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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물원킨트 Jun 13. 2024

소설가 (1)


1


예술가는 보통의 삶을 살 수도 없고, 살아서도 안 되는 창조적인 인간이다. 그는 자기 자신처럼 믿을 수 있는 자신의 친구들에게서 본질적인 것을 찾아내야 한다. 예술가의 임무란 사회에 신선한 충격과도 같은,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신랄한 그 사회의 초상을 그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 세상의 최고의 선(善), 즉 한 인간의 척도가 되는 행위란 친구에 대한 충직성이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든, 친구에게 내보일 수 있는 신뢰감, 그것이 바로 선이다.

오래전부터 책장에 꽂혀있던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을 다시 꺼내 읽던 중에 나는 이 부분에 파란색으로 정성 들여 가지런한 밑줄이 쳐져있음을 발견했다. 문득 이 문장들이 진실일까 하고 의심을 품었다.




2


사무실은 소음으로 북새통이었다. 날카로운 전화벨 소리와 직원들의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범벅된 오후였다. 5분이 멀다 않고 울리던 벨소리에 마침내 불독부장은 우렁찬 고함소리로 반응했다. 무슨 신호탄처럼 일순 사람들의 입에서는 지저분한 것들만 튀어나왔다.


며칠 전부터 우리 출판사가 펴낸 책에 대해서 심심치 않게 걸려오던 항의전화가 끝내 그 정점에 다다랐던 것이었다. 그 책은 우리 출판사가 주력하는 월간지나 계간지 같은 잡지류가 아닌 소설이었다.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우선 바로 그거였다. 난 처음부터 우리가 갑자기 소설에 손을 댄다는 사실이 전혀 맘에 들지 않았다. 잘되는 쪽으로 한우물만 파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문어발식으로 소설에까지 손을 대는 것은 어쩐지 일부러 고생을 사서 한다는 생각만 들었을 뿐이었다. 사실 우리의 주력 상품은 주부를 대상으로 하는, 그 달의 특별사은품이 무엇인가에 따라 판매부수가 결정 나는 그런 여성지와, 그런 한심한 주부들과 별 재미없이 사는 남자들을 위한 이상야릇한 노란 잡지, 그리고 덤으로 에세이집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그 에세이라는 것도 잡지에 정기적으로 기고하는 사람들의 글을 묶어서 내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점점 회사가 방대해지면서 높은 놈들이 돈독이라도 올랐는지 차츰 영역을 넓혀 갔는데, 그 시작은 젊은 작가들의 중단편소설집을 펴내는 것이었다. 결단코 난 그 일이 마땅치 않았다. 지명도 없는 사람들의 글을 그렇게 선뜻, 그것도 막대한 분량으로 찍어낸다는 것은 그야말로 모험이었다. 물론 나만의 생각도 아니었다. 동료들도 술자리에서 가끔씩 내 생각과 다름없는 말을 했다. 실패가 뻔한데 누가 그 원망의 십자가를 짊어질 것인가. 우리의 관심사는 한 때 거기에 봉착해 있었다.


그러나 나와 동료들의 예상과는 달리, 바꾸어 말해서 회사 입장으로서는 다행히, 소설은 반응이 꽤 괜찮았다. 그러나 그 역시 분명 의외의 결과였다. 그도 그럴 것이 판매의 절반이상을 해낸 것은 다름 아닌 문제가 된 바로 그 책이었던 것이다. 그 책은 우리가 설정해 놓은 주인공이 아니었으며, 따라서 흥행을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회사에선 젊은 작가들의 소설집을 내자마자 각종 매체에 대대적인 광고를 쏟아부었는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그 책이 아니라 신인 여류 작가의 첫 단편 모음집이었던 것이다. 문제가 된 그 책은 신인 작가의 예쁘장한 얼굴이 대문짝만 하게 나온 광고의 구석에 초라하게 제목만 소개되었을 뿐이었다. 한마디로 엑스트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목만 소개된 이 책은 어쩐 일인지 잘 팔렸다. 슬립 히트였다.


하지만 승리의 여신은 우리 편이 아니었다. 만년 꼴찌팀이 승부에서 이기고도 부정선수로 몰수패를 당한 꼴이 꼭 우리 회사였다. 초반 의외의 선전을 했던 그 책은 결국에는 문제를 일으키고야 말았던 것이다. 잘 팔린 것까지는 좋았으나 문제는 내용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용 자체가 문제가 된 것은 아니었다. 좀 이상하게 들릴는지는 모르지만, 이를테면 불륜이라던가 외설이라서 파문을 일으킨 것이 아니란 소리다. 내 기억으론 그 책은 독백형식과 서술시점이 혼용된 어느 오십 대 여행자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들은 이야기다. 왜냐하면 내가 그 책을 펴내는데 관여하지도 않았고, 어쩌다 그 책에 대해 물어봐도 모두들 무관심으로 고수하는 시큰둥한 반응만을 보였으니 겨우 귀동냥으로 들은 대강의 줄거리가 그렇다는 것이고, 그 외에 정보는 사실 전무(全無)했다.


그 책에 대한 항의 전화는 끊임없이 걸려왔다. 그 수많은 전화의 요점은 ‘내 인생의 여섯 번째 배낭’ 이 ─ 그 책의 제목이다 ─ 여기저기 다른 작가들의 글들에서 일부분씩을 베껴서 만들어진 소설이라는 이야기였다. 표절이라니. 직원들은 한결같이 눈만 크게 뜨고만 있었다. 조금씩 회사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런 분위기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신경을 끊고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의지와는 다르게 나는 조금씩 나도 모르게 이상한 늪으로 빠져갔다. 사실 당연한 결과였다. 사흘이고 나흘이고 전화가 끊이질 않았는 데다 직장의 전부서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폭주하는 항의전화를 받느라고 전화받는 일 외의 다른 업무는 손도 될 수 없었다. 마침내 모두는 신경이 날카로워질 대로 날카로워졌다.


처음 몇 번은 나를 포함한 대부분이 정말로 독자들에게 그렇게 죄송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음 날 조간신문들이 일제히 표절에 대한 의혹이 있다는 기사로 융단폭격을 날리자 상황은 최악으로 변해갔다. 그렇게 아침부터 퇴근시간까지 독자들의 항의전화만 받다 보니 마침내 우리는 그다지 미안하지 않은 기분으로 미안하단 말을 연발해야 했다.


그리고 화가 나기 시작했다. 무작정 이유를 알 수 없는 화가 나기도 했다가, 어떤 작자인지는 몰라도 참 터무니없는 짓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먹고살자니 어쩔 수 없이 그랬나보다 하는 동정심도 교차했다.

사무실은 끝내 터져버리고 말았다. 책상에 앉자마자 아침부터 걸려오던 전화가 퇴근시간이 다 되도록까지 미친 듯이 걸려오자 모두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미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그날 석간신문의 문화면에는 그 책을 시발로 한 표절에 대한 특집 기사까지 실리게 되어, 완전히 우리 출판사는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원자폭탄을 제대로 맞은 꼴이 되고야 말았다.


그런데 정작 그 폭탄이 떨어진 자리가 다름 아닌 내 자리인 줄은 나는 눈곱만치도 몰랐다. 8시 10분 전이 되자 모두들 속으로 탈출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불독이 날 불렀다. 부장의 말을 듣자 나는 정말 죽을 맛이었다. 그는 나에게 ‘그 빌어먹을 작가 놈’을 만나보고 오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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