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의 정체
오늘 형석의 두 번째 환자는 빌딩에서 뛰어내린 젊은 남자 환자였다.
“맥박이 안 좋아요. 55 정도예요. 수치가 너무 떨어졌어요.”
상태가 심각했다. 이런 환자를 살리는 일은 사실상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압박 시작합시다.”
“수혈부터요. O형 걸어놓고, 식염수도 부탁합니다.”
형석과 은경의 수술실 하모니는 시작되었다.
“잠깐. 이 사람...”
조금 떨리는 은경의 한 마디가 갑자기 수술실의 분위기를 요동치게 만들었다.
은경이 환자를 살피다가 놀라는 얼굴이 되었다.
“네?”
“전에 한 번 온 적이 있어.”
“그때도?”
“아냐, 그냥 심한 두통이어서 검사만 했는데, 별 문제가 없었어.”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을 정도의 고통을 형석은 아직 겪어본 적은 없어 알 수는 없었지만, 이 환자의 처참한 모습을 보니 자신은 절대로 그런 일을 할 수 없는 종류의 인간이란 사실을 깨달을 따름이었다.
“손목 골절. 복부에 심한 통증. 안면도 골절인 거 같네요.”
지원하려 내려온 또 다른 외과의가 내린 판단은 신속했다.
그때 혈액을 가져온 간호사도 환자를 알아보았다.
“어, 이 사람 정신과 환자인데요? 몇 달 전에 왔었는데.”
“뭐라고?”
은경은 놀라서 물었다.
“겸자를 잡아줘요.”
은경은 정신을 다잡았다. 순간 혈관에서 솟구친 피가 은경의 얼굴을 강타했다. 은경의 얼굴에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얼굴과 목덜미에 묻은 선홍빛의 피가 은경에게 약간의 쇼크를 준 거 같았다. 기흉에 의한 출혈인 거 같았다. 높은 데서 떨어진 사람을 치료하다 보면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산소포화도가 안 좋아요.”
간호사의 말에도 은경은 대답이 없었다. 은경은 잠시 뒤로 물러났다. 아무래도 쇼크가 큰 거 같았다. 단순하게 피 때문에 일어난 일은 아닌 거라고 형석은 짐작했다.
그때 동료의사인 응급의사 민정이 수술실로 들어왔다.
“맥박 잡혔나요?”
“내가 할게요.”
은경이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나섰지만, 형석은 은경을 말렸다.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선배는 잠깐 쉬는 게 좋겠어요.”
“그래요. 제가 맡겠습니다. 일단 메스.”
오늘도 날렵한 안경 너머로 냉정함을 발산하며 민정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압박 대기하고. 쏘라실. 아트로핀.”
은경은 못 이기는 척 수술실을 천천히 빠져나갔다.
화장실에 들어가 세수를 하며 은경은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거울을 들여다보니 그 안에는 슬픔으로 가득한 한 여자의 얼굴이 담겨있었다.
깨끗해진 얼굴로 나온 은경을 향해 지나가던 응급실 간호사가 말했다.
“여전히 예쁘시네요. 모델이 따로 없다니까.”
은경은 웃을 힘도 없어 보였다.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회의시간에도 은경은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혹시 어디 안 좋아요?”
일부러 형석이 다가와 은경에게 물었다.
“응?”
“오늘은 회의시간에도 아무 말씀도 없으시고. 대답도 한 박자씩 늦으시고.”
“아니야. 괜찮아.”
“뭔가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그때 꼭 저한테 해주세요.”
형석은 그렇게 말을 아꼈다.
“네가 짐작하는 게 아마 맞을 거야.”
은경은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그렇게 대답했다.
“전에 두 분이 같이 계시는 걸 본 적 있어요. 우연히 식당에서였죠. 사귀던 사이였나요?”
은경은 형석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이야기하죠. 다른 데서 따로 이야기해요.”
“그래.”
그 뒤로 형석과 은경은 서로를 말없이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