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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돌향 Feb 17. 2024

반딧불이, 벼멸구, 청개구리

군 생활을 하는 동안 늘 곁에 있어 주었던 세 친구

삼 년 하고도 넉 달을 장교로 군에서 생활했다. 그중 두 해는 휴전선이 있는 GOP 부대에서 지냈다. 벌써 20여 년 전의 일이다. 공중전화 하나 없고 침상이며 화장실 등 모든 시설이 열악해, 마치 그곳만 세상의 흐름에서 멀리 떨어져 이삼십 년쯤 과거의 시간을 살고 있는 듯한 장소였다. 조그만 깡통 건물 안에서 일 년을 보내야 하는 서른 명 남짓의 젊은 사내들을 저 바깥의 세상과 연결해 주는 건 전파 수신이 신통찮은 낡은 TV 한 대와 군 트럭이 이따금 실어 오는 편지와 소포들뿐.

일 년 내낸 밤과 낮이 뒤바뀐 생활을 하고, 낮에도 소위 '작업'이라 불리는 육체 노동을 거의 매일 해야 했으므로 몸은 언제나 고단했다. 하지만 동생 같은 어린 소대원들은 대부분 어질고 순해서 그들과 함께 수다를 떨고 간간이 좁은 공터에서 공을 차고 있자면 꼭 우리가 영화 <지중해>에 나오는, 그리스 작은 섬에 떨궈진 이탈리아 소대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둔 새벽, 경계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서 마주하는 신비하고 장엄한 풍경은 또 어떠했던가. 해 뜨기 직전, 사위가 짙은 어둠에 잠긴 가운데 숲은 칠흑같이 새까만 먹빛을 띠어 하늘과 분간이 된다. 물에 젖은 머리채처럼 푹 꺼져 있던 껌껌한 숲의 윤곽은 일출 시간에 가까워지면서 숨을 들이마시는 사람의 가슴처럼 하늘로 점점 부풀어 오른다. 숲이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천지는 고요한데 숲의 숨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부풀어 오르던 숲이 움직임을 멈추면 새가 지저거리기 시작한다. 숲이 깨어난 것이다. 날마다 새벽녘에 보는 그 장관은 지친 마음에 매번 뻐근한 감격을 불어 넣어 주었다.


서설이 길었다. 남이 군 시절 이야기를 하면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면서 내가 겪은 군 시절 이야기는 한번 꺼내면 몹시 장황해지니 참 부끄럽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휴전선에서 군 생활을 했다는 말을 하려고 한 것이고, 이 글을 쓰는 본래 의도는 군 생활을 하는 동안 늘 곁에 있어 주었던 세 친구에 대해 이야기하려 함이다. 고단하지만 평화롭고 경이로웠던 휴전선에서의 생활을 함께해 주었던 작고 소중한 세 친구.


1. 나의 첫 번째 친구, 반딧불이

휴전선의 하루 일과는 뉘엿뉘엿 해가 질 무렵부터 시작한다. 삽십여 명의 청년들은 부지런히 저녁밥을 먹은 뒤 군장을 챙겨 철책으로 나선다. 해는 하마 다 기울어 서녘 하늘 귀퉁이에만 설핏 바알간 노을이 남았을 뿐 숲과 철책 너머의 풀밭은 어둑하다. 

내 친구 반딧불이가 초록 불빛을 반짝이며 젖은 수풀에서 날아오르는 때가 바로 이때이다. 드라마나 영화에 보면 한밤중 반딧불이가 마치 불티처럼 무수히 날아오르는 장면이 연출되곤 하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다. 반딧불이는 하루 중 해 질 녘, 그러니까 밤이 시작됐지만 해의 기운이 아직 남아 있을 때 잠시 공중을 난다.  

반딧불이가 나는 모양은 길고 둔중하여 '하늘을 난다'는 표현보다 '공기 중에 헤엄친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데, 느릿느릿 헤엄치듯 나는 반딧불이의 불빛을 눈으로 좇다 보면 불식간에 깊은 생각에 잠기고 멀리 떨어진 그리운 사람이 떠오른다. 

그리고 반딧불이는 자신만의 고유한 궤적을 그리며 날기 때문에 유심히 지켜 보면 어디로 날아올지 미리 가늠할 수 있다. 반딧불이가 날아올 곳을 마음속으로 가늠해 놓았다가 그리로 슬며시 손을 뻗으면 반딧불이가 날아와 손바닥에 콩 하고 부딪힌 뒤 '엄마야!' 하고 줄행랑을 친다. 그렇게 반딧불이를 한차례 놀리고 나면 밤새 즐거웠더랬다.


2. 나의 두 번째 친구, 벼멸구

휴전선의 경계 근무는 밤새 하는 일이지만, 자정 무렵에 다른 사람과 잠시 교대하여 2시간 가량 쉬는 시간이 있다. 이때 이제 일기도 쓰고 책도 읽고 하는 건데 그 어두운 밤에 스탠드를 켜고 책을 펼치면 어디선가 풀빛을 띤 쌀알 같은 게 톡 톡 하고 책장 위로 튀어 오른다. 바로 벼멸구라는 녀석이다.

벼멸구는 크기가 쌀알만 하고 몸 전체가 초록 풀빛이다. 물방울을 옆으로 뉘어 놓은 모양인데 머리 쪽에 제 몸집의 삼분의 일은 되어 보이는 까만 점이 붙어 있다. 벼멸구의 눈이다. 언뜻 보면 약간 징그러운데 자세히 보면 상당히 귀엽다. 

스탠드 불빛이 마음에 들었는지 책장 위에 올라 앉은 벼멸구는 꼼짝도 않는다. 책장을 넘겨야 하는데 미동조차 없다. 우악스레 책장을 넘기면 벼멸구는 알아서 도망치겠지만 그러면 이 깊은 밤에 마음이 쓸쓸해질 것 같아 책장을 넘길 수가 없다. 종당엔 책 읽기를 단념하고 대신 책상에 턱을 괴고 조그만 벼멸구의 눈을 가만히 응시한다. 벼멸구도 달아나지 않고 가만히 나를 바라본다. 그렇게 벼멸구와 나는 말 없이 한참 대화를 나눈다. 

벼멸구의 몸 빛깔은 벼의 한해살이에 따라 변한다. 늦봄과 여름, 벼멸구는 야드르르한 초록빛을 띤다. 그러다가 가을 추수철이 되면 누렇게 색이 바래고, 들판에 서리가 앉기 시작하면 시든 이파리처럼 잿빛으로 고스라져 이젠 톡 톡 하고 튀어 오르지도 않는다. 그 무렵이 되면 벼멸구와도 작별할 때가 된 것이다. 늦가을, 잿빛으로 시들어 책장 위에 힘없이 앉아 있는 내 친구 벼멸구를 보면, 다정한 친구와 이별할 때처럼 몹시 서운하고 슬퍼지는 것이었다. 


3. 나의 세 번째 친구, 청개구리

궂은비가 오시는 날이면 손톱만 한 이 친구는 언제나 윤기 나는 초록빛 몸으로 내 방을 찾아왔다. 비 때문에 엉망으로 젖은 이 녀석을 손가락 위에 살짝 올려 놓으면 손가락의 마르고 거슬거슬한 촉감이 마음에 들었는지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때 녀석의 맥박이 손가락 끝으로 전해져 오고, 손가락 끝으로 흐르는 나의 맥박도 녀석에게 전해진다. 그러다가 문득 녀석이 조그만 네 개의 다리로 손가락을 꽉 쥔다. 그 순간 나는, 녀석이 나를 꼭 안아 주었다고 생각한다. 청개구리의 가냘픈 네 다리가 나의 손가락을 꼭 쥘 때의 느낌은 마치 녀석의 영혼이, 그리고 자연의 마음이 나를 따뜻하게 껴안아 주는 느낌이다.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커다란 위안을 얻는다.

궂은비가 오시는 날이면 꼬박꼬박 휴전선 깡통 건물의 작은방으로 놀러 오던 내 친구, 바로 청개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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