰부터였고, 중학교 때 잠시 사용했던 회수권을 거쳐 지금의 교통카드까지 버스요금 지불 수단의 변천사를 몸소 체험하는 중이다.
토큰이 뭔지, 회수권이 뭔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요즘 MZ세대 친구들은 감조차 안 잡힐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잠깐씩 스쳐 갔던 장면들에 조금씩 묻어있는 추억들이다. 그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나만의 아카이브라 말할 수 있는 소소한 자기만족도 있다.
지금 밖에는 비가 오는데, 비가 오면 왠지 더 크게 들리는 것 같은 버스의 엔진소리가 갑자기 이명처럼 맴도는 것 같다. 철없게도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무작정 제일 먼 곳까지 가는 버스를 잡아타고 종점까지 가고 싶다는 충동이 피어오르는 중이다.
달리는 버스에서 비가 멈출 때까지 기다리자는 심산으로 창 밖 풍경에 집중하다가 더 이상 빗방울이 창문에 맺히지 않을 때, 그제야 안내방송과 노선도를 번갈아 가며 확인하고 내릴 준비를 하는 광경을 상상해본다. 정거장마다 시간을 체크하고 갈아타야 하는 수단의 도착시간을 수시로 체크하는 지금 나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행동이지만 둘 다 ‘내 모습’ 이다.
반대되는 두 가지 장면을 모두 떠올리며, 오늘 출근길에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놓칠뻔했던 버스를 보며 조급해하며 걱정했던 마음이 크게 의미 없었음을 깨닫게 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