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 이탈
*글쓰기 모임에서 어제 쓴 글을 퇴고했습니다.
뚜르, 뚜르르, 뚜르.
점심 무렵이 되자 소리가 희미해졌다. 너도 배고픈가 보다, 설거지하면서 베란다를 바라봤다. 저녁이 되면 다시 커지겠지.
우리 집에는 귀뚜라미가 산다.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다. 한 2주 전부터인가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들렸다. 밖에서 나는 것치곤 큰 것 같아 자세히 들어보니 베란다 안쪽에서 났다. 귀뚜라미가 어떻게 집에 들어왔는지도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들어올 만한 통로가 없다. 어쩌면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들어왔을지도 모른다. 지난달 말에 꽃다발 속에 묻어왔나?
그 뒤로 밤마다 귀뚜라미 우는 소리는 크게 들렸다. 신랑과 저녁을 먹고 부엌을 다 정리한 뒤에도, 지난주에 집으로 돌아온 날 밤에도 귀뚜라미는 크게 울고 있었다. 뚜르르르르르, 뚜르르르르르, 뚜르르르르르르. 며칠 전 신랑과 밥을 먹는데 평소와 달리 울음 소리가 악에 받친 듯했다.
“어이구야, 크게 우네? 왜 그러지?”
“그러게? 외로워서 그런가. 짝 내놓으라고- 내놓으라고!”
“아……!”
사연은 이렇다. 몇 주 전 일요일, 베란다에서 에어컨 물을 빗자루로 쓸어 담는데 구석에 꽃다발이 말라비틀어진 곳에서 시커먼 벌레가 폴짝 튀어나왔다. 으아아아아, 뭐야?! 하는 소리에 신랑이 다가왔다. 조그맣고 뒷다리가 길고 허벅지가 튼실한 게 내가 아는 그 벌레는 아닌 것 같으면서도 긴가민가했다. 귀뚜라미네, 하고 신랑이 말했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어떻게 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쩔 수 없이 그 귀뚜라미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그땐 한 마리인 줄 알았다.
그렇게 암놈인지 수놈인지 모를 귀뚜라미는 짝꿍을 잃고 홀로 남아 밤마다 서럽게 울고 있다. (못 먹은 지도 꽤 된 것 같은데 용케 살아 있다.) 외로움은 곤충도 미치게 하는 걸까. 그제는 베란다 구석 어딘가에서 귀뚜라미가 두둠칫, 두둠칫, 비트박스 리듬으로 울었다. 뚜르르르르르르르르 뚜릇. 뚜르르르르르르 뚜르릇. 뚜릇 뚜릇 뚜르릇.
이제는 신기하다기보다 안쓰럽다. 어쩌다 여기 와서 짝을 잃고 고생하는지. 나중에 발견했을 때 살아 있으면 산 대로, 죽었으면 죽은 대로 좋은 데 보내줘야겠다. 그렇게 오늘도 귀뚜라미와 동거 중이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