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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물원킨트 Jun 20. 2024

소설가 (2)


3


초인종을 누르고 난 뒤 한참 뒤에 문을 열어준 그의 인상은 평범했다. 그의 생김새는 그다지 별나지도 않은, 어디서 본 것만 같은 유형의 사람이었다. 그의 집에 들어서며 나는 아마도 그가 앞으로 이를 어쩌나하고 걱정이 태산같아 신음을 삼키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는 당당해 보일 정도였다. 신을 벗고 있는 나를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정면으로, 그것도 너무나 똑바로 쳐다보고 있어서 나는 무안할 지경이었다.

우스운 꼴이었다. 따지러 온 사람에게 고자세라니. 갑자기 나는 말단 기자로서의 자격지심까지 발동해서 몹시 기분이 나빠졌다. 무시당한다는 생각에, 그리고 머리 속이 막혀버려 아무 것도 하기가 싫은 생각에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쳐나오고 싶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내 머리의 또 다른 한 편에선 나의 생계와 불독의 육두문자가 떠올라 반대편의 것들은 꾹 눌러담아 참을 수 밖에 없었다. 어찌되던간에 이 ‘빌어먹을 작가놈’ 에게서 무슨 말이라도 들어서 내일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불독에게 보고를 해야하는 것이 내 임무였다.


“그래요, 뭐 일단 베꼈다고 칩시다. 그런데 자신만의 독창적인 이야기를 쓰는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있을 것 같아요? 정답은 없다죠. 지금 당신은 그런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는 표정인데, 아마 당신이 생각하는 그 작가도 자신만의 독창적인 이야기를 썼다고 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도 아마, 아니 틀림없이 어딘가에서 베껴냈을겁니다. 알고보면 꽤 많이들 그럽니다. 물론 그 인간들이야, 그 잘 나가는 글쟁이들 말입니다. 머리도 좋고, 읽은 것도 많으니까 아무도 볼 가능성이 없는 글에서 횡재수를 찾기도 하고. 그래요, 예를 들어 번역되지 않은 책 같은 거에서 말입니다. 게다가 그런 인간들이야 능력이 뛰어나서 베껴 써도 그 흔적을 완벽하게 위장할 수 있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말입니다. 이리 흔들고 저리 비틀고해서 흔적을 남기지 않을 뿐이죠. 물론 그 놀라운 위장 수법의 능력이 그 잘난 작가들과 삼류도 안 되는 나와의 차이겠지만요.”


표절의 이유를 물은 나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잘 알아듣을 수도 없는, 어처구니없는 대답을 서슴없이 말했다. 말문이 막혀 그냥 쳐다만 보고 있었더니 그는 줄기차게 말을 이어갔다.


“일류가 되고 싶은 욕심도 있고, 글도 안 써지고, 영감(靈感)도 하나도 안 떠오르고, 거기다 이러다 하루 한끼니마저 굶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해지면 난 사람들이 잘 안 읽는 책이라도 한 권 집어 들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일단 적당히 옮겨서 쓰고 보는거에요. 예전엔, 한 때는 말이죠, 그냥 좋아서 맘에 드는 문장들을 노트에 옮겨 두고는 두고두고 꺼내 읽어보기도 했죠. 하지만 지금은 그보단 뭐랄까, 어떻게든 잘 써야한다는 강박관념이랄까, 아니 그보다는 직업이고 밥벌이다보니… 하여튼 거기서 몇 구절을 건지는 겁니다. 얼마 전에도 괜찮은 걸 하나 봐두었는데, 어디 한 번 보시죠. 어디다 두었더라…”


책이 수북히 쌓인 선반을 뒤지면서 그는 듣기에 거북살스런 큰 목소리로 말했다.


“잘 알아듣기 어려운, 뭐 힘든 그런 거 있잖소. 사실 알맹이는 없지만 첫 눈엔 괜히 그럴듯하게 보이는 표현같은 거 말이요. 뭐, 꼭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한 두번 읽고서도 알듯모를듯한 그런 걸 즐기는 경향이 있거든요. 적당히 어려우면서도, 한껏 뭔가를 안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문장들 말입니다. 속되게 말해 있어보이는 문장들, 사실 그런 애매한 문장엔 누구나가 열광할 수 있으니까요.”


그는 뭔가를 찾아냈는지 내가 앉아있는 소파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무슨 발표라도 하는 사람마냥 목소리를 가다듬더니만 조금은 건조한 톤으로 책을 읽어갔다. 코 끝으로 흘러내린 안경과 조잡한 책의 표지는 그를 마치 사기꾼 약장수처럼 보이게 했다.


“그 날로부터 나는 내가 거부하는, 나로서는 더 이상 감히 저항할 수 없는 그러한 고독속에 빠져들게 되었다. 음… 또 이런 것도 있소. 그 어떤 비열한 고통으로부터 시작된 오만함이 다시금 음험하게 지속되더니 처음에는 아주 천천히, 그리고나서는 느닷없이 일순간의 섬광과 함께 커지면서 온갖 이성에 반하여 긍정되는 행복속에서 나를 무분별하게 만들고 열광시킨다… 어떻습니까? 아주 그럴 듯하지 않습니까?”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무턱대고 그를 동정할 뻔했던 내 자신이 미워지기까지 했다. 나는 그에게 간다는 말도 없이, 거침없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 아무 말도 하기 싫었다. 한없이 실컷 비웃어주고 싶은 알량한 기분이었다.

모퉁이를 돌자 나는 크게 웃었다.




4


그와 이상스런 대면한 지 정확히 일주일 뒤였다. 그가 출판사에 왔다는 이야기가 내 귀로 흘러들었다. 사장에게 회사로 직접 불려와서는 사죄를 한 모양이었다. 지난 번 그의 이상스런 궤변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의외의 일이었다.

어쨌든 그에게 있어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몰라도 - 평소 사장은 화를 잘 내는 성질이었지만 인정도 있는 편이어서 - 사장은 그에게 다시 속죄의 기회를 주기로 했던 모양이다.

아직 젊으니까, 명예회복의 기회를 주자는 뜻이겠지, 라고 말하면서 나를 제외한 대다수의 직원들은 그 짜증스런 항의 전화는 어느새 새까맣게 잊어먹은 채로 이미 마음 속으로는 그를 복권(復權) 시켜놓고 있었다. 나는 또 다시 어이가 없어졌다.

몇몇 동료들과 시답지않은 잡담을 늘어놓고있던 내 앞을 그가 말없이 지나갔다. 고개를 떨구며 걸어가던 그는 나를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다시는 저 따위 인간과는 상종도 안하겠다던 나의 굳은 다짐은 그의 푹하고 꺼질듯한 뒷모습에 순간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나는 그의 곁으로 걸음을 옮겼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지 그는 멍하니 숫자들의 변동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아래로 내려가겠다는 의지를 알리는 파란색 등만이 빛나고 있었다. 인기척에 그는 고개를 돌렸다. 며칠 전의 속물적인 표정과는 달리 어딘가 모자라 보이기까지하는 무표정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그는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독백같은 투로 말했다.


“세상 일은 쉽지 않군요.”


무작정 그를 따라서 엘리베이터를 탄 나는 어느 허름한 술집에 그와 마주 앉았다. 몇 잔이고 혼자서 아무 말도 없이 꾸역꾸역 술만 마셔대던 그가 내 잔에 소주를 따르며 말을 꺼냈다. 투명한 잔에 담긴 투명한 소주는 그 날따라 날카롭게 느껴질만큼 차가웠다. 그의 말투도 조금 변해 있었다.


“김형처럼 투철한 직업정신이 있는 사람한테야 정말 미안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말입니다, 난 정말 아무렇게나 작가가 된 사람입니다. 솔직히 말해 그보다는 난 할 줄 아는 게 도무지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 사실이죠. 제대로 가진 기술이 있나, 뭐 그렇다고 변변한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해서 한 몇 년동안 헤매다가 결국엔 자포자기였죠. 그런데 어느 날, 그러니까 무심한 햇살만 창문을 뚫고 들어와서 방안을 채우던 날이었죠, 감옥같은 방에서 말입니다. 창살은 녹이 슬었고, 나도 창살처럼 점점 녹이 슬어갔죠. 그렇게 멍하니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으로 방황하다 결심했죠. 작가가 되기로 말입니다. 써야겠다고.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겠지만요.”


“아닙니다.”


나의 말은 진심이었다. 지난 번에 그가 그렇게 말했더라면 나는 그를 완전히 무시해버렸을지도 모른다. 좀 더 심하게 비꼬는 대답을 해주었을지도. 그가 진심을 담고 있음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알콜에 담긴 영혼은 때로 진실하다. 나는 그에게 말을 덧붙였다. 이해합니다.


“아니오, 이해같은 건 안 하셔도 됩니다. 이 놈의 문학이란 건, 아니 내가 글을 쓰는 건 정말 알 수 없는 패배감, 절망감같은 데서 나오는 겁니다. 사치같은 겁니다, 나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쓰는, 골방에서의 마스터베이션인 셈이죠.”


“문학이란 게 꼭 그렇게 개인적인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요? 어떻게 보면 철학이나 신학보다 더욱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진리를 담은, 그런 이상적인 예술이 될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나는 오래 전 문학개론 수업시간의 교수님처럼 말하고 있었다. 두꺼운 개론서에 파묻혀있던 내가 보였다. 하지만 표절작가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시(詩)이건 소설 나부랭이던간에 글을 쓴다는 건 그런 거창한 게 아닙니다. 그저 속에 담은 걸 뱉어낼 뿐이죠. 일종의 노출증같은 겁니다. 난 이렇게 헐벗었다, 그러니 제발 봐다오. 그런 식이죠. 그런데 그렇게 보이고 싶은데 아무도 보질 않죠. 너무나 당혹스럽기까지한, 지극히 개인적인 해프닝 입니다.”


“그렇게 말하니까 작가들은 다 일종의 심각한 정신질환자이거나, 아니면 피해망상증에 시달리는 정신이상자라는 이야기처럼 들리는군요. 문학계가 무슨 환자촌인가요.”


“사실 그래요. 싸이코들이에요. 모든 사람이 그렇겠지만, 제 딴에 문학을 한다는 사람들은 모두다 가슴에 응어리진 걸 가지고 있기 마련이죠. 심각한 마음의 병을 지닌 그런 인간들이 작가입니다. 소설가들은 더 그래요. 시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위대한 인간들이 쓰는 거에 비해서, 소설가들은 시인이나 혹은 다른 무엇이 되지못한 그 탈락자로 타고난 재능도 없이 그냥 자신의 고통을, 상처를 주절거릴 뿐이죠.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쓸 수도 있겠지만, 난 아직 그런 글은 솔직하지도 않을 뿐더러 행여 그것이 더러 타인의 슬픔이나 고통의 정서와 의도와 맞아떨어진다고 해도, 그건 타인의 몸을 빌어 자신의 입장에서 쓴 자신을 위한 글이죠. 타인을 진정으로 위한 글이 아닌, 그저 잠시 엿들은 타인의 경험이나 감정을 염두에 둘 뿐인 타인에 대한 이기적 감상의 발로로 결국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쓰는 겁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쓰는 겁니다. 내가 나인 이상에야, 내가 남이 아닌 이상엔 남의 글은 쓸 수 없는거죠. 남을 위한 글, 그건 거짓입니다. 다 자신의 푸념인걸요. 소설가들은 도무지 타인과는 동화되기 어려운 싸이코일 따름이죠. 삐딱한 삶이죠. 삐딱하게 보고, 삐딱하게 생각하는, 신경질적인 하루 하루를 사는 그런 사람들이죠.”


번갈아 서로에게 술을 권하던 두 사람은 거나하게 취해가고 있었다. 수많은 화제로 대화가 끊어지고 다시 이어지기를 거듭하고 가끔씩 묘한 침묵이 흘렀다. 침묵이 길어지자 그와 나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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