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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 예방 접종, 책, 기초 화장품

글감 : 월동 준비

by 해달


아침에 독감 예방 접종을 하고 왔다. 왼팔에 주사를 맞는 동안 오늘은 몸이 뻐근할 수 있으니 목욕과 운동을 하지 말란 말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집에 오니 왼팔이 조금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요즘 들어 검도하면서 즐거움이나 성취감도 잘 느끼지 못하는 마당에 ‘오늘은 운동하지 말라’는 말을 들으니 차라리 잘됐다 싶기도 하다.


어제는 신랑과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가 길가에 선 나무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언제 이렇게 알록달록해졌는지 초록색이었던 잎이 노란색과 빨간색으로 변해서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이미 길바닥에 떨어져 사람들 발자국에 눌어붙은 나뭇잎도 꽤 많았다. 수능을 앞두고 집 근처 공원에는 수험생 응원 문구가 적힌 현수막도 걸렸다. 작년에 결혼 준비하면서 고3 학생 수업을 했던 게 떠올랐다. 수능 직후, 수능 성적이 나온 날 소식을 알려줬었는데 어디서 뭘 하든 자신의 삶을 잘 만들어가고 있길 바란다.


또 11월이구나, 또 한 해가 흘렀구나, 또 한 해가 지나가겠구나. 지난주에는 기말고사 대비가 마무리됐고 다음 주면 지금 듣고 있는 출판번역 수업도 끝난다. 번역 공부를 하기로 결정하고 시작하기 전까지 많이 고민한 것도 벌써 반년 전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지금 하는 일과 집안일을 병행할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책임감과 진심으로 버티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회의와 무력감을 느낀 지는 꽤 됐다.


일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하루에서 결코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 시간을 회의와 무기력, 불만 등으로만 채울 수 없고 더 이상 그러고 싶지도 않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더 늦기 전에 뚜벅이는 운전대를 돌리는 대신 다른 데로 발걸음을 내딛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매일 필사하고, 글을 쓰고, 문장을 들여다보며 다듬고, 다시 책을 탐독하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밀리의 서재에서 순위권에 올라온 책이 있길래 궁금해서 읽어봤다. 하지만 이내 실망하고 시간이 걸려도 차라리 원작을 읽는 게 낫겠다 싶어 알라딘에서 책들을 미친 듯이 검색했다. 앞으로는 (특히) 연예인이나 유튜버를 포함한 유명인이 추천사를 쓴 책은 걸러야 할 것 같다.


겨울을 앞두고 보습도 빠뜨릴 수 없다. 얼마 전부터 고관절 스트레칭을 다시 하면서 배가 너무 가려워서 손을 댔더니 피부가 아토피가 난 것처럼 난리가 났다. 매일 바디 오일과 로션을 발랐는데도 가려워서 미칠 뻔했다. 날이 건조해지니 세수나 샤워하고서 스킨이나 로션, 오일 등을 바르지 않으면 피부가 금세 일어난다. 더위보다는 추위가 낫지만 가려운 건 고문이다.


인생에도 계절이 있다고 한다. 지금 내 인생을 계절에 빗댄다면 늦가을과 겨울 사이 아닐까. 차분하게 글자를 보다가도 낙엽이 바람에 뒹구는 걸 보면 또 한 해가 가나 싶어 싱숭생숭하다. 생일을 앞두고 신랑이 받고 싶은 선물을 생각해 보라고 했을 때도 금방 얘기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다가 겨우 얘기한 게 북키트와 핸드크림이었다. 단발에서 숏단발 펌으로 머리를 좀 더 가볍게 하고 싶기도 하다. 창 너머 날은 맑은데 차분하다 못해 가라앉는 건 아침에 맞고 온 주사 탓인가 기분 탓인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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