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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물원킨트 Jun 28. 2024

소설가 (3)

5

장소는 여관으로 옮겨졌다. 좀 더 독한 술은 다시 그의 입을 열었다.


“하도 안돼서 별 희한한 방법도 써봤죠. 컴퓨터를 전공하는 친구 녀석이 텍스트 분석인가뭔가하는 방법을 이야기 하길래 귀가 솔깃해지더군요. 하긴 컴퓨터에 의한 자동 기술법적인 시작(詩作)이나 과학의 이기(利器)를 이용한 첨단적인 방법들이 글쓰기에 동원되는 시대니까요. 하지만 사실 엄두가 안 나더군요. 난 기계충이거든요. 하여간 녀석은 아주 간단한 방법이라면서 어휘 통계학이란 걸 이야기하더군요. 어떤 말이 어느 작품 안에서 몇 번이나 쓰였는지, 그리고 어디서 쓰였는지 단번에 알 수 있는 시스템이죠. 그런 걸 사람이 일일이 센다면 미친 짓일테지만, 아무튼 신기하더군요. 여러 작품을 분석한 자료를 얻기도 했습니다. 누구는 이런 말을 잘 쓰는구나, 이런 말이 매력적이구나 하는 감 같은 걸 얻긴했지만, 크게 도움은 되지 않더군요. 사실 별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그의 말이 처량했다. 목소리엔 힘이 넘쳤으나 누가 들어도 뭔가가 빠져있다는 느낌이 선명했다. 그는 말을 이었다.


“정말 부질없는 일입니다. 글을 쓰면 쓸수록 자신이 부끄러워질 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서 대화양식의 차이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죠. 상이한 문화, 종교, 성별, 가치의 우선순위, 계급, 뭐 이런 것들의 차이로 어쩔 수 없이 사람마다의 대화양식은 저마다 차이를 일으키고, 끝내는 그 사소해 보였던 차이가 나중에는 엄청난 오해와 실망으로 뜻하지 않게 많은 사람들의 관계를 허문다는 걸 알았습니다. 인간은 말을 하지 않고는 살 순 없지만, 그로 인해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는 슬픈 운명을 스스로 만드는거죠. 말이란 그런 겁니다.”


돌연 그는 아무런 대꾸도 없는 나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알콜의 기운을 내뿜어지고 있는 밤이었다.


“김형은 내게 침묵을 말하는 겁니까? 침묵의 덕을 설파하려고 하려는 겁니까? 내 생각엔 김형에게도 침묵은 너무 버거워요. 최선은 아니어도 차선으로 나는 말을 하면서, 글을 쓰면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산다는 건, 쓴다는 건, 말을 하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건… 한마디로 처절한 발버둥입니다. 나란 인간의 운명이죠. 말로 일어… 말로 망할… 지어다…”


술이 올랐는지 그는 혀꼬부러지는 소리를 하더니만 털썩 꼬꾸라져 잠이 들었다. 그를 쳐다보고 있던 나도 그제야 몹시 피곤함을 느꼈다. 그런데 평소의 노곤함과는 다른 통증이 엄습했다. 일어서려 했으나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몸은 자꾸만 무거워졌다. 언제나 그랬듯이 아무도 날 돌보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나 역시 스스로를 돌볼 수가 없다. 힘이 든다. 느려진다. 천천히 힘이 빠져갔다. 나는 나를 잃지 않으려고 이를 단단히 악물었다. 그 때 그의 말이 귓가에 퍼졌다. 처절한 발버둥.


계속해서 몸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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