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 자기만족)
“아아아아아, 또……”
또 태워먹었다. 또 탄내가 난다. 점심에 먹으려고 밤고구마와 당근, 양배추를 냄비에 넣고 찌면서 방에서 일하고 있었다. 타이머를 썼는데도 이 모양, 결국 부엌으로 나와 재빨리 집게를 들고 냄비 뚜껑을 열어 눌어붙으려는 고구마부터 부랴부랴 건졌다. 때깔은 차암 좋은데 덕분에 뜨끈뜨끈한 고구마가 집게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포슬포슬 부서지고 말았다.
짧지만 굵었던 한바탕 폭풍이 지나고 현실로 돌아왔다. 참 나……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일하다가 이것도 태워먹냐. 엄마야 나는 왜.
“너무 참거나 견디지 말길 바라요. “
어제부터 맴돌던 그 말이 다시 떠올랐다. 너무 참거나 견디지 말길 바라요. 어제 아침, 글쓰기 모임 단톡방에서 내 글에 답글을 다신 분의 톡을 읽자마자 눈이 뿌예졌다. 월요일 저녁에 운동하고서부터 기분이 많이 좋지 않아 며칠 동안 조깅하면서 혼자 속을 달래고 있었다. 지난달 친정 검도관에서 운동할 때는 좀 괜찮아졌나 싶더니만 이날 호구를 쓰고 대련하면서 오른쪽 허리와 다리가 또 저리려 하면서 몸의 중심마저 흔들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더 힘들었던 건 그다음 들은 말이었고.
그제 아침이었던가, 하천을 따라 천천히 뛰면서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게 뭐지 하고 생각해 보니 ‘상실감’이었다. 길을 잃은 듯한 느낌, 가까이에 멘토가 없다는 느낌, 생각과 달리 봄과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는데도 새로운 곳에서 운동하는 데 적응하기 어려운 듯한 느낌, 방향을 잃은 듯한 느낌, 호구 쓰고 코어에 힘을 주려고 해도 오래가지 못하는 듯한 느낌. 그나마 혼자서 움직일 때는 덜한데 검도할 때는 아무래도 오른쪽 발을 계속 움직이고 특히 굴러야 하다 보니 운동하고 하면 무릎 아래부터 발등이 몇 시간 동안 저릿저릿하다.
다들 심지어는 애들도 어떻게든 승급하고 승단하고 앞서 나가는 것 같은데 나만 멈춰 서 있는 기분이다. 엄마야 나는 왜, 버겁지. 첫 승단도 참 힘들게 하고 2단도 거의 코앞인데 엄마야, 오른쪽 허리가 내 발목을 잡는다. 작년에 결혼 준비하면서 유산소 운동을 따로 할 생각을 못했던 게 문제였을까.
작년에 결혼을 앞두고, (친정 검도관) 관장님께서는 나에게도 한동안 검도를 못하는 시기가 올 수 있으니 알고 있으라고, 너무 속상해하지 말라고 하셨다. 여자 선수는 특히 출산과 육아 때문에 6~7년을 쉬는 경우도 있다며. 지난달엔 허리 때문에 승단심사를 미뤘다고 말씀드렸는데 이거 어쩌면 말이 다시 바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